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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상실의 서사, 애절함의 미학
싱어송라이터 '쓰다'
싱어송라이터 '쓰다'ⓒ쓰다

음악에 마음을 비춰볼 수 있을까. 음악에 마음을 들킬 수 있을까. 지금 어떤 음악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알면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운지 알 수 있다. 경쾌한 음악은 경쾌한 대로 좋고, 애절한 음악은 애절한 음악대로 좋지만 유독 끌리는 음악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의 물길이 그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마음의 저수지에 가득 찬 물빛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마음의 물빛도 다르다. 다른 물빛은 제각각 다른 음악에 더 반짝인다. 그 반짝임을 지켜보며 우리는 비로소 제 마음을 안다. 자신을 안다.

싱어송라이터 쓰다(Xeuda)의 EP [남겨진 것들]은 쓰다의 음반이다. 아니 쓰다의 마음 저수지에 쌓인 마음이다. 쓰다가 저수지를 열어 내보낸 음악이 출렁이며 흘러올 때, 세상 모든 이들은 각자의 저수지에 음악을 담고 자신을 비춰본다. 쓰다의 음악에는 기쁨이 없다. 유머도 없다. 분노도 없다. 쓰다의 음악은 쓸쓸하고, 슬프고, 막막하다. 쓰다는 다섯 노래에 쓸쓸하고, 슬프고, 막막한 마음을 쓰고 노래한다. 누구나 느끼는 마음, 그러나 어떤 이는 외면하고 어떤 이는 꽉 껴안은 마음. 어떤 이는 잊고, 어떤 이는 아예 모르는 마음을 노래한다. 세상은 너무 크고 사람은 너무 작다. 삶은 너무 짧고 우리는 모두 따로다. 우리는 제 마음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 삶. 제 마음 하나 때문에 끙끙 앓는 삶을 산다. 쓰다는 그 연약함에 대해, 무기력에 대해, 고통에 대해 노래한다. 내 마음이 이렇다고, 네 마음은 어떠냐고 묻는다. 내 노래에 네 마음을 비춰보고 이야기 해 달라 한다.

싱어송라이터 '쓰다'
싱어송라이터 '쓰다'ⓒ쓰다

연약함에 대해, 무기력에 대해, 고통에 대해 노래하는 ‘쓰다’

쓰다는 자신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비올라 편성으로 노래한다. 자신의 노래, 자신의 마음에 맞춤한 목소리는 쓸쓸하다. 좀처럼 웃지 않을 것만 같은 목소리는 강인함과 멀다. 그루브가 없는 목소리는 흥겨움과도 소원하다. 대신 쓰다의 낮고 여린 목소리는 결국 혼자인 존재의 진실, 마음 바닥의 적요를 노래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삶은 눈부신 환희만으로 채워지지 않고, 자주 아프다. 모든 이들이 그 고통 앞에서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견디고, 잊고, 못 본 체한다. 하지만 쓰다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고통의 존재를 드러내고, 고통을 감지하고 감당하는 자신을 만나게 한다. 딱히 무슨 방법이 있거나 대안이 있지 않더라도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정직한 것, 그것이 삶의 시작이고 예술의 시작이다. 모든 노래는 결국 말하지 않을 수 없어 터진 웃음 아니면 눈물이다.

단출한 편성임에도 쓰다의 노래가 울림을 끌어내는 이유는 모든 노래가 선명한 멜로디와 적절한 사운드를 가진 덕분이다. 쓰다 음반의 ‘남겨진 것들’, ‘화분’, ‘서울의 밤’, ‘귀마개를 파세요’, ‘어떤 날’, ‘사라진 얼굴’은 모두 좋은 멜로디가 있다. 슬로우 템포이거나 미디엄 템포이거나 무관하다. 고백 같은 노랫말의 호흡이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노랫말만큼의 선율을 부여한 덕분이다. 노래에 깃든 마음만큼의 소리를 얹은 덕분이다. ‘남겨진 것들’의 기타 아르페지오는 정처 없는 마음의 반복이다. 또 하나의 악기 비올라는 마음의 어둠을 고독하고 정갈하게 다독인다. 어쿠스틱 기타가 스토로크로 일렁거리고 비올라가 윤기 나는 연주를 더할 때, 그리고 쓰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흐를 때 “여전히 뒤에 남겨진 것들”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주저하고 망설이고 침묵하며 혼자 삼키는 마음을 쓰다는 버리지 못한다.

옛 가요의 질감으로 우울한 정서를 더 곡진해진 노래

‘화분’의 멜로디는 더 선명하다. 텅 빈 화분, 무언가를 기다리는 화분, 아무 것도 안해도 괜찮은 화분, 바라는 건 없는 화분은 포기와 좌절로 쌓은 절망의 단단한 메타포이다. 비올라로 선율을 대신하고, 기타로 보컬의 여백을 채우며, 타악기로 리듬을 불어넣을 때 ‘화분’은 애절함의 미학을 완성한다. 쿨하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견디지 못하는 연약함과 고통을 숨기지 않는 쓰다의 노래는 처연한 정서를 쌓아 힘들어하는 마음의 존재를 알린다. 쓰다의 노래는 트렌드 하지 않고 새롭지 않다. 창법과 리듬에서 옛 가요의 질감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 오래된 스타일이 우울한 정서를 더 곡진하게 한다.

지하철에 올라탄 듯 4박자 리듬을 부각한 ‘서울의 밤’도 불안과 관계의 좌절로 생긴 폐허를 기록한다. 대도시 서울에서는 자신을 쉽게 숨길 수 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축축한 도시에서는 더 고독해진다. 이렇게 쓸쓸한 노래를 잇는 쓰다는 ‘귀마개를 파세요’에서 적극적인 단절의 의지를 노래한다. 적극적이지만 소통 대신 체념과 단절을 선택한 노래는 그만큼 강렬한 고통의 반증이다. 쓰다는 깊게 아린 고통의 무게를 노래하면서 상실의 서사를 완결한다. 선명한 멜로디, 스산한 목소리, 비올라의 울림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비둘기가 사라진 도시에서 외로운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어떤 날’도 정서는 여일하다. 절망과 상실감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사라진 얼굴’도 음반의 정서를 훼손하지 않는다. 어떤 뮤지션도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다하지 못한다. 수많은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선택할 따름이다. 쓰다는 슬픔의 노래로 제 몫의 노래를 채운다. 소비와 과시로 묻을 수 없는 슬픔. 외면해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의 진실.

*필자 개인 사정으로 예정보다 늦게 게재됐습니다. 독자분들의 양해바랍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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