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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 좌파 대통령 3개월, 개혁이 정신없이 이뤄지고 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오브라도르 대통령. 오브라도르는 그 동안의 관행과 달리 기자회견에서의 자유로운 토론을 즐겨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9.1.9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오브라도르 대통령. 오브라도르는 그 동안의 관행과 달리 기자회견에서의 자유로운 토론을 즐겨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9.1.9ⓒAP/뉴시스

지난 12월 1일, 일명 “암로(AMLO)”로 불리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멕시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암로는 의회에서 열린 취임연설을 통해 “멕시코의 4차 변혁”을 선언했다. 이 선언은 멕시코의 독립전쟁(1821)과 1850~60년대의 개혁기, 그리고 멕시코 혁명(1910)에 이어 “새로운 정권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체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암로 자신도 이것이 허식이나 과장처럼 들릴 것이라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은 실제로 현대 멕시코 정치사의 커다란 성과였다.

13년 전, 멕시코 시장이었던 암로는 같은 장소에서 부패 혐의로 그를 탄핵하려는 보수 정당들에 맞서 자신을 변호했다. 하지만 오브라도르는 두 번의 실패 끝에 결국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그의 정당인 국가재건운동(MORENA)은 하원과 상원을 모두 장악했다. 그것도 대선에서 97%의 지역구를 휩쓸어 제도권 정당들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며 말이다.

정치권력과 경제적 권력

과장이든 아니든 “멕시코의 4차 변혁”이라는 말은 이제는 일상용어가 됐다. 암로의 아군이건 적군이건 폭풍처럼 지나간 지난 몇 달을 이해하려 쓰는 용어로 말이다.

지난 2000년, 71년 만에 처음으로 멕시코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큰 감흥 없이 매끄럽게 이뤄졌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공감대가 최고점에 이르렀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멕시코에는 세계의 다른 여러 곳과 마찬가지로 그런 공감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브라도르는 취임연설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완전한 실패로 멕시코에겐 재앙이었다”고 규정하며 선거운동에서 강조했던 주제를 다시 언급했다. 신자유주의는 부패와 직결돼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에서 민영화는 부패의 동의어였다... 정치권력과 경제적 권력이 결탁해 민중을 수탈했다.”
역시 암로의 취임사에 나오는 말이다.

멕시코에서는 공공부문에서 민간부문으로 부가 계속 이전됐는데, 암로가 진심으로 수십 년간 이어졌던 이 고리를 끊고 정치 엘리트와 자본이 합작해 지대를 추구하는 걸 막으려 한다면 그의 권력 교체는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까지는 오브라도르가 진심인 것 같다. 오브라도르 정권은 첫 몇 달동안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냈다.

권력과 정치적 지배 계층의 상징들이 철저히 해체됐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호화로운 대통령궁을 일반인에게 개방해 문화공간으로 전환했고, 대통령 전용기 대신 일반 항공사를 이용하며 경호원 없이 국내에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공항을 찾은 여행객들이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대통령을 편의점이나 노점상에서 보는 것, 그리고 일반인들이 대통령과 셀카를 찍거나 그에게 자신의 고충을 담은 서류 봉투를 건네는 일이 이제는 흔한 광경이 됐다.

이런 상징적인 제스처와 함께 실질적인 정부 정책 또한 놀라울만큼 끊이지 않고 나왔다. 아욧지나파 교육대학교 소속의 대학생 43명의 실종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의 설립,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권 신장, 전국적인 최저임금 인상, 10여 명의 정치범 석방, 그리고 거대 기업들이 탈세에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인 구멍 메우기 등이 줄줄이 이뤄졌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멕시코 교육대학생 43명이 집단 실종된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위원회 설립을 공표하는 동안 실종자 가족들이 자식들의 사진을 들고 서 있다. 지난 2014년 9월 시골 출신 교사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시티로 이동 중이던 대학생 43명이 집단 실종된 이 사건은 멕시코 갱단이 살해했다는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피해자의 시신은 찾지 못했고 가해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었다. 2018.12.3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멕시코 교육대학생 43명이 집단 실종된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위원회 설립을 공표하는 동안 실종자 가족들이 자식들의 사진을 들고 서 있다. 지난 2014년 9월 시골 출신 교사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시티로 이동 중이던 대학생 43명이 집단 실종된 이 사건은 멕시코 갱단이 살해했다는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피해자의 시신은 찾지 못했고 가해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었다. 2018.12.3ⓒAP/뉴시스

이런 개혁이 호의적인 환경에서 이뤄진 것도 아니다. 언론은 오브라도르 정권에게 적대적이고 전문가들은 공격적이며 국제 자본으로부터의 압력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무엇도 국민의 의지를 뒤흔들지 못했다. 이 사정을 이해하려면 오브라도르의 지지율이 놀라운 정도라는 것을 아는 것이 핵심이다. 취임 당시 60%대 후반이었던 오브라도르의 지지율은 현재 80%대를 상회한다.

전문가들과 오브라도르에 도전하는 정치 세력들, 그리고 국민 대다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다.

국민에게 묻는다

오브라도르의 정책 중 재계의 분노를 가장 크게 산 것은 멕시코시티 외곽에서 진행되던 120억 달러 상당의 신공항 건설 계획을 취소한 것이다.

이 신공항은 죽어가는 옛 체제의 마지막 성과물이 될 초거대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이 공항은 오브라도르가 그렇게 강조했던 신자유주의와 부패의 유착 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주된 사례였다.

신공항은 부패의 패턴에 딱 맞아떨어진다. 정부가 모든 위험부담을 안고 기업들이 모든 수익을 가져가는 패턴, 그리고 기업이 정부 사업의 예산을 갉아 먹고 정부는 민간기업과 부풀려진 가격에 계약을 맺으며 외국 자본에 대한 부채는 늘어나고 심각한 환경파괴 문제는 무시하는 패턴 말이다.

게다가 지난 정권이 이미 멕시코시티 외곽에 있는 다른 공항의 활용도를 이 새로운 “밑 빠진 독”과 같은 프로젝트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낮췄다는 의심이 팽배했다.

그러나 신공항의 건설은 이미 30%나 진행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로가 이 계획을 취소하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민에게 묻는다(consulta popular)”가 있었다. 여당인 모레나(MORENA)가 준비한 이 여론조사에서는 약 백만 명이 참여해 압도적으로 신공항 건설 계획 폐지의 손을 들어줬다.

이 여론조사는 급하게 조직됐고 법적 구속력도 없다. 정부 반대 세력은 “기술적”인 결정을 국민에게 맡겼다는 사실에 반발했고 일반 선거에서 있는 투표에 대한 보안 장치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음을 지적했다(후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오브라도르의 민주적 실험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멕시코의 등록된 유권자에 비하면 여론 조사에 참여한 백만 명이 상대적으로 적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MORENA 지지층의 열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으로 드러났다.

제도권 엘리트들이 오브라도르에게 반발한 두 번째 이유는 지나치게 비대하다며 그가 행정부의 상위층을 계속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브라도르가 취임하기 이전까지는 멕시코의 중위에서 고위 공무원들의 월급이 세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매우 높았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대법관은 연봉이 거의 40만 달러에 이른다 (미국의 대법관 월급은 그 절반쯤이다). 그리고 오브라도르는 본인의 월급도 절반으로 줄였다.

신자유주의 기술 관료들은 경악했지만 오브라도르는 국가기관들이 “위에서부터 아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런 움직임을 정당화했다.

이런 “공화적인 긴축(republican austerity)” 정책은 법원에 의해 일단 중단됐지만 대통령에 대한 국민 다수의 지지도는 더 높아졌다. 또, 대중적인 압력 덕분에 처음에는 급여 감축법을 저지했던 판사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월급을 25% 삭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브라도르가 대통령이 된 이후 벌인 싸움 중 가장 극적인 것은 뭐니뭐니 해도 페멕스에 대한 공공연한 도둑질을 막는 것일 터이다.

멕시코 국영정유사인 페멕스(PEMEX)는 하루에 약 900만 리터의 휘발유를 도둑맞는 것으로 추정된다.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휘발유를 절도하는 이 방식은 지난 10년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여기에는 페멕스의 관리자급을 포함한 모든 직급의 공무원들, 그리고 이들과 연루돼 있는 조직 폭력배들이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페멕스 보안 노동자가 불법적인 파이프라인 구멍을 찾고 있다. 2018.12.27
페멕스 보안 노동자가 불법적인 파이프라인 구멍을 찾고 있다. 2018.12.27ⓒAP/뉴시스

이 네트워크를 와해시키고 휘발유 분배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을 회복하려던 노력은 처음에는 상당수의 주에서 휘발유 공급 부족 현상을 초래했다. 지난 1월에는 틀라후엘릴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급히 만들어진 불법 절도용 파이프라인이 폭발해 125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휘발유를 재빨리 가져가려는 마을 주민들이 몰려든 탓이다.

국가 권력의 재확립이라는 시급한 요구는 정부의 국가방위대 창설 제안을 둘러싼 논쟁으로도 드러났다.

멕시코는 지난 10년간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약과의 전쟁에 경찰보다 덜 부패한 군을 투입해 왔는데, 암로가 군을 대신할 조직으로 국가방위대를 만든 것이다. 국가방위대는 재훈련을 받은 군필자와 신병들로 꾸려질 예정이며, 군이 지휘하다가 5년 후에는 민간인 통제로 넘어가게 돼 있다. 그리고 민간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국가방위대원은 군사재판이 아닌 일반 재판에 넘겨진다.

하지만 집권당인 모레나 내부에도 국가방위대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다. 일상생활이 지나치게 군사화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멕시코 군은 법적으로 모호한 상태로 마약과의 전쟁에 투입됐고 우려할 만큼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 오브라도르가 선거 기간 동안 국가방위대 창설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여기서 군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사실 오브라도르도 그간 군이 수행한 공공치안 유지 기능을 비판해 왔던 터다.

오브라도르가 왜 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으려고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올가 산체스 코르데로 국무장관이 설명했듯, 이번에 제안된 국가방위대는 공공치안에서 군을 완전히 빼버리는 것과 군이 공공치안을 맡았으면 하는 국민의 요구 간의 절충안이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국가방위대 창설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다.

아래로부터의 변화

암로의 반-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또 다른 한계들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좌파 모레나가 드디어 정권을 장악하기는 했으나, 그동안 우파가 국가 권력을 너무 오랫동안 와해시켜 온 터라 새 정부가 자기 계획을 실행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탓에 정권은 어쩔 수 없이 정부와 민간의 공조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노년층과 장애인, 그리고 학생들에게 현금을 주겠다는 오브라도르의 야심찬 계획은 아스테카 은행의 행정 인프라에 의존한다. 이 은행의 소유자는 언론 재벌인 리카르도 사리나스 플리고인데 아스테카 은행의 이사회장은 현금 지원의 수혜자들을 자기 은행의 (종종 약탈적인) 대출 고객으로 간주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오브라도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공공기반시설 프로젝트로 유카탄 반도를 순환할 예정인 “마야 열차” 또한 정부와 민간 합작으로 이뤄진다. 물론 이전 프로젝트들보다는 정부에게 유리한 조건이겠지만 말이다.

실업 청년들을 보조하려는 루이스 마리아 알칼데 노동부 장관의 실업 청년 보조 프로젝트도 결국 민간 기업체의 인턴십을 정부가 보조하는 꼴이다.

수백만 명에게 도움을 줄 이런 정책들을 그냥 묵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정책들로 오브라도르가 취임하기 전에 그렇게 비판했던 정치권력과 경제적 권력의 유착이라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자칼로 광장에 모여든 멕시코인들. 왼쪽의 대성당과 정면의 대통령궁이 보인다. 2018.12.1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자칼로 광장에 모여든 멕시코인들. 왼쪽의 대성당과 정면의 대통령궁이 보인다. 2018.12.1ⓒAP/뉴시스

어찌되었건 멕시코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꼭 암로의 정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다. 지난달만 해도 마타모로스의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임금 인상을 쟁취했고, 전투적인 여성운동이 증가하는 여성 살인 사건들과 성폭력에 맞서 정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한편 보수 야권은 선거 참패의 충격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야권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깊은 집착을 제외하고는 오합지졸처럼 혼란에 빠져 있고 자신을 대안 세력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와 우파의 혼란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멕시코의 4차 변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기사출처:Mexico’s Fourth Transformation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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