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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대통령님, 기억하시나요? 대학언론인과의 ‘편집권 약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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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임에도 동시에 발생하는 일도 있다.

2012년~2013년은 개별 대학 언론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뒤집어졌던 때다. 자고 일어나면 대학언론사에서 편집권 침해 성명서가 발표됐고, 대학언론은 서로가 서로의 연대 성명을 보내야 했다. 심지어 성균관대학교에서는 당시 개탄스런 상황을 담아 ‘대학언론 장례식’ 퍼포먼스까지 진행했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 대학언론인들이 사명의식이 뛰어났다고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대학가에서 유독 많은 사회적 문제가 불거져 나왔던 때였고, 대학언론은 이에 비판의 칼날을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대학가에서 다시 사회적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면, 대학언론은 언제든 편집권 침해를 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만났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대학언론인 간의 타운홀 미팅을 기획하고, ‘편집권 독립 약속’까지 받아냈던 문수훈(30) 씨를 말이다.

문 씨의 대학생활은 그야말로 ‘송곳’ 같았다.

문 씨의 기억은 2012년 대학교 3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문 씨는 국민대학교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총학생회가 축제, 시험기간 간식 행사 등 이벤트성 사업만 몰두하고 학생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포부는 컸지만 낙선했다. 그는 좌절하진 않았다.

문수훈.
문수훈.ⓒ제공 = 문수훈

대학언론인이 되다
‘하루살이’ 팟캐스트 제작자부터 ‘해직 언론인’이 되기까지

“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지, 방법 때문에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방법을 달리했다. 마침 총학생회 후보 시절 만났던 방송국 편집국장과 뜻이 맞았다. 당시 국민대 방송국은 음악 방송 위주로 진행되고, 학내 보도가 약한 일명 ‘음악 라디오화’를 걱정하고 있었다. 당시 편집국장, 보도국장을 비롯한 방송국 일원들은 문 씨와 함께 학내 보도를 강화하기로 했다. 대학언론 관례상 고학년을 받아주지 않지만, 방송국 일원들 합의에 따라 문 씨는 ‘객원 국원’ 자격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2년 당시, 김어준 총수 등이 진행하는 ‘나는 꼼수다’ 팟캐스트가 젊은 층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라디오는 안 들어도 팟캐스트는 듣는 대학생이 많아졌다. 문 씨는 이런 경향을 놓치지 않고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이름은 ‘하루살이’였다. 이유를 묻자 문 씨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언제 죽을지 몰라서요” 언제 죽을지 모를 방송을 만들어서였을까. 그는 매 회 방송에서 날카로운 송곳을 자처했다.

“한 번은 방송을 위해 학교 예산 편성을 들여다봤어요. 예산에 ‘차량 운반’이란 항목이 잡혀 있어서 ‘이것은 뭐냐’고 학교에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사장 차량 바꾸는 거다’라고 하더군요. 당시 1억 원이 넘는 돈이었어요. 이 돈이면 학생들이 요구하는 ‘스쿨버스’를 바꿀 수 있을텐데. 그래서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런 대사도 했죠. ‘회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날로 드시려 한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하루살이’ 방송은 의외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바로 교직원들이었다. 문 씨는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풀이했다.

“교직원들도 ‘1억 원이나 들여 이사장 차량을 사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법인과 이사회 눌려 말을 못했던 거 같아요. 그런 생각이 팟캐스트로 분출됐던 게 아니었나 싶어요. 그렇게 입소문이 난 게 방송국 주간 교수 귀까지 들어가고, 대학언론을 관리하는 교직원들도 알게 됐다고 해요” 그는 방긋 웃었다.

애초에 언제 죽을지 모르고 시작한 방송이었다. 3개월 만에 ‘하루살이’는 죽고 말았다. 대학언론을 ‘기관지’ 쯤으로 취급하던 대학당국에 의해 대학언론 편집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던 때였다. ‘하루살이’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민대 학보사, 영자 신문사 등과 함께 떠난 워크샵 버스에서 주간교수는 공식적으로 문 씨에게 ‘나가라’고 엄포를 놓았다. 형태는 권고사직이었지만, 사실상 ‘해직당한 것’이었다.

문수훈 씨
문수훈 씨ⓒ제공 = 문수훈

‘국민저널’ 대안언론의 탄생...시사인 대학기자상 수상도
2012년 문재인 후보와 타운홀 미팅 진행

주저앉을 순 없었다. 그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2012년 9월 편집권 침해를 당했던 학보사 출신 동료와 함께 ‘국민저널’을 만들었다.

