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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게임의 선한 영향력을 믿습니다” – 비전웍스 김민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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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인 J. 하위징아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라고 판단하고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을 주창했다.

유희라는 말은 단순히 논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 활동을 가리키며, 문화는 유희로서 발달한다는 것이 하위징아의 주장이다.

딱히 하위징아가 말하는 그 철학적 의미를 파고들지 않고서라도 학창시절 모든 것이 금지된 수업시간에 짝꿍과 모눈종이에 오목이라는 ‘게임’을 하던 것만 떠올려 보면 ‘인간의 본질은 유희’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게임은 대표적 유희 중 하나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사회적인 이슈가 된 사건 뒤에는 부정적인 원인으로 게임이 지목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일어난 플로리다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게임을 지목하기도 했으며, 강서PC방 살인사건에서는 범행의 원인으로 ‘게임 중독’이 지적되기도 했다.

사회 이슈의 부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게임이지만, 오히려 게임으로 부정적인 사회 이슈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게임을 만드는 곳이 있다.

“게임의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는 모토로 기능성 보드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비전웍스의 김민표 대표를 만났다.

비전웍스 김민표 대표
비전웍스 김민표 대표ⓒ비전웍스

“게임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본래 교육분야에서 활동하던 김민표 대표가 게임 개발로 돌아선 계기는 자신의 가정 때문이었다. 중학생이었던 조카가 학교폭력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김민표 대표가 아이들을 위한 컨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나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가족들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거죠. 삼촌이란 사람이 이런 걸 해결하지 못하는 게 문제구나 싶어서 아이들을 위한 컨텐츠를 만들어보자는 게 계기가 된 거죠.”

김민표 대표는 아이들을 위한 컨텐츠로 게임을, 그것도 보드게임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과생들이 모였으니 디지털 게임은 엄두도 안 났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서로가 상호적인 이해를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게임만한 게 없더라구요. 문제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 없었다는 거죠. 전부 문과 출신이었거든요.(웃음) 게임은 만들어야겠고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가 보드게임이 생각났죠. ‘어렸을 때 하던 부루마블처럼 간단한 거 아니겠어’라고 시작한 게 일이 커져서 이러고 있죠.”

그러나 보드게임은 쉬운 분야가 아니다. 종이 한 장으로 게임 방법이 설명되는 간단한 게임이 있는 반면 책 한권 정도의 시나리오에 여러 권의 매뉴얼이 필요한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메카닉)의 보드게임도 있다.

덕분에 비전웍스의 첫 출시작인 ‘북극곰을 부탁해’가 시중에 나오기까지는 김민표 대표가 게임을 만들겠다고 고민을 시작한 2012년부터 2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비전웍스의 첫 작품인 ‘북극곰을 부탁해’는 2014년 이달의 우수게임으로 선정됐다. 같은 해 비전웍스는 대한민국 게임대상 굿 게임상과 스타 사회적기업,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 등으로 선정됐다.

보드게임 '내 마음이 들리니'
보드게임 '내 마음이 들리니'ⓒ비전웍스

“게임의 선한 영향력을 믿습니다”

비전웍스의 게임은 ‘게임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질문의 답인 ‘사회에 영상을 주는 게임’은 해외에 있었다.

“사례조사를 많이 하다보니까 외국에서는 시리어스게임(기능성게임)이라고 부르는 장르를 처음 접했죠. 해외에서는 이미 ‘리미션’이라는 소아암환우들을 위한 게임이 있더라구요. 이게 창업 동기를 줬죠.”

3인칭 슈팅게임(TPS)인 ‘리미션’은 소아 종양 의학박사들이 기획하고 만든 게임이다. ‘리미션’은 어린 환자들에게 힘든 항암치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실제로 ‘리미션’을 플레이한 환자들은 플레이하지 않은 환자들보다 항암치료에 대한 순응도가 높았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재미있구나’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서 생활 속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큰 힘이 있다면 우리가 보는 사회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죠”

비전웍스는 ‘게임의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사회 문제의 부정적 원인으로 항상 지목되는 게임에서 ‘선한 영향력’이라니 당장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김민표 대표는 게임이 가진 구조적인 요소 중 ‘몰입’을 ‘게임의 선한 영향력’ 중 큰 요소라고 설명한다.

“게임이 가진 기능적 요소를 보면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중에 가장 큰 것이 몰입의 요소죠. 게임 자체에는 성취와 보상, 성장 시스템과 과정을 평가하고 측정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구조가 있어요. 게임을 그저 부정적으로 보는 건 게임의 긍정적인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죠.”

