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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누구나 떠나는 제주 여행 BGM
제주도
제주도ⓒPixabay

이제는 누구나 제주도에 간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혼여행으로 겨우 다녀왔는데, 요즘엔 택시를 타듯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간다. 바닷가 근사한 카페를 찾고, 오름에 오른다. 숨은 #도민맛집을 검색해 흑돼지와 회를 먹는다. 독립서점에 가기도 하고, 테마파크도 기웃거린다.

사실 제주도는 일년 365일 내내 다르다. 중산간과 바닷가가 다르고, 동쪽과 서쪽이 다르다. 북쪽과 남쪽도 다르다. 한 두 번 와봐서는 온전히 알 수 없다. 남들 가는 곳만 쫓아다녀도 한참 걸린다. 사람이 몰리니 돈이 몰리고 새로운 볼거리, 먹거리가 계속 늘어난다. 제주도는 아무데나 가도 좋다. 파도 치면 파도 쳐서 좋고, 걸으면 온통 하늘이어서 좋다. 바람 몰아칠 때도 바람다워 좋다. 꽃향기 흐르는 섬, 바다가 보이는 섬은 여전히 신비롭고 신령스럽다.

김창훈 '제주 사운드스케이프 Ⅱ'
김창훈 '제주 사운드스케이프 Ⅱ'ⓒ김창훈

어떤 제주 여행을 원하는지에 따라 바뀌는 여행 BGM

제주도에 오는 이들은 대개 놀러 오고 먹으러 오고 쉬러 온다. 음악을 들으러 제주도에 오는 이는 드물다. 그렇다고 제주에 머무는 동안 일부러 귀를 막을 필요는 없다. <감수광>과 <제주도의 푸른 밤>이 제주도 노래의 전부가 아니다. 지금 제주도에 사는 뮤지션들만 해도 두 손으로 다 못 센다. 1972, 강산에, 강허달림, 김세운, 루시드폴, 묘한, 박하재홍, 방승철, 블루315, 사우스 카니발, 섬의편지, 소리왓, 싱잉앤츠, 여유와 설빈, 오마르와 동방전력, 요조, 윤영배, 이상순, 이소, 이효리, 임인건, 장필순, 조동익, 조성일, 조약골, 젠 얼론, 최구희, 최상돈, 최성원, 허클베리 핀, B동 301호까지만 해도 페스티벌 규모다. 이들의 음악을 한 곡씩만 들어도 제주 여행 내내 음악이 멈추지 않는다. 몰라서 쓰지 못한 뮤지션들을 직접 찾다보면 제주 여행은 얼마든지 음악 여행이 될 수 있다.

어떤 제주 여행을 원하는지에 따라 BGM을 바꾸면 된다. 쉬고 싶다면, 제주의 오름과 바다에 잠기고 싶다면 음악을 끄고 바람과 파도의 이중주를 듣는 편이 낫다. 그러다 임인건과 장필순의 음악을 들으면 음악이 제주의 자연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밀려온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건너온 두 뮤지션의 음악은 어느새 제주도를 닮았다. 특히 2018년에 내놓은 장필순의 8집 [soony eight:소길花]는 30년 내내 음악을 해온 뮤지션의 삶에 제주도가 스며 빚은 명반이다. 옮겨온 곳에서 삶은 이어졌고, 그 삶은 달랐다. 움켜쥐기보다 지켜보고, 운명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동안 마음은 노을처럼 타올랐다 스러졌다. 슬픔도 그만큼, 기쁨도 그만큼, 그리움도 그만큼이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섬이 태어나 오늘에 이르렀듯 삶도 만남과 이별 속에 영원으로 잠겼다. 장필순과 조동익, 그들의 음악 공동체는 이 음반을 집요하고 느리게 빚으며 음악을 향해 인생을 다한 이들이 얼마나 깊고 새롭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어느 햇살 아래에서건 어느 어둠 아래에서건 임인건과 장필순의 음악을 듣는다면 더 평화로울 수 있다. 제주도를 떠나 돌아가더라도 남은 날들의 속도를 조금 늦추는 일이 덜 두려워질 수 있다.

