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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죽음의 경계에 선 ‘자매들’ 온몸으로 끌어안는 ‘직업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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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버 성폭력 대응센터 활동가 이효린 씨
한국사이버 성폭력 대응센터 활동가 이효린 씨ⓒ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매일 죽고 살기를 반복하는 여성들이 있다. 불법 촬영 및 동의 없는 유포 피해자다. 죽음의 경계에 내몰린 이들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성들이 있다. 한국 사이버 성폭력 대응센터(이하 한사성) 활동가다.

“의지하는 사람들의 절실함이 너무 무거워 근육을 파고드는 것” 같아도, “손깍지를 껴서라도 줄줄 새어나가는 자매들을 끌어안으려 안간힘”을 쓰고, “자매들이 잠시나마 안정을 느낀다면 기꺼이 어깨를 내주는” 사람, 한사성 활동가 이효린 씨를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효린 씨를 처음 만난 곳은 지난달 30일 광화문에서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다. ‘국산 xx녀’로 소환될까 죽어서도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자리였다. 피해지원자로서 “눈과 귀로 피해를 간접 경험”하며 “당사자와 유사한 통증”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피해자만큼이나 애처로웠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통증이 다양한 결로 한꺼번에 짓눌러” 왜 아픈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피해자들의) 떨리는 목소리만큼이나 마음을 졸였고,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 ‘다 끝났으니 괜찮다’라고 말할 수 없어 복숭아씨를 삼키듯” 말을 삼켜야 했다. 국가가 방관한 이들의 죽음 앞에서 그의 어깨는 참으로 무거워 보였다.

지난 30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등 주최로 불법 촬영 및 비동의 유포 피해자들을 위한 ‘이름 없는 추모제’가 진행됐다
지난 30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등 주최로 불법 촬영 및 비동의 유포 피해자들을 위한 ‘이름 없는 추모제’가 진행됐다ⓒ민중의소리

죽음에 이르게 된 피해자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됐던 추모제를 통해 많은 이들은 다시 한번 사이버 성폭력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시 만난 효린 씨는 “예전부터 ‘사람이 죽고 있다’라고 말해왔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라며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운 활동에 대해 깊은 회의감과 우려를 나타냈다.

“‘사람이 죽는다’라는 말로 타격을 입는 사람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 경험자예요. 피해 경험자의 죽음이 ‘유작’이란 이름으로 상품화되는 현실에서 가해자들은 사람이 죽든 말든 신경 안 써요. 그런데 피해 경험자들은 ‘이런 피해를 보면 응당 죽는다’라고 학습하게 되죠. 죽음을 말하는 것 자체가 가해가 되는 세상이에요”

이런 걱정 속에서도 한사성은 추모제를 열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다. “(피해 사실을) 가족·지인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세상에 딱 1명, 오직 한사성 피해지원자에게만 말하는 피해 경험자도 있어요. 만약 그런 분이 죽는다면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 거예요. ‘자살자 1’로 집계되는 거죠”

그는 “피해자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강조했다. 국가가 불법 촬영물을 유통해 돈을 번 온라인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다. “많은 피해자가 ‘죽어야 끝날까요’라고 묻지만, 죽어도 끝나지 않는 사례들을 목격하고 있어요. 사회에 그 책임을 묻고 싶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10년 차 직장인, ‘빨간약’ 먹고 ‘직업 페미니스트’로

10년 차 직장인이던 효린 씨는 한사성 활동을 시작으로 ‘직업 페미니스트’가 됐다. “저도 일반 사회에 편승하는 사람이었어요. 수직구조를 수행하고, 그 안에서 안정을 느꼈죠. 개인의 삶에만 치열했어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전까지 말이다. 그는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세대’였다.

‘가랑비 옷 젖듯’ 페미니즘에 스며들었다는 효린 씨. “우연히 페미니즘 관점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을 분석한 글을 읽게 됐는데, 너무 맞는 말인 거예요. 그때부터 페미니즘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용자를 팔로잉해서 모든 글을 보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눈을 떠서 자기 전까지, 생업을 수행하는 것 이외의 모든 시간을 투자했죠”

