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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압박에 방위비분담금 ‘1조원’ 배수진 뚫렸다
10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장원삼 외교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와방위비분담협상 대표(오른쪽)와 티모시 베츠(Timothy Betts) 미국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가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문안에 가서명하고 있다.
10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장원삼 외교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와방위비분담협상 대표(오른쪽)와 티모시 베츠(Timothy Betts) 미국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가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문안에 가서명하고 있다.ⓒ외교부

한국 정부가 올해 주한미군에 줘야 하는 방위비분담금이 결국 또 올랐다.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 명목으로 한국 측이 부담해야 할 액수는 지난해보다 8.2% 인상된 1조389억원으로 정해졌다.

1991년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1차 협상 이래 꾸준히 증가해온 한국 측의 연간 방위비분담 액수가 결국 1조원을 돌파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초 정부는 '1조원'을 국민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보고 배수진을 쳤지만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무너졌다. 이번 협정의 유효기간은 1년으로, 일단은 올해에만 적용된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수석대표인 장원삼 외교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와 티모시 베츠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는 10일 오후 2시 30분께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제10차 SMA 협정문에 가서명했다.

외교부는 "한미 양국은 동맹으로서 상호 존중과 신뢰의 정신 하에, 10차례의 공식 회의 및 다양한 외교 채널을 통한 긴밀한 협의와 조율을 거쳐 특별협정 및 이행약정 문안에 합의했다"며 "상호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타결된 10차 SMA에서는 미국이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은 '유효기간 1년'이 관철됐다. 대신 한국은 미국이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액수 '10억 달러'(1조1천270억원)를 밑도는 수준에서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최종 액수에는 2019년도 한국 국방예산 증가율(8.2%)이 기준으로 적용됐다. 분담금 인상에 국방예산 증가율이 적용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결국 지난 2014년 제9차 SMA 체결 당시의 상승률 5.8%보다도 높게 반영됐다. 그동안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왔으며, 지난해 한국 물가상승률은 평균 1.5%였다.

이와 관련해 협상팀은 "방위비분담금도 국방예산의 일부로 포함되기 때문에 그 정도의 국방예산 증가율은 (한미 양 측이) 감안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 기대와 눈높이에 완전 부합하진 못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뉴시스/AP

한미 당국은 지난해 12월 31일부로 시효가 만료된 9차 SMA를 대체하는 새 합의를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를 이어왔지만, 총액과 유효기간 등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정 공백상태가 빚어진 바 있다.

미국은 지난해 협상 초기 무려 16억 달러(약 1조8천억원)에 달하는 분담금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해 한국이 공식 분담액인 9천602억원의 2배에 달하는 액수다. 1년간 지리한 줄다리기 협상을 이어온 미국은 지난 연말 "최상부의 지침"을 들먹이며 10억 달러(1조1천200억원)를 한국이 떠안아야할 최소한의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 때맞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우리는 전세계의 많은 부유한 국가들의 군대에 실질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미국은 느닷없이 유효기간을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줄이자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는 양측이 1년간 협상 과정에서 절충해온 내용을 단번에 뒤집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 측은 한국 화폐가치 기준 '1조원'을 국민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설정했으며, 유효기간은 '3년 내지 5년'으로 해야 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정부는 액수와 유효기간에서 모두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 됐다.

이와 관련해 SMA 협상 과정을 잘 아는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 국민들의 기대와 눈높이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협상 결과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정부로서는 주어진 여건 하에서 국민과 국회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 도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고 말했다.

