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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노래] 발톱과 존엄성

남미여행에서 돌아와서 거의 한달만에 발톱을 잘랐다.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간 적이 없다보니 미처 손톱깎이를 챙겨갈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여행중에 친구 손톱깎이를 빌려서 손톱은 겨우 깎았으나 차마 빌린 손톱깎이로 지저분한 발톱을 깎고 돌려줄 순 없어서 그냥 계속 기르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길게 자란 발톱을 또각또각 깎다보니, 문득 중환자실에서 나무껍질처럼 길고 두껍게 자란 환자들의 발톱이 떠올랐다. 중환자실 환자들처럼 몇 달씩 누워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기다란 발톱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발톱을 가지고는 절대 신발을 신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 할테니... 바꿔 말해서 그렇게 몇 달씩 누워서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아니라면 그런 괴기스러울 정도로 긴 발톱을 실제로 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무껍질처럼 길고 두꺼운 환자들의 발톱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발톱들을 깎아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응급중환자실에서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환자의 발톱을 깎아준 적이 없었다. 의료기구가 아니므로 병원에는 손톱깎이가 없기도 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손톱깎이를 사온다한들 그 발톱들을 해결해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기형적으로 길고 두껍게 자란 그 발톱들은 평범한 손톱깎이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가끔씩 이불 밑으로 드러난 환자의 발을 볼 때마다 나는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나는 너무 바쁘고 열개나 되는 발가락에서 자라난 열개나 되는 발톱들에 대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꼈다.

돌이켜보면 환자에 대한 나의 공감능력을 떨어트리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환자가 더이상 나와 똑같은 존재가 아닌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무의식 중에 심어주는 것은 그런 발톱들이 아니었을까. 나라면,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절대 가지고 있지 않을 것만 같은 외계인처럼 기다란 발톱이 나와 환자를 멀어지게 했던 것 같다.

그런 발톱뿐만 아니라 의식없이 혹은 움직임이 제한된 상태로 오래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의 목이나 사타구니, 겨드랑이의 접혀진 살에 허연 각질들과 묵은 때같은 것들... 그런 것이 나와 환자의 심리적인 거리를 벌어지게 했던 것 같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그런 장면들은 그것이 단순히 더럽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거기서 인간으로서 지키고 싶었을 소중한 무언가가 훼손되는 것을 보았다. 이런 단어를 감히 발톱같은 것에 끌어다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뭐랄까... 일종의 “존엄성”같은 것?

발톱
발톱ⓒ자료사진

존엄성을 지킨다는 말

존엄성이라는 말은 추상적이다. 존엄성을 지킨다는 말도 추상적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 “존엄성”이라는 것을 지키는 방법들은 주기적으로 발톱을 깎는 것과 같이 매우 사소하고 구체적인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네일아트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간호사이므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게 하고 그의 생명을 지키는 것, 의료인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하는데 발톱타령이나 하고 콧잔등의 번들거리는 피지나 며칠씩 양치를 하지 못해서 입냄새가 나는 것... 그런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뭐가 진짜 중요한지도 모르는 얼빠진 간호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환자의 몸 속에서 자라고 있는 끔찍한 암덩어리나, 혹은 중요한 뇌혈관을 막아버린 혈전처럼 더 중요하고 더 비극적인 사건들보다 그런 것들이 더 눈에 밟혔던 것 같다. 뱃속에 암덩어리를 품고 있으면서도 존엄성을 지킬 수 있지만 손가락 한마디만큼 길고 두껍게 자란, 나무껍질같이 단단한 발톱은 인간으로서 중요한 무언가를 상실하게 하는 것 같다.

내가 만약 큰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가게 된다면... 그런 상상을 해보았을 때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할 정도로 큰 병에 걸리는 것보다 내가 저런 모습으로 중환자실에 누워있게 될 것이 왠지 더 두렵게 느껴졌다.

중환자실에서 일할 때 동시에 여러 환자를 간호하면서 제 시간에 약을 주고 의료적 처치를 하고 환자를 그저 살아있게 하는 것에 급급해서 우선순위에 늘 뒤로 밀리는 그런 것들...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그런 것들이 사실 더 기억에 남는다.

더욱이 더이상 손을 쓰기 힘들 정도로 악화된 질병으로 인해 임종을 앞둔 환자를 볼 때면 그것이 가족들이 보는 그 환자의 마지막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이따금씩은 무엇이 더 중요한 걸까 혼란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드라마 용팔이의 한 장면.
드라마 용팔이의 한 장면.ⓒSBS 캡쳐

내가 싸워서 얻고자 했던 것

사람들이 간호사를 무시하거나 별 것 아닌 존재로 치부할 때마다, 간호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요하는지 어필하고, 간호사가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행위들이 얼마나 많은지,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환자의 예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간호사는 환자 땀이나 닦아주는 아가씨들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곤 했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싸워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언가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환자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주고 발톱을 깎아줄 그런 자투리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나는 전문직으로서의 자존심을 드높일 무언가를 얻기보다 사실은 “비전문적”인 일로 비춰질지도 모를 그런 것들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내 나이가 몇 살이 되든, 나의 몸상태가 어떻든지 간에 내 발가락에서 그런 긴 발톱이 자라난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환자들을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 대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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