“‘무조건 나같이 (페미니즘에) 미쳐있는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효린 씨는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처음 페미니즘을 알게 된 사람은 흔히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은 주인공 네오에 비유된다. “지금껏 알던 세계가 깨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안전하지 못함을 인지하게 됐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이효린 씨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이효린 씨ⓒ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효린 씨는 10년 동안 콜센터 CS(Customer Satisfaction·고객 만족) 강사로 근무했다. 콜 센터 상담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교육을 하고, 이들의 업무 태도·능력 등을 평가해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일을 했다. 그에게도 경력을 쌓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너무 비인권적이었어요. 콜 조직은 다양한 여성의 집합체에요, 사회 초년생부터 경력단절 여성까지. (직원들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수천 콜을 들으며 온갖 차별과 멸시, 모욕을 목격했어요. ‘을’인 사람이 무조건 친절을 베푼다는 것에 익숙했는데, 페미니즘을 알고 나니 왜 견뎌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일에 환멸을 느꼈다. “성적 모욕을 당한 직원에게 말뿐인 위로를 하고, 다음 콜에서 다시 친절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했어요.” 새로 만든 가치관에 반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을 목격하니까 계속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기회가 되면 CS 업계 인권 활동도 하고 싶다는 효린 씨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여성을 위한 페미니스트로서 살고 싶었어요” 그는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길을 택했다. 페미니즘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한사성을 소개해줬다. 처음 발만 살짝 담가보려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그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한사성에 눌러앉았다. 그는 “부자 되기는 글렀다”라며 웃어 보였다.

“처음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제가 미쳐가는 줄 알고요 하하. 엄마는 항상 ‘네 주장만 펼치지 말고, 과격하게 말하지 말라’라고 당부하셨어요. ‘메갈’로 낙인찍혀서 욕먹는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시기도 했죠” 전적으로 효린 씨의 활동을 신뢰한다는 요즘도 걱정은 계속됐다. “혜화역 시위에서 여성들이 삭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하게 연락이 왔었죠. 하하”

피해자의 고통 함께 짊어진 지원자

효린 씨는 한사성에서 여성주의 상담, 영상물 삭제, 수사·법률, 심리치료 연계 등 피해지원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피해지원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효린 씨는 망설임 없이 “저의 부족함”이라고 답했다. “페미니즘이 원하는 세상을 꿈꾸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면, 피해지원은 예측할 수 없는 미로가 눈 앞에 펼쳐진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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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피해 경험자들은 지원자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과거의 저는 든든하게 지지할 만큼 역량이 못 됐죠” 효린 씨는 과거에 만났던 수많은 상담자가 각각 “하나의 통증”이라고 말했다. 미흡하고 부족한 지원자를 만나서 더 힘든 경험을 하게 됐을까, 항상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활동가보다 ‘지원자’로서의 정체성을 먼저 받아들였다. 그만큼 지원자의 자격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지원자는 콜센터처럼 적당한 공감 기술을 활용해 매뉴얼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피해 경험자가 고통스러운 이유를 파악해, 안전해질 수 있는 모든 과정에 실제 조력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죠.”

상담자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과정은 필수적이었다. “처음에는 면역력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렇게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간접적으로 그들과 유사한 통증을 느끼며 같이 고통에 매몰됐죠” 한편으로는 그 절실함이 너무 무겁고, 구원자가 돼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꼈다.

“어떻게 이겨냈는지 잘 모르겠다”라며 웃는 효린 씨다.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양한 고통을 함께 나누며 단련된 것일 수도 있고, 계속 추구하던 지원자 자격을 이행하기 위해서 고민했어요” 이젠 감정을 처리하며 전문적으로 보이게 행동할 수 있게 됐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효린 씨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을 한다. 아무리 업무가 과중해도 미룰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피해지원은 자기 인생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내 자원들을 고갈시켜가며 하는 일이니까요. 여가·취미 등 기본적인 삶의 안위는 전부 포기했죠.”

원동력은 무엇일까? 효린 씨는 “여성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리아 사무국장의 말에 공감한다고 했다. “피해 경험자가 안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일해요. 뭘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보단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죠. 그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피해 소화해낼 거라 ‘자매들’ 믿어

지원자의 노력과 정성에 비례해 피해자의 고통이 줄어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피해 촬영물 삭제도 다 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끝나고, 심리치료까지 받고도, 저랑 전화만 하면 우는 피해 경험자들이 있어요. 제 목소리가 ‘트리거’(trigger)인 것처럼요. 모든 지원 활동이 끝났다고 피해 경험자가 괜찮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지원자는 피해자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어줄 뿐이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피해자의 몫이다. 효린 씨는 ‘자매들’을 믿었다. “제가 ‘피해 경험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피해를 당한 수동적 존재가 아니고, 피해를 경험한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다양한 통증 중 하나로, 경험으로 소화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피해 경험자가 죄책감으로 피해에 갇혀버리면 숨이 막힐 수밖에 없어요. 좀 떨어져서 자신의 피해를 조망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이잖아요. 여성주의 시각에서 피해를 들여다보면, 피해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응할 용기와 투지가 생겨요. 그때 비로소 피해가 회복되는 거죠.”

고통과 절망을 넘어 가해 구조와 싸우는 피해자들을 향해 효린 씨는 존경심을 표했다. 그는 이들의 연대자, 조력자로서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이 안전해지는 그 날까지”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운동을 함께 해나가는 수많은 동료 자매들의 안전과 건강을 빌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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