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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1919년 3월1일과 그날의 의미를 만나다
3.1운동 당시 서울 덕수궁 앞 시위 모습
3.1운동 당시 서울 덕수궁 앞 시위 모습ⓒ독립기념관

3·1운동 100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100년 전 그날은 ‘유관순 열사’, ‘민족대표 33인’, ‘기미독립선언서’ 등의 이미지를 통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실은 잘 알지 못하는 시간이다. 불굴의 의지로 독립을 외치고 쟁취한 시간으로 기억하지만 영웅적인 서사만 남아있을 뿐 그날의 역사적 사실과 기록 그리고 그날의 의미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3·1운동 100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그날을 다시 되돌아보고, 영웅화된 서사가 아니라 역사적 시간으로 온전히 복원하고, 100년 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 현재적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책들을 이곳에 소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시각에서 벗어나
1919년 3월 1일의 한반도를 복원하다
책 ‘3월1일의 밤-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책 ‘3월1일의 밤-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책 ‘3월1일의 밤-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돌베개

고려대 국어국문과 권보드래 교수가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간의 연구와 기록을 모아 출간한 이 책은 1910년대 전 세계로 무대를 넓히고 당시의 신문 및 잡지, 재판기록, 문학작품, 국내외 선학자들의 연구와 시각자료 등을 재료 삼아 1919년 3월 1일의 한반도를 복원하고 있다. 선언, 대표, 깃발, 만세, 침묵, 약육강식, 제1차 세계대전, 혁명, 시위문화, 평화, 노동자, 여성, 난민/코스모폴리탄, 이중어, 낭만, 후일담 등 16개의 시선을 통해 3·1 운동을 조명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접근에서 벗어나 다각적으로 그날을 현장감 있게 복원하고 있다.

100년 전 그날이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1919년을 만들어낸 전후 시간이 한 권 안에서 병치·교차되며 서술된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설명하다 미국, 아일랜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선언서로 옮겨가 비교하고, 1910년 침묵으로 가라앉은 식민지기 서울에서 10년 후 역동적인 서울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하며, 1919년 봄 ‘파리’에 모여든 각국의 대표들과 1919년 ‘한반도’에서 조직도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대표를 자임하던 이들을 동일선상에 두기도 한다. 또한 고종 습의와 태극기를, 박경순, 정금죽 등과 같은 실존 여성과 이광수, 심훈의 소설 속 여성 주인공을, 1915년 10월 블라디보스톡의 조선 노동자와 1919년 10월 러시아의 조선 노동자를 종횡무진 연결시키며 3·1 운동의 세계사를 써내려간다.

아울러 이 책은 엇갈리는 기록과 기억들, 수면 위로 오르지 못한 사연들을 우열 없이 전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가령 3월 1일 서울에서는 그 어디에도 태극기가 휘날리지 않았고, 3월 5일 학생들이 주도한 남대문역 시위에서야 여러 깃발이 등장했다는 점, 3·1 운동기 사망자수 집계가 553인에서 7,509인까지 자료마다 차이가 적지 않다거나, 독립선언서 인쇄 매수가 2만 1,000매인지 3만 5,000매인지 등에 대해 자신이 어떤 쪽이 맞다고 단언할 수는 없더라도 그 간극을 전하고 싶었다. 박제된 이미지가 조금씩 걷어지자, ‘밤’의 시간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실제로 3월 1일 이후 9일, 10일, 23일 등의 제법 큰 봉기가 밤에 이루어진데다 그 주축은 도시의 지식인들이 아닌 노동자들이었다. 한낮의 시내보다는 밤의 산등성이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대개 어둠 속에서 활활 타오르다가 동이 채 트기 전에 끝나곤 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수많은 작은 주체들이 있었다. 친구 따라 만세 한 번 불러본 게 다지만 종생 3·1 운동의 자장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그 어느 역사서에도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 누군가의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삼촌이자 동생이었을 이들 말이다. 김승신, 유봉진, 양봉식, 주시향, 정재순, 황승흡, 김찬석 등 권보드래는 자신이 읽고 만난 존엄한 생과 그들이 꿈꿨지만 가려져왔던 어둠의 시간으로 이 책을 부지런히 채웠다.

이 책은 오늘의 우리를 향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폭력의 반대가 비폭력인지 평화인지, 배제와 차별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저마다 다른 욕망을 지닌 채 모여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80년 전 일기를 통해 만나는
독립운동가의 삶, 그 일상과 따뜻한 인간애
책 ‘제시의 일기- 어느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일기’

