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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故 김용균 태안화력서 1차 노제 “동지여, 훨훨 날아가소서”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민주사회장 발인식이 9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 동료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를 진행한다. 고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62일 만이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민주사회장 발인식이 9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 동료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를 진행한다. 고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62일 만이다.ⓒ김철수 기자

62일만의 장례였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9일 새벽 3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층 5호실, 62일간의 투쟁 속에서 쌓인 피로에도 잠들 수 없는 故 김용균 씨의 가족과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발인 절차에 따라, 고인의 장례가 시작됐다.

이미 흘릴 눈물을 다 흘려버린 장례였다. 누구 한 명 눈물 흘리는 사람도 없이 제사를 지냈다. 아들 용균 씨를 떠올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졌던 어머니 김미숙 씨는 묵묵히 상념에 젖은 얼굴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용균 씨의 동료들과 시민들은 떠날 채비를 마치고 분향소 앞에서 발인제를 지켜봤다. 동료들은 검은 양복과 파카 위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문구가 적힌 흰 몸자보를 걸쳤고, 머리엔 검은색 머리띠를 질끈 졸라맸다. ‘내가 김용균이다’ 영정 속 용균 씨만큼이나 앳돼 보이는 동료들의 머리띠에 적힌 이 문구는 이날따라 더욱 간절하게 외치는 구호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발인이 9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를 진행한다. 고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62일 만이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발인이 9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를 진행한다. 고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62일 만이다.ⓒ김철수 기자

“김용균 동지여…”

발인은 엄숙하게 진행됐다. 취재하는 기자들만 정신없이 오고갈 뿐, 발인 절차는 끊기거나 흐트러짐 없이 진행됐다.

발인제는 애초 계획된 시간보다 조금 이른 새벽 3시20분경에 시작됐다. 제를 끝내고, 고인의 동갑내기 이종사촌인 황성민 씨와 이준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장이 영정사진과 위패를 품에 안고 나왔다. 고인이 잠들어 있는 안치실로 가기 전 93명의 장례위원장 중 한 명인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가 “김용균 동지여”로 시작하는 조서를 낭독했다.

“산재사망사고, 아니 구조적 살인을 당한 김용균 동지여. 동지의 삶과 죽음 그 자체가 바로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준 셈이 된, 김용균 동지여. 동지의 희생과 부모님의 헌신에 힘입어 우리 사회는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라는 악순환의 사슬을 끊는 중대한 출발점에 설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발전산업 민영화의 역류를 바로잡고 공론화 시킬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동지여. 김용균 동지여. 이제 이 세상에서의 온갖 고단함을 모두 내려놓고 편히 가소서. 그리하여 위험의 외주화도 죽음의 외주화도 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생명 존중의 세상에 탄생하소서. 그리하여 비정규직도 없고 차별도 배제도 없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 세상에 탄생하소서.”

조서 낭독 후 행렬은 지하 안치실로 향했다.

안치실로부터 운구차까지의 통로엔 용균 씨의 동료들과 시민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섰고, 관을 든 청년들이 그 사이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관엔 고인이 속했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깃발이 덮였다. 엄숙한 행진 중 가족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김미숙 씨는 묵묵히 아들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기까지 모든 순간을 지켜봤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가 열리고 있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가 열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가 열리고 있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가 열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내가 김용균이다”

이후 운구차 행렬은 태안으로 향했다.

관을 실은 운구차가 서울대병원을 떠난 지 약 3시간이 흐른 6시45분쯤 용균 씨가 생전에 일을 했던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 도착했다. 늘어선 거대한 굴뚝들에선 흰 구름 같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사이로 어느새 푸르스름하게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장례위원회는 도착하자마자 10개의 만장과 방송 차량, 대형 명정, 영정과 위패, 운구차, 대형 영정을 세운 차량, 부활도 순으로 행렬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매섭게 불어오는 태안 바닷 바람을 맞아가며 공장 안을 순회했다.

