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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살아보자. 다시 살아보자
로큰롤 라디오 'You’ve Never Had It So Good'
로큰롤 라디오 'You’ve Never Had It So Good'ⓒ로큰롤 라디오

로큰롤 라디오의 음악은 댄서블하다. 댄서블한 사운드는 쉬지 않는 비트의 몫이다.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기타, 드럼, 퍼커션 등의 악기가 창출하는 비트는 거의 모든 곡을 리드미컬하게 만든다. 밴드 음악에서 록음악의 생명 같은 백비트가 새로울 리는 없다. 그러나 로큰롤 라디오의 백비트는 일반적인 활기 이상의 역동을 만든다. 음악의 백비트는 음반의 활기를 주도하며 속도감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곡의 스케일을 규정한다. 음악 속 백비트의 너비와 점도는 로큰롤 라디오 음악의 규모를 결정하고, 곡의 서사를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로큰롤 라디오
로큰롤 라디오ⓒ로큰롤 라디오

수록곡들의 아름다움을 책임지는 일렉트릭 기타 리프

첫 곡 ‘Here Comes The Sun’의 드럼/퍼커션 비트와 일렉트릭 기타/프로그래밍 사운드에 깃든 충만한 공간감은 곡을 부풀리며 시간의 경계로 인도한다. 리듬 악기가 확장한 사운드 스케이프 위에서 김진규의 일렉트릭 기타는 자유롭게 유영한다. 그가 만진 프로그래밍 사운드와 김내현의 보컬 역시 마찬가지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비트와 리드미컬한 리듬은 춤추라 유혹하며 부추긴다.

그런데 로큰롤 라디오는 정박의 비트를 고수하는 고집을 부릴 생각이 없다. ‘Here Come The Sun’에서부터 로큰롤 라디오는 비트를 당기고 풀면서 자신들이 구현하려는 사운드의 뼈대를 계속 허물고 다시 세운다. 그래서 이 음반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읽을지 묻는다면 먼저 백비트를 어떻게 운용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답하고 싶다. ‘이대로’, ‘비가 오지 않는 밤에’, ‘Danse Macabre’, ‘The Mist’, ‘Sisyphe’ 등 다수의 곡에서 백비트를 당겼다가 늦추고 다시 당기면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포스트 펑크와 뉴웨이브의 복고적인 사운드를 활용한 ‘Danse Macabre’와 ‘Dahlia’의 비트, 그리고 제목처럼 끈적한 질감을 시도한 ‘Soul’은 더욱 흥미롭다. 음반 내내 풍요로운 백비트의 변용을 댄서블하다고만 표현해버리면 이 음반의 고심과 재미를 온전히 즐길 수 없다.

일렉트릭 기타의 톤도 마찬가지이다. 김진규가 연주하는 일렉트릭 기타는 당연히 록킹하지만, 기타의 톤을 록킹이라고만 요약해버린다면 사운드 안의 무수한 차이와 풍부한 미학을 놓친다. ‘비가 오지 않는 밤에’에서는 나른하고, ‘Take Me Home’에서는 건조한 일렉트릭 기타는 곡