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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부정하는 법원이 양승태 재판 칼자루를 쥐었다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험난했던 사법농단 수사가 일단락됐다.

이번 사법농단 사건 수사의 경우 ‘검찰 수사’ 그 자체로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통상적인 수사와 달리 핵심 자료 제출 거부, 주요 압수수색 영장 기각 등 법원의 철통같은 수사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처한 상황은 분명 이례적이었다.

이런 특이한 외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단순히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검찰 수사의 성과는 분명 있다.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세 차례에 걸친 법원의 자체조사로 확인된 수백 건의 문건에 미완성 퍼즐처럼 띄엄띄엄 담겨 있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하 전‧현직 사법 수뇌부들의 재판거래 등 사법독립 훼손 행위를 ‘범죄 혐의’로 완성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파생된 각종 행정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화로 인해 생겨난 소송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재판 등 주요 재판 현안을 두고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와 거래한 흔적은 검찰 수사로 구체화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오랜 기간 동안 결론이 나지 않았던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상고심이 13년 만에 마무리되기도 했다.

법원 자체조사 문건에 담겼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법관 소모임 파괴 공작 등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인사 불이익을 주려고 시도한 흔적도 범죄 혐의로 완성됐다. 이 수사 과정에서는 사법행정에 반대하는 대한변협 및 회장들을 압박하기 위한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도 발견됐다.

전‧현직 판사 및 법원 공무원들이 연루된 법조비리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한 흔적도 추가로 드러났다.

‘최고법원’이 어딘지를 놓고 헌법재판소와 위상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우위를 선점하고자 양승태 사법부가 법원과 권한이 겹치는 헌재 사건 정보를 부정한 방법으로 빼내거나, 특정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를 이용해 헌재를 압박하고자 시도한 정황도 확인됐다. 헌재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법률신문에 대필 기사를 게재하도록 하는 등 치졸한 방법으로 헌재를 공격한 점도 드러났다.

이와 관련한 혐의들의 경우 법원이 잇따른 영장 기각에 따른 비판 여론 속에서 면피용으로 제한적으로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확인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성과가 남다르다.

사법농단 수사 쥐고 흔들었던 법원, 이제는 확실한 칼자루를 쥐었다

통상적인 사건이었다면 재판을 통한 사법부의 단죄로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사부터 기소까지 드러난 양상을 고려했을 때 재판 결과를 마냥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검찰 수사는 초반부터 법원의 철통 방어에 번번이 가로막혔고, 결과물은 수사의 단초가 됐던 법원의 자체조사 문건을 다듬은 수준에서 크게 더 나아가지 못했다.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김철수 기자

법원은 7월 초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핵심 관련자들과 관련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것을 시작으로 핵심 영장들을 잇달아 기각하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그동안 법원이 발부해 준 영장은 전직 판사들의 자택이나 재판거래 대상으로 지목된 관련 정부 부처, 옮긴지 얼마 되지 않은 현직 판사들의 법원 사무실 등에 대한 것으로, 매우 제한적인 수준이었다. 반면 범죄가 실행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나 법원행정처를 수색 장소로 특정한 영장 등 대법원 조직 내부를 관통하는 압수수색 영장은 대부분 기각했다.

조직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이는 영장은 기각하는 것과 동시에 수사 확대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영장은 발부해주는 식으로 적당히 구색을 맞춰가면서 검찰 수사를 컨트롤했던 셈이다.

특히 영장판사들이 영장 기각 사유에서 밝혀온 ‘무죄의 심증’들이 결과적으로 본 재판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들은 8개월여 간의 수사 기간 동안 주요 압수수색‧구속 영장 심사 단계에서 ‘죄가 되지 않는다’,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등 사실상 본안 판단에 가까운 장문의 기각 사유를 대면서 사법농단의 본질 자체를 부정해왔다.

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압수수색·구속 영장 기각률을 놓고 본다면 법원 내에서는 공식적으로 혐의를 부정하는 판단이 혐의를 인정하는 판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누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본 재판에 회부된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양상이다.

따라서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넘겨진 지금 상황은 ‘사법농단 자체를 부정하며 수사를 쥐고 흔들었던 법원이 확실한 칼자루를 쥔’ 상황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농단 ‘총책’ 양 전 대법원장과 ‘실무 책임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것은 의외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법원의 전방위적인 방해 공작들을 감안했을 때 정상적인 사법 절차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여론의 영향에 크게 좌우된 것이라는 평가가 자연스럽다.

고위법관들의 결속과 내부투쟁 등 법원 내 분위기도 변수

상당수 판사들이 부정하겠으나, 법원 내부 분위기는 재판에 매우 유력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헌법상 법원은 독립된 개별 법관들이 모인 조직이지만, 이미 사법농단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실질적으로는 수직 폐쇄적 조직에 가깝다. 그만큼 내부에서 고참 판사들의 목소리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부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오긴 했으나, 고위 법관으로 분류되는 고법 부장급 이상의 고참 판사들은 그동안 줄곧 검찰 수사에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법관들의 결속을 주문하는 등 내부투쟁을 벌였다.

그러면서 고참 판사들을 중심으로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견고하게 조성됐다.

삼성그룹 고위 인사에게 아부성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밤샘조사한 것을 두고 위법하고, 판사들이 밤샘조사로 작성된 피의자 진술조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내부망에 올려 여론전을 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개입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아 법원행정처와 교감했던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가 위법하다고까지 주장하며 노골적으로 ‘법관들이여 단결하자’를 외치기도 했다.

그나마 사법농단 사태를 부끄러워하고 있을 지방법원 부장급 이하 비교적 젊은 판사들은 하루 수십건의 재판을 처리하는 데 여념이 없다. 곧 ‘재판 처리에 몰두하는’ 정상적인 판사들은 불행하게도 고참 판사들의 내부투쟁에 저항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징계 처분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법원의 공식적인 대응 역시 ‘면죄부 재판’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수십 명의 현직 판사 중 고작 13명의 판사만이 징계 절차에 회부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상당수가 면죄부 처분을 받았다. 법관징계위원회는 13명 중 3명에 정직, 4명에 감봉, 1명에 견책 처분을 내리기로 의결했다. 2명에 대해서는 불문, 3명에는 무혐의 처분을 결정했다.

이 징계 결과에서 명확히 드러난 것은 사법농단 책임·연루자들을 단죄할 의지가 없다는 법원의 확고한 태도였다. 이러한 법원의 공식적인 태도는 일선 법관들이 검찰 수사를 방해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미 사법농단 문건이 확인된 작년 5월 말 대법원 자체조사단은 어마어마한 헌법 훼손 행위를 보고서에 적시하고도 형사 조치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후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한 법원의 공개적인 조치는 쏟아지는 여론의 뭇매에 못이긴 김명수 대법원장은 ‘조건부 수사 협조’를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내부적 분위기에 힘입어 법원은 임의제출 거부, 압수수색·구속영장 기각 등으로 검찰 수사를 촘촘하게 틀어막을 수 있었다.

강경훈 기자

법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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