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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1년, ‘불편한 연극’으로 돌아본 공연계
연극계 내 성폭력 예방 교육 소책자 ‘불편한 연극’
연극계 내 성폭력 예방 교육 소책자 ‘불편한 연극’ⓒ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지난해 설날 연휴를 전후로 공연계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법조계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법조·문학 등에 이어 공연계에도 이어졌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상처와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피해자 곁에 함께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공연예술인들로 구성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하 성반연)’이었고 이들은 최근 미투 1년을 맞이해 여성가족부와 함께 ‘불편한 연극’을 발간했다.

‘불편한 연극’은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고발하려는 목적만 가지지 않았다. 다시는 성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교육하기 위한 차원에서 기획됐다. 그래서 책은 폭력 사례 6가지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폭력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도 질문을 던진다.

책속에 담긴 사례는 공연 현장 속에서 벌어진 성폭력, 언어폭력이지만 다른 곳에서 일하는 일반 회사원도 읽어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성폭력은 여행 가서 겪을 수도 있고 일상 속에서 겪을 수도 있는 일들이다.

미투 1년. 공연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나가야 할까. 공연계 최초의 성범죄 재발 방지 교육용 책자 ‘불편한 연극’을 발간한 성반연 내 소책자 그룹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책자 속 성폭력 내용은 소책자 그룹 멤버들이 실제 경험한 피해 내용을 담은 만큼 이름은 익명으로 싣기도 했다. 4명의 인터뷰이들은 공연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존 성폭력 교육엔 현장 이야기 많이 없어...
‘현장 이야기 잘 아는 우리가 써보자’는 것이 책자 발간의 시작

질문=연극 쪽에서 이런 책자가 나온 게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책자 발간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어떻게 나왔나.

5=정말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성반연에서 웹상에 관련 자료를 올리는 것 이외에도 어떤 콘텐츠일지는 몰라도 뭔가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계속 있었다. 책자를 만들려고 했을 때 성폭력 예방 단체 등에서 이미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자료가 많이 나와 있었다. 우리가 전문가들 보다 전문성을 띠지 않는데 괜히 이미 있는 자료를 그대로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루고 있었다.

아웃스테이지=미투 이후로 기관에서는 성교육 한 시간을 무조건 필수로 넣는다는데 교육 내용이 충분하지 않더라. 현장 연극 이야기를 담지 못하더라. 문체부 산하 기관, 해바라기센터, 아르코, 서울문화재단 등 그런 쪽에서 하는 성평등 교육에선 현장 이야기가 많이 못 들어가 있었다. 기존에 센터에서 한 성교육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다. 현장에 맞는 이야기는 우리가 제일 많이 아니까 이 이야기를 차라리 우리가 엮어 보자. 그게 정규적인 발간물이 됐으면 좋겠다, 제일 쉬운 게 소책자다 해서 소책자를 써보자, 그런 이야기가 시작됐고 사람들이 모아졌을 때 지원이나 책자 형태나 이런 것들이 더 구성이 될 수 있었다.

5=우리가 전문가들만큼 전문성은 없더라도 공연예술인들이니까 우리의 특수성을 담을 수 있는, 우리는 희곡을 쓰고 접하는 사람들이니까, 희곡 형태로 만들면 되겠다 했다.

질문=성폭력 피해 사실을 적는 것이다 보니 제작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차 가해 등 조심스러운 상황이 많았을 것 같다.

김익명씨=검열을 엄청 하면서 했다.

아웃스테이지=이중 잣대가 생긴 것 같다. 분명히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우리는 극화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검열 부분에서도 예민했다. 이게 가능한 것인가, 내추럴로 갔다가, 극화로 갔다가, 이 정도는 안 된다는 내부 검열도 있었다. 또 여기서 내부 검열을 해도 되냐 안 되냐 그런 이야기까지도 나왔다.

5=처음에 저희가 ‘희곡으로 쓰자’고 하면서 각자 몇 편씩 써오기로 했었다. 근데 이걸 못 쓰겠더라. 쓰자고 했는데 우리가 뭘 어떻게 왜 쓰기로 했는지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우리도 이렇게 자기 고백 형태로 내용이 나올 거라고 예상 못했다. 원래는 성폭력이 있을 법한, 주변에 있을 법한 사례를 쓰자고 했었다. 근데 우리가 창작자가 되니까 이렇게 가학적인 것을 써도 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렇다고 월요 모임 피해자 이야기를 쓰면 그 모임 자체가 익명인데 그 사람한테 물어보는 것도 말이 안 됐다. 지금은 책자 형태가 됐지만 처음엔 이걸 공연으로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근데 이것을 미쳤다고 공연으로 하나. 이것을 행하는 배우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할 것이며 이런 걸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렇다면 낭독극을 해볼까 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별의별 이야기가 있었다가 지금의 책자 형태가 됐다.