순회 끝에 다다른 곳은 용균 씨가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한 석탄화력발전소 바로 앞 도로였다. 장례위원회는 행렬 가장 뒤에 있던 부활도를 가장 앞에다 세워놓고 노제(路祭)를 시작했다. 부활도에 그려진 용균 씨는 마치 모두를 환영하듯 두 팔을 벌리고 노란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생전에 그가 빛을 만드는 일을 했고, 고인이 되어서도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는 의미가 담긴 그림이었다.

“동지가 가는 길에 그리움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 꿈을 담아 묵상”

구재보 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조직운구위원장의 사회에 따라, 도로를 가득 메운 동료들과 시민들은 고개 숙여 묵상했다. 그리고 발전소의 소음을 비집고 구호 하나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내가 김용균이다. 죽음의 외주화 중단하라!”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유가족들과 참석자들이 1차 노제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유가족들과 참석자들이 1차 노제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가 열리고 있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가 열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어머님 아버님, 사랑합니다”

민중의례 후, 단상에 오른 박태환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산업노조 위원장은 용균 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을 토로하며, 조서를 낭독했다.

“故 김용균 님 하나의 목숨으로 수많은 목숨을 살려냈습니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확보했습니다. 님의 목숨을 담보로 비정규직 철폐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김용균 님은 없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저 어둡고 차가운 컨베이어벨트에서 목숨을 잃은 지 62일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님을 차가운 냉동고에 그 기간 동안 누이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고인의 목숨을 잃고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와 아비의 침통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다시는 우리 아들과 같은 일이 없게 해달라고 외치는 부모의 애절한 마음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김용균이라고 외치겠습니다. 비정규직 정규직, 원청 하청 노동자 할 것 없이 하나 되어 비정규직 없는 안전한 현장 만드는 노력을 실천토록 하겠습니다.”

“동지여. 못다 핀 청춘, 저 하늘나라에서는 훨훨 날아가시기 바랍니다. 부디 그 세상에서는 산재 없는 세상으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으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고인의 못다 핀 청춘을 활짝 피우길 바랍니다. 故 김용균 동지의 명목을 빌며 저 따뜻한 나라에서 영면하소서.”

용균 씨보다 4개월 먼저 입사했다는 김선호 조합원은 고인을 떠나보내는 편지글을 낭독했다.

“용균아, 너는 떠났지만 우리가 억울한 너를 보낼 수 없어 붙잡은 지 62일째인 오늘, 비로소 너를 보내는구나. 너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이렇게 너를 보내는데 많이 늦어져 버렸구나. 우리 선배들은 항상 너에게 미안하고 미안하다 용균아. 부모님은 지금까지 너를 위해, 우릴 위해 정신없이 싸우시느라 슬플 겨를도 없으셨을 텐데, 너를 보내고 나면 지금까지의 피로와 슬픔으로 더욱 힘이 드시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우릴 위해 열심히 투쟁하신 것처럼 힘든 역경 잘 이겨내시리라 믿고 용균이 너도 하늘서 잘 지켜봐주고 응원 바란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1차 노제에서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1차 노제에서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또 김 조합원은 이 자리를 빌려 용균 씨의 어머니·아버지에게 위로와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용균이 어머님, 아버님. 오늘 드디어 용균이를 따뜻한 곳으로 보내는 날입니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지만, 어머님 아버님에게 앞으로 올 슬픔은 저희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중간 중간 많은 일정과 부정적인 언론, 태안시민들의 부정적인 태도 등이 너무 지치게 만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용균이의 사고 현장을 다녀오신 후 건물에서 저희를 끌어안아주시며 일이 열악하고 위험하니 어서 너희들은 이곳에서 나가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 그리고 추운 날 어머님께서 손잡아주시면서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고 저희보다 앞에 나가 싸워주시는 모습을 보고 큰 힘이 되어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용균이 동료들을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드리면서, 저희는 용균이와 어머님 아버님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를 듣는 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 없이 울었다.

노제는 조사와 편지글 낭독에 이어 헌화로 마무리됐다. 유족들과 용균 씨의 동료들, 태안 지역 시민·노동자들이 영전에 헌화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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