책 ‘제시의 일기- 어느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일기’
책 ‘제시의 일기- 어느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일기’ⓒ우리나비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세력이 권력을 유지해온 현실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에 비해 해방 이후에도 어려운 삶을 산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후손들. 책 ‘제시의 일기’는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양우조, 최선화 부부 (백범 김구 선생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림)가 중국에서 맏딸 ‘제시’를 낳으며 1938년부터 1946년 환국 시까지 8년간 기록했던 육아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들도 아주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자식과 일상을 나누던 따뜻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부부의 일기 속에서는 중일전쟁이 한창일 무렵 하루가 멀다 하고 퍼붓는 일본군의 공습을 피해 방공호를 제집 드나들 듯 하면서도, 전란 속에 태어난 어린 딸 제시가 잘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의연한 모습과 한교(한국 동포)들 사이의 끈끈한 정도 느낄 수 있다. 창사(長沙장사), 광저우(廣州광주), 포산(佛山불산), 류저우(柳州유주), 치장(?江기강), 충칭(重慶중경) 등 중국 각지를 돌며 진행된 항일 활동 중 만난 중국인들에 대해서도 이국적인 반면 일본이란 공동의 적에 대항해 싸우며 서로 돕고 배려하는 따뜻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피난을 가거나 공습을 피해 숨으면서도 밥을 지어 먹어야 했고, 병마에 시달리며 수차례 수술도 받아야 했으며, 점점 커 가는 아이의 재롱을 보며 미소 짓기도 했다. 그런 일상 속에서도 나라를 걱정하고 조국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는 단상의 기록들은 그들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케 한다. 또한 이 책에는 굳이 역사 교과서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그 시대의 지식인들, 즉 백범 김구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 같은 분들의 소소한 일화들도 소개되고 있어 그 재미를 더한다.

3·1운동 100주년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창비

촛불을 통해 권력교체를 이루어내고 한반도가 대전환의 국면에 접어든 오늘날, 3·1운동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00년 전 한반도를 가득 메운 만세의 함성은 촛불집회 당시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의 발걸음과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이 책은 역사학뿐만 아니라 문학, 종교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3·1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모색한 학문적 시도의 일환이며, 3·1운동을 둘러싼 논쟁적인 이슈들을 균형잡힌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3·1운동과 관련된 최근의 가장 논쟁적인 이슈는 ‘3·1혁명론’이다. 학계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인사들도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으로 명칭을 바꿀 것을 제안하며 3·1운동의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책의 좌담 ‘3·1운동 100주년이 말하는 것들’에서는 3·1혁명론을 둘러싼 학술적 맥락과 정치적 함의 등을 두루 살피며 각 연구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치열한 토론이 펼쳐진다. 혁명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에서부터 ‘미완의 혁명’ ‘현재진행 중인 혁명’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까지 폭넓은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역사를 당대의 맥락 속에서 파악할 것인가 혹은 그것의 현재적·지속적 의미를 적극 발견할 것인가’라는 역사학의 오래된 과제이자 본질적인 쟁점을 3·1혁명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기훈은 ‘3·1운동과 깃발’을 통해 만세시위 당시 민중들의 움직임에서 어떻게 공화의 정신이 싹텄는지 탐색한다. 특히 당시 시위 현장에서 사용되었던 깃발과 격문, 선언서 등의 구체적인 매체(미디어)를 통해 당대인의 의식 속에서 국가, 민족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자리잡았고 자신들의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실증적으로 살핀다.

3·1운동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탐색은 비단 오늘뿐만 아니라 한국현대사에서 굵직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시도되었다. 오제연의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3·1운동 기억’은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3·1운동의 기억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전유되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3·1운동과 촛불혁명의 연관성을 파악할 때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운동의 현장에 다양한 주체들의 염원, 새로운 시대에 대한 지향이나 욕망이 있었다는 점이다. 촛불혁명 이후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등장, 미투 운동 등이 이어진 것처럼 촛불이 지핀 변혁의 움직임은 이 사회에서 억압받아온 목소리들이 터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장영은은 ‘3·1운동과 감옥에 갇힌 여성 지식인들’에서 3·1운동에 직접 참여한 당대의 여성 지식인이 그 경험을 어떻게 자신들의 역사로 구축해나가려 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김진호는 ‘3·1절과 태극기 집회’에서 다양한 민중의 목소리, 억압받은 자의 목소리를 ‘헤테로토피아적 외침’으로 규정하며 3·1운동의 기억투쟁 과정에서 헤테로토피아적 외침이 억압당해온 이유를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신앙에서 탐색한다. 3·1운동의 공적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피면서 한국 개신교에서 근본주의 신앙이 압도하게 된 배경, 3·1운동의 재기억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기억투쟁에서 반공주의가 승리한 이유, 근본주의와 반공주의가 결합한 이데올로기가 한국현대사에 미친 영향력 등을 검토한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여전히 열정적으로 진행 중인 ‘태극기 집회’의 풍경을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맥락을 제공한다.

역사학, 문학, 종교학, 사회학 등 3·1운동의 깊이를 재는 데는 다양한 학문의 도움이 필요하다. 각각의 학문적 견해와 연구방법론 앞에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서며 의견을 나눈 좌담에서부터 3·1운동 100주년에 앞서 다듬어온 연구성과를 담은 여섯편의 글까지 한권에 담은 이 책은 100년이 지난 현재 3·1운동을 새롭게 기억하려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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