김익명씨=우리가 누군가에게 들은 사례가 아니라, 자기 경험을 기반한 사례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것을 교육적 자료든 어떤 목적으로든 소비한다는 것에 대한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자기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서 썼다.


선배 갑자기 후배의 사타구니 근처로 손을 쑥 들이민다. 후배 깜짝 놀란다.
배우1:왜 놀라?
배우2:네?
배우1:내가 이렇게 했는데 왜 놀라냐고.
배우2:아니 너무 갑자기 그러셔서...좀, 그래서...
배우1:너 역할이 뭐야?
배우2:아비게일이요.
배우1:그럼 이 정도로 놀랄 거야?
배우2:네?
배우1:아비게일같이 능숙하게 존 프락터를 가지고 노는 인물이 이 정도로 놀라겠냐고.
배우2:아...아니요...
배우1:이거야, 이거라고, 니 연기가 안 풀리는 게 여기 있는 거야. 막 자 봐, 한 번!! 떡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붙잡고 미친 듯이 떡쳐 보는 거야. 그 새끼가 너한테 질질 끌려 다닐 정도로 꼬셔봐. 안달나게.
배우2:아...근데 그게 진짜 영향이 있어요? 제가 그렇게 하는 거랑...

‘사타구니 근처로 손을 쑥 들이민다.’ ☞ 상대의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은 작업 현장에서도,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연기지도를 빙자한 성폭력입니다.

‘이 정도로 놀라겠냐고.’ ☞ 배우와 배우가 맡은 역할은 다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신의 역할을 위해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은 작업자 자신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연기에 대한 논의 없이 행해진 선배의 이와 같은 행동과 발언은 명백한 성폭력입니다.

‘떡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붙잡고 미친 듯이 떡쳐 보는 거야.’ ☞ 사회통념상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유발하는 명백한 언어적 성희롱입니다.

-‘불편한 연극’ 중에서-

‘클리토리스’, ‘질’...현장에서 벌어진 단어들을
사용한 진짜 이유는

질문=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 등과 함께 제작한 책이다. 성폭력을 소재로 한 만큼 책자 내용이나 단어 선택 등을 조율하는 문제도 있었을 것 같다.

아웃스테이지=예방교육 콘텐츠로 가장 일상적이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위의 것들이 나오면 더 많은 분들이 통용할 수 있겠다고 했다. 학교부터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니까. 사실 양평원에서 ‘이것도 하드하다’, ‘어떤 단어를 고쳐라’ 그런 이야기도 있었는데 우리는 이런 상황도 있다고 하면서 조율이 됐다.

파란노트북=그런 게 많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진짜 현장에서 벌어지는 언어들, 실제로 나오고 있고 실제로 많은 배우들이 위계 폭력 상황에서 들었던 워딩들 말이다. 우리는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넣은 것인데 양평원이 보기엔 좀 그랬던 것 같다. 욕설 같은 것은 양평원과 타협한 것도 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언어들이 빠지면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겠더라. 빠지면 안 되는 단어들, 예를 들어서 ‘클리토리스’, ‘질’ 등이 있다. 이런 것은 양평원에 꼭 넣어야 한다고 말씀 드려서 들어가게 됐다.

5=‘클리토리스’나 ‘질’ 같은 단어를 쓴 것은, 그런 사례가 있는데 비슷한 사례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프라이버시라는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해줄 수 있는 말인 것이다. 그런 말도 연기를 지도한다는 이유로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욕하지 마’라고 했는데 욕이 어떤 욕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면 안 되지 않나. 그런 의미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연기가 다 이렇다’는 것을 알리려는 책자가 아니라,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거부하고 그런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파란노트북=왜냐면 자신이 그 상황이었을 때는 상황이 잘 파악이 안 된다. 이게 연기 지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선배가 말하는 것은 하늘이기 때문에 필요한 거니까 이야기 하는 것인지, 자신이 성희롱 당하는 줄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꼭 살렸어야 했다. 자극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지점들은 그것 때문에 순화 시키지 않았다.

질문=공연예술 현장 속에서 벌어진 폭력인줄 알았는데 일반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나 혹은 한 여성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아웃스테이지=연극 현장인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도 그런 말을 많이 했다. 이런 일은 다른 회사 가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연극 현장을 배경으로 했지만 우리 누구나 다 겪은 일이다.

5=양평원의 검수를 받기 전에 성반연 안에서 소책자 그룹이 아닌 사람들에게 빨간펜을 줬다. 책자 내용을 누가 쓴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번 피드백을 받았다. 서로 감수해 달라는 것이었다. 쓴 사람뿐만이 아니라 각자 아는 지식의 정도가 다르고 감수성도 다르기 때문에 맡기기도 했었다.

김익명씨=책자 속엔 폭력 상황에 대한 각주가 달려 있다. 각주의 기본은 소책자 팀이 아닌 성반연의 다른 몇 분이 해주셨고 그걸 우리가 다시 손본 것이다.