그런데 제주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고, 역사가 깊은 곳임을 안다면 조금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길 필요가 있다. 제주의 삶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섬이라는 조건이다. 제주 사람들은 섬의 자연을 따르며 살아왔다. 관광객이 잠시 스치며 감탄하는 땅과 바다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제주시 동문시장, 서문시장, 그리고 곳곳의 오일장에 가면 그 삶이 좀 더 보인다. 해녀박물관에 가봐도 좋다. 제주도의 삶으로 눈과 귀를 열고 싶을 때 김창훈이 기록한 [제주 사운드스케이프 Ⅱ] 음반 “나, 물동이 이상숙이우다” 만한 길라잡이가 있을까. 김창훈은 제주 할머니 이상숙의 이야기, 상수동의 밤에 흐르는 풀벌레 소리, 용머리 해안의 파도소리, 비자림 숲에 감도는 새소리, 가파도의 개구리 소리를 담았다. 늘상 그 자리에 있어 소중하지 않았던 존재들, 그러나 그 존재들이 없다면 제주도가 제주도일 수 없는 제주 사투리 같은 존재의 울림은 제주도가 얼마나 깊고 신비로운 우주의 땅인지 일러준다. 다들 가는 곳만 찾아다니는 제주 여행으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제주가 이 한 장의 음반에 숨어들었다. 어쩌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의 기록이자 소멸의 기록으로 남을지 모르는 소리들 앞에서 무릎 꿇고 오래된 제주를 듣는다. 말보다 많은 말들. 말보다 긴 시간들. 소리가 인도하는 제주의 원형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어떤 여행보다 강렬하고 깊다. 음반을 구하기 어렵다면 raon4414@gmail.com 으로 연락하면 웨이브 파일을 보내준다.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든 음반 [시활짝]의 노래들도 제주도가 기르고 낳은 음반이다. 노래는 뭍에만 있지 않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장필순 8집
장필순 8집ⓒ푸른곰팡이

제주도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 돌아봐야 하는 4.3의 역사

그리고 제주도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4.3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4.3 사태였다가 4.3 사건이었다가 4.3 항쟁이 된 4.3. 분단과 전쟁이 할퀸 상처이자 신념과 의지로 돌파하려 했던 저항의 역사. 오래도록 숨죽여 울어야 했던 통탄의 현대사가 제주도에 있다. 삶보다 가까웠던 죽음. 죽음과 다르지 않았던 삶이 제주에 있다. 세상이 비로소 숨 쉴 만 해졌을 때, 뮤지션들은 [산 들 바다의 노래 제주 4.3 헌정 음반과 [제주 4.3 항쟁 70년만의 편지 – 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노래] 음반을 만들었다. 이 두 장의 음반은 제주 4.3의 음악 추모제이며, 평화를 부르는 기도이다. 두 장의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오래 전에 불렀던 노래들을 다시 불렀고, 새로 만들었다. 음악은 때로 혼자보다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혼자보다 많은 이들의 꿈을 잊지 않게 돕는다. 제주에 왔다면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왜 죽어야 했고, 왜 싸워야 했는지 묻고 답해볼 필요가 있다. 제주는 힐링과 휴식을 위한 바다 건너 휴양지만이 아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아물지 않은 분단의 현장이기도 하다. 4.3 평화공원을 나오는 순간 제주의 오름과 바다는 새롭게 보인다. 여행은 그 지역의 모습을 최대한 만나려는 이방인의 노력이다.

제주도의 라이브 카페 낮과 밤(https://www.facebook.com/skwrhkqka6622)을 비롯한 라이브 클럽을 찾으면 제주도 뮤지션들의 라이브 콘서트를 볼 수 있다. 제주도의 음악을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다. 제주도 음식보다 쫄깃하고, 오름보다 튼실한 음악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육지의 일들도 잊고 음악에 나를 내어주자. 그 순간이 바로 여행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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