‘국민저널’을 창간했을 때, 국민대학교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조치를 받았다. 당시 대학가에는 ‘대학 언론 편집권 침해’뿐 아니라 ‘학제개편’,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조치 등이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대학 당국의 운영 부실로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포함되면, 대학생들은 학자금 대출을 제한을 받았다. 학자금 대출은 고액의 학비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주요 이용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피해는 더욱 막심했다. ‘반값등록금’ 등 정책적 요구도 빗발쳤다.

문 씨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조치가 학생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취재를 해보니, 타대와 달리 국민대는 재정 운영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학 당국이 돈을 쌓아두고, 쓰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이 상황을 자세히 분석해 지면 4면으로 만들어 배포했다. 기사 질도 좋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편집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국민저널’에서 타블로이드판으로 학교에 수천 장을 뿌리니, 학보사에서 놀랐다고 하더라구요. 학보사에서 ‘르몽드 디폴로마티크와 같은 레디컬한 데서 지원을 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편집이 나올 수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사실 한글 프로그램으로 템플릿을 만든 것이거든요. 굉장히 오래된 중고 책을 보고 편집한 거였어요”

문 씨는 묵묵히 ‘국민저널’을 만들면서도 ‘해직’당했던 기억을 놓지 않았다.

“계속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면 대학언론의 편집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해도 교육부(행정부)를 움직이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교육부에서 대학언론의 편집권을 보장한다면, 예산을 정확하게 보장한다면 대학당국도 따라야 하잖아요”

마침, 18대 대통령 선거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통령 후보에게 ‘대학언론 편집권 보장’ 약속을 받는다면 어떨까. 그는 이를 위해 문재인 후보 캠프 측에 ‘대학언론인과의 타운홀 미팅’을 제안했다. 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계층과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고 있던 문 후보는 ‘좋다’고 수락했다.

‘국민저널’ 구성원들은 전국의 대학언론에 일일이 연락을 취했다. 2012년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금에서 전국의 110개 대학언론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언론인에게 반값등록금, 대학언론 편집권 보장 등을 약속했다. 그는 이야기를 마치며 이런 농담을 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후보시절 대학언론인들과 했던 약속이 기억에 없는 것 같아 아쉬워요. 누군가 촉매제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이야기를 듣던 도중, 문득 궁금했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대안언론이었던 ‘국민저널’을 계속 끌고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문 씨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바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사건이었다.

조용하기만 했던 대학기에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던 것. 소위 ‘운동권’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대학에서 자취를 감췄던 터라 대자보라는 형식으로, ‘노동자’, ‘철도 민영화’ 등과 같은 단어가 이 대학에서 공론화됐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 고려대학교에 처음 붙은 주현우 씨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중

안녕들하십니까. (자료사진)
안녕들하십니까.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이 현상을 그는 이렇게 이해했다. “당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열광한 것은 학내 구성원과 소통하고 싶은데 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대자보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뒤집어 말하면 자치기구, 대학언론이 제 기능 못했다는 말이죠”

문 씨는 대학생들이 사회 부조리, 불공정 등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환경은 갖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 시기는 각 대학 별로 커뮤니티 사이트 붕괴가 가속화되던 시기였다. 문 씨는 강조했다. “저는 대학언론이 대학 구성원 간의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고 동시에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이런 신념과 활동은 수상으로 남았다. 문 씨가 편집위원장으로 있던 2013년 3월 시사인은 ‘국민저널’을 제4회 대학기자상 특별상 수상 매체로 선정했다.

올 2월, 장장 10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했다는 그에게 기자는 ‘요즘 뭐하고 지내셨냐’고 물었다.

문 씨는 작년 10월 초, 민주당 대학생위원장 선거에 나가 고배를 마셨다고 전했다. 대학언론인 활동을 하다가 왜 정당으로 향했을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과 달리,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편하게 정당 모임을 할 수 있다면 소통은 보다 활발해질 것이고 결국 정당 자체가 공동체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대학생 정당 모임인 ‘캠퍼스지부’, 회사별 직장인 정당 모임인 ‘직장위원회’ 등이 그가 꿈꾸는 ‘생활권 내 정당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문 씨의 대학생위원장 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문 씨는 요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 중인 것 같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지, 방법 때문에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시금 그의 다짐이 울려 퍼졌다.

장재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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