한국 측은 새 협정의 유효기간을 1년이 아닌 '다년간 적용'을 상정하고 협상에 임했다. 그러나 미국 측의 강한 요구가 결국 관철되면서, 곧바로 새로운 협상에 나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해마다 미국의 과도한 분담금 인상 요구를 정부가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유효기간 1년을 고집하고 나선 배경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다른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분담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방침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맹국들의 비용분담 인상을 자신의 국정과제로 설정한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인상 압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협상주기를 좁혀놓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당국자는 "(미 측은) 변화된 국제여건 하에서 동맹국의 방위비분담 수준을 상당폭 늘릴 필요가 있으며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며 "한국의 위상과 경제력에 상응하는 분담금 증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작전지원' 항목 신설 철회하고 '현물' 지원 확대했지만…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개정국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미국대사관저 인근에서 ‘주권, 국익, 평화정착에 역행하는 방위비분담금 인상 반대’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개정국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미국대사관저 인근에서 ‘주권, 국익, 평화정착에 역행하는 방위비분담금 인상 반대’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김철수 기자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 협정을 계기로 한미간 상당한 수준의 제도개선을 이뤄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주한미군 주둔 비용과 상관 없는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및 훈련 비용까지 한국 측에 부담지우기 위해 '작전지원'(operational support) 항목을 신설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SMA 취지와 목적이 주한미군 주둔경비 분담에 있다는 점을 들어 미 측의 이 같은 요구를 철회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SMA는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세 항목으로 구성돼있다.

이중 군사건설 항목에서 설계·감리비 이외에는 모두 현물로만 지원하도록 하고, 예외적 현금지원 조항을 삭제했다. 아울러 설계·감리비 현금지원도 매년 군사건설 배정액의 12% 만큼 지급하던 것을 집행실적에 따라 축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SMA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던 미집행현금 발생 및 누적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측의 설명이다. 대신 전기·가스·상하수도·저장·위생·세탁·목욕·폐기물처리 등의 비용은 현물을 지원하는 군수지원 세부 항목으로 일부 반영되도록 했다.

아울러 연말 군수지원 항목에서 미집행 지원분이 다음 연도로 자동 이월되도록 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사업연도 내에 계약이 이뤄졌거나 사업연도 12월 1일까지 입찰공고가 이뤄지는 경우에만 이월이 허용되도록 하는 기준을 새로 만들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간의 관행이 우리 국가재정법과 반드시 합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밖에도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복지·안녕 증진에 관한 선언적 규정을 협정 본문에 포함시키고, 인건비 비율의 상한선(현행 75% 이하)을 철폐해 한국 정부의 분담 확대를 꾀하도록 했다. 또 SMA의 중장기적인 제도개선 논의를 위한 한미간 합동실무단을 구성해 상시적인 협의가 가능하도록 했다고 외교부는 강조했다.

정부는 액수와 유효기간 등에 대한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방위비분담금 집행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을 수립해 협상의 균형을 꾀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협상은) 상대방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SMA 불법·부당성 시정할 기회 스스로 포기한 협상" 비판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결과에 반대하며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는 모습.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결과에 반대하며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는 모습.ⓒ김철수 기자

하지만 한국은 이미 주한미군 주둔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들여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 협상 결과가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한반도 평화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점에 감안하면 방위비분담금의 상승요인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한미간 SMA 협상 과정에 문제제기를 해온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은 이날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위비분담금의 8.2% 증액은 2014∼2018년 주한미군 주둔비용(인건비 포함) 증가율이 연평균 0.04%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터무니 없는 증액"이라며 "(이번 협상은) 방위비분담금 책정과 집행과정의 불법·부당성을 시정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도 성명을 통해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한 방위비 분담금의 주요 요소였던 군사건설비의 주요 지출 근거였던 평택미군기지 건설이 거의 완공단계"라며 군사건설비 등 분담금 상승요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난 2014년 제9차 SMA 협상과 관련한 국회 비준동의 과정에서 제기됐던 여러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며 "(정부는) 미집행금으로 인해 발생한 이자 문제도 법적으로 엄정하게 책임을 묻고 차기 협상 시 총액규모 등에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협상 내용 어디에도 그와 관련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역시 지난 8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상 주한미군 주둔 경비는 원칙적으로 미국이 부담해야 하며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예외적인 조치일 뿐"이라며 "미국과 이런 식의 협정을 맺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뿐이다. 이제 SMA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한편,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YTN '노종면의 더뉴스' 의뢰로 전국 성인 504명을 대상으로 설문(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한 결과,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58.7%로 집계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응답은 25.9%로, 수용 '반대'가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리얼미터
리얼미터ⓒ리얼미터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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