아웃스테이지=여기에 우리가 추천한 감수자를 양평원이 섭외해 주셔서 그분이 성평등 교육 관점에서 한 번 더 검토해 주셨다. 정말 이 책은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든 책이다.

이윤택 엄중처벌 탄원서를 수합하기 위해 연극인들의 연대를 촉구하기도 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이윤택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이윤택 엄중처벌 탄원서를 수합하기 위해 연극인들의 연대를 촉구하기도 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이윤택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질문=미투 이후, 공연계에 달라진 분위기라든지 체감하는 게 있었나.

아웃스테이지=‘불편한 연극’을 준비하면서 이제 글을 써봐야지 했었다. 그런 감각을 갖고 봤던 내 주변이, 이제껏 내가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대했던 내 연극 주변이, 정말 젠더 감수성적으로 잘못됐던 것이다. 내 일상을 보니까 내가 알아왔던 연극이 잘못됐고 다시 고쳐야 한다는 게 너무 눈에 보였다. 물론 한 번에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꾸 일상적으로 들어오니까 이런 사례들을 다 쓰고 싶더라. 작년 2월 미투 때도 아니고 소책자 그룹을 하면서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5=저는 청정지역에 있어서 작년 미투 때 정말 충격을 받았다. 어떤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너무 전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잘못이 많아서 충격 받은 거다. 또 사람들이 성반연에 나오는 걸 두려워 한 이유가 이걸 함으로써 캐스팅에서 배제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생각보다 많이 하더라. 저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작업하면 되겠구나 생각했고 나쁜 사람을 피할 생각을 하니까 피할 게 너무 많았다. 안 그런 사람을 찾아서 작업하게 됐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준이 생겼다. 전에는 연기 잘하는 배우,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사람의 도덕성에 대해 신경을 안 썼다. 당연히 신경 써야 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이상한데 안 했다. 지금은 변했다.

김익명씨=미투 이후 1년 동안 어떤 게 달라졌는지 묻는다면, 저는 안전한 곳에서만 작업을 했기 때문에 솔직히 전반적인 것을 체감 못했다.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1도 안 변한 곳도 있다고 해서 획일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그래도 저는 변화된 것들을 많이 봤다. 연극계 안에서도 계층과 층위가 다양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흐름에 대해서 물으신다면 성반연 활동, 페미시어터, 삼일로창고극장의 흐름, 협회 쇄신하려는 의지들, 드라마센터에서 공공극장에 대한 담론, 예술대학의 흐름들, 그런 걸 보면 미투가 동력이 되어서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확신 한다.

미투 1년, 앞으로 남은 과제는...

질문=책 속엔 성폭력만 담긴 줄 알았는데 폭력 전반을 담고 있더라.

파란노트북=위계에서 발생한 폭력 안에 있는 것이 성폭력이라는 감각이 제게 있었다. 그리고 그 위계 폭력이 성폭력을 쉽게 하게끔 큰 조력을 큰 힘을 쥐고 있다는 생각이다. 저는 그렇다. 만약 우리가 위계 없이 50대 60대 선생님하고도 ‘누구 씨’, ‘누구 님’하고 작업을 했으면 이 정도까지 일들이 있었을까.

아웃스테이지=미투 이후 만들어진 성반연이다 보니,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나라 한국 연극계 안에서 했던 위계적인 조직적인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왔다. 위계 폭력과 성폭력은 동시에 일어났다. 궁극적으로는 조직과 위계구조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냥 성폭력 교육 예방 자료라기보다 위계 폭력과 성폭력이라고 그 안에서 말을 하고 있다.

질문=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아웃스테이지=작품과 성폭력·위계의 연관성, 그런 해석 범위에 대한 기준이 우리는 하나도 없었다. 이윤택의 경우에도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언제 판단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안 나오고 있다. 지금 이 현장에서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그때 그 시절에 이 사람들을 또 다른 리스트로 만들어서 다 쳐낼 수도 없고, 싸우는 방법이자 화해하는 방법들을 논의해야 하는 게 다음 단계다.

5=이 사람들을 언제까지 몇 년 동안 작품을 못하게 할 것이냐. 그 기준이 도대체 없다. 우리는 진정성을 짚을 수 없다. 우리가 그것을 판단할 수도 없다. ‘몇 년까지 공백을 둬야 한다’ 이것을 우리가 정할 수도 없다. 제일 건강한 것은 그냥 관객의 몫이고 작업하는 다른 동료들의 몫이다. 배우의 잘못보다 섭외한 연출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아웃스테이지=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을 선택한 연출에게 제재를 가할 것이고 계속 발언을 할 것이다. 발언자·모니터링·감시자는 이런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연극인들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 들어와도 된다’는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 많이 알려줄 수 있는 채널이 될 수 있도록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성반연은 그런 역할을 계속 할 것이다.

‘불편한 연극’은 해당 주소(클릭)를 통해서 다운로드 가능하고, 예방교육통합관리 페이지(클릭)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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