보드게임 '내 마음이 들리니'
보드게임 '내 마음이 들리니'ⓒ비전웍스

마음을 들려주는 게임 ‘내 마음이 들리니’

비전웍스가 2014년 이달의 우수게임으로 선정된 뒤 다시 자사의 컨텐츠로 주목받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2017년 발매된 비전웍스의 ‘내 마음이 들리니’는 2018년 이달의 우수게임 착한게임 부문에 선정되면서 비전웍스를 다시 주목하게 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는 일반 대중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지만 본래는 ‘경계선 발달장애’ 아동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다.

“이 컨텐츠를 처음 기획할 때는 경계선 발달장애 친구들을 위해 만들게 됐어요. 정확하게는 ‘느린 학습자’라고 부르는 친구들이죠. 일반적으로 자폐증이라고 부르지만 그 안에서도 굉장히 많은 증상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느린 학습자’들은 지적 수준이 일반 학생들과 같아요. 다만 이 친구들은 감정인지 훈련이 되지 않았죠. 기쁘다거나 슬프다는 감정을 인지하기 못한다는 거죠. 이런 친구들이 감정을 인지하는 훈련할 수 있는 기능을 목표로 만든 게임이에요.”

게임의 방법은 술래가 볼 수 없도록 감정원형을 하나 고르고 다른 플레이어가 이 감정원형에 맞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술래가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 캐릭터 카드를 골라내는 것이다. 성공하면 토큰을 받고 토큰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이긴다. ‘느린 학습자’들이 이 게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감정 표정을 찾는 훈련을 돕는 것이다.

특정한 기능을 위한 게임이라고 하지만 기능만을 강조해서는 대상을 몰입하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재미만을 쫓아서는 자칫 목표로 한 기능이 약화될 수도 있다. 비전웍스는 게임의 기능과 재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뒀다.

“기존의 비슷한 교구가 있는데 그건 너무 추상화 돼 있었죠. 저희는 아이들에게 친숙할 수 있는 웹툰 같은 일러스트와 테마를 집어넣었어요. ‘내 내음이 들리니’는 네 명의 가족을 테마로 하니까 엄마가 아이하고 쉽게 접근하기 좋은 거죠. 그런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게임의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내 마음이 들리니’는 특정한 타켓을 위한 게임이지만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을 받았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힘든 현대 사회에서 게임을 계기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돕는 것이다.

“보드게임 전시회에 참여했었는데 커플들이 좋아하더라구요. 1대1로 플레이하면서 ‘어떻게 했을 때 기분이 나빴냐’ 묻는 식이죠. 대부분이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잖아요. 그런데 게임의 방식을 빌리니까 그런 부분이 완화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죠.”

비전웍스는 단순히 기능성 게임을 개발하는 것 뿐 아니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인 ‘로컬소셜케어’ 활동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직접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 이를 활용할 봉사자를 양성하기도 한다.

“초기 창업 이유가 학생들 때문에 시작했잖아요. 활동의 시작은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시간을 갖자라는 단순한 동기였죠. 사회공헌이라는 게 꼭 대기업만 하라는 법이 없잖아요. 저희 브랜드만의 이름을 ‘로컬소셜케어’라고 붙인 거죠. 지금은 매년 체험하는 분들도 생기고, 참여하는 기관도 늘고 있어요.”

비전웍스의 '로컬소셜케어' 활동
비전웍스의 '로컬소셜케어' 활동ⓒ비전웍스

“지속가능한 사회적 기업의 모델을 만들어야죠”

하루에도 수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생긴다.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살아남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비전웍스’도 경영이 어려웠던 적이 있다. 2014년 첫 작품 출시 이후 나온 작품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경영을 위해 외주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2017년 출시한 ‘내 마음이 들리니’를 통해 기능성 게임에 집중하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저희가 2014년도 이후에 상을 못 받았어요. 우리가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인가 싶었죠. 기능성게임이라는 말도 이제는 잘 쓰지 않죠. 그러다 ‘내 마음이 들리니’로 좋은 관심을 받았을 수 있었죠.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경쟁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결국에는 수익성과 연결되더라구요.”

브레인피트니스게임 '청춘낚시'와 '청춘농장'
브레인피트니스게임 '청춘낚시'와 '청춘농장'ⓒ비전웍스

비전웍스는 ‘내 마음이 들리니’ 뿐 아니라 시니어들의 치매예방을 위한 브레인피트니스 게임 ‘청춘농장’ 시리즈로 지난해 해외에 진출하기도 했다. 청춘농장.청춘낚시는 독점 계약으로 중화권에 수출되고 있다.

또한 한국, 중국, 일본 등 테이블탑 게임 디자이너들의 네트워크인 ‘이노베이션 게이밍 아시아’를 설립해 공동컨텐츠 개발과 퍼블리싱 등을 추진하면서 시장 확대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많은 분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사회적 기업을 시작했다가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절대 소비자들이 그냥 사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상업적으로도 승부수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시장 개발과 지속적 노력이 필요해요.”

김백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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