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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판결” 안희정 1심과 똑같은 해군 성폭력 2심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재판정 군사법원 마크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재판정 군사법원 마크ⓒ뉴시스

성 소수자 여군을 성폭행한 해군 상관들 사건을 심리한 고등군사법원 특별부(재판장 홍창식)는 지난해 11월 중형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역대 최악의 판결"이라는 비판이 잇달았다.

이 사건은 지위를 이용해 비서를 성추행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사건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력한 폭행과 협박이 없다고 판단한 법원의 태도도 같았다.

“이제 어떻게 신고할 수 있을까요” 2심 판결 이후 여군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라고 국방부 성고충전문상담관은 전했다. 이번 결과는 상습 악질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을 넘어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입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등군사법원 최악의 판결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이전 판결의 문제점들을 짚었다.

남성의 ‘착각’ 언제까지 인정해야 하나
상대방 ‘동의’ 얻기 위해 어떤 노력 했나

2010년 9월부터 12월 사이 피해자는 두 명의 해군 상사로부터 강간·강제추행을 당했다. 첫 번째 가해자는 직속 상관인 A 소령으로, 피해자가 성 소수자임을 이용해 2회 강간과 10회 강제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이 피해로 임신을 했고, 임신 중지 수술이 필요해 당시 함장이었던 B 중령(현재 대령)에게 피해를 보고했다. 이후 B 중령은 임신 중지 수술 사실을 알고 있음을 빌미로 피해자를 1회 강간했다.

1심은 각 공소사실에 대해 전부 유죄라고 판단해 A 소령에게 징역 10년, B 중령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불륜’이었다는 가해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피해자가 성 소수자라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고 보지는 않으면서도,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피해자로 인해 가해자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줄 ‘착각’할 수 있다고 봤다. 가해자에게 위법성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친절하게 대하면 자신에게 호감이 있을 것이라는 남성 중심적 착각을 법이 어디까지 보호해줘야 하는가”라고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적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등군사법원 최악의 판결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등군사법원 최악의 판결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한국성폭력상담소

재판부는 가해자의 행위보다 피해자의 저항 행동에 집중했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할 만한 폭행·협박 등 강력한 강제력이 없었기 때문에 강제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안 전 지사 1심의 주요 논리와 같다.

권력적 위치에 있는 가해자가 성적 요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강제력이 될 수 있으며, 권력 이용을 위해 특별한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무시됐다. 명확한 계급적 상하 관계에서 소극적으로 보이는 미미한 저항이 피해자에게 최대한의 저항이라는 사실도 외면됐다.

대법원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의’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부연구위원은 “상급자에 의한 성적 접근이 상호적 성관계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가시적 강제력 없음’과 같은 소극적 증거가 아니라 권력 관계가 내포한 강제성을 제거하고 상대방의 진의를 확인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입증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해자는 상대방의 의사를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추정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의사를 상대방에게 표현하도록 요구했다”라며 “상급자는 하급자의 진의를 알 필요가 없고, 모르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대방의 적극적 동의를 얻지 못한 경우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판례를 소개했다.

폭행·협박이 없고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집단 강간 사건에서 ‘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가해자들의 주장에, 법원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특수한 유형의 성관계에서 여성이 이를 거부할 것이라는 인식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옳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때 가해자가 여성으로부터 적극적·명시적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내심으로 거부적 입장이 분명함에도 반항이 억압된 채 마지못해 성관계에 순응하고 있는 피해자의 태도를 추정적 동의로 간주하고 일탈적 성관계에 돌입했다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가 있음을 알거나 미필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봤다.

이 판례에 따르면 한 명의 여성과 다수의 남성 사이 성관계가 일반적인 성생활 자유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듯, 성 소수자 여성이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것 역시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묵시적 동의를 주장하는 이 사건 가해자 진술을 특별한 사정 없이 인정한 2심의 판단이 잘못됐다.

여군·해군·성 소수자 상황 고려 안 돼
성폭력 아니라 동성애 처벌한 법원

2심 재판부는 강간의 책임을 ‘피해자답지 않은’ 피해자에게 전가했다. 함께 식당을 가거나 단둘이 드라이브를 했고, 피해자가 서울을 갈 때면 버스터미널로 배웅이나 마중을 하러 갔다는 등 연인 관계를 증명하는 가해자 진술이 받아들여졌다. 피해자 진술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됐다.

또 피해자가 피해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고, 피해 이전에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취지의 사후적 판단으로 피해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해 ‘피해자답지 않다’라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을 배격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에 반한다.

29일 ‘해군 상관에 의한 성 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응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29일 ‘해군 상관에 의한 성 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응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중의소리

피해자의 저항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과 사건이 발생한 맥락은 삭제됐다.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는 대법원이 여성 군인의 군대 내 위치와 해군 함정의 특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군인 교육의 첫 번째는 복종이다. 상관이 지시하면 1초도 고민해선 안 된다”라며 가해자가 상관으로 갖는 위력이 민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한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누비는 해군 함정의 고립된 근무 환경에서 상관의 권력은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피해자는 길이 약 130m, 폭과 넓이 약 14m의 소규모 함정에서 근무하며, 한 번 출항하면 20일 정도를 항해하는 등 더욱 폐쇄된 집단생활을 했다. 이 같은 격오지 근무에서 구성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름 아닌 상관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함정의 경우 사수가 100% 책임진다.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모든 일과가 사수에게 보고된다. 남자 사수에게 생리 주기까지 보고하기도 한다”라며 “사생활 통제가 아니라 관리를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2심이 친밀한 관계의 증거로 인정한 드라이브, 터미널 배웅, 관사 방문 등에 대해서 김 대표는 “당연하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배에서 나온 인원이 무사히 다시 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상관이 부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병력 관리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성폭력 피해 여군이 상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권력의 핵심에는 ‘인사 권한’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대표는 “어린 여군들에 대한 성폭력이 많은 이유 중 하나도 이들이 군에서 직업 군인으로 인정받는 1차 관문인 장기복무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남군보다 장기복무·진급 등이 어려운 여군의 현실도 반영됐다. “군에서 진출 심사가 치열해 근무 평정과 함께 지휘관 추천 서열, 조직 내 평판 등이 활용된다”라며 “가해자에게 자신의 미래가 달린 것이 피해자에겐 엄청난 좌절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심이 처벌한 것은 “성폭력이 아니라 동성애”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권김현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는 “레즈비언이 남성과의 성관계에 동의할 가능성 자체가 없음에도, 피해자가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판결문에 명시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이성애를 강제하겠다는 가해자에 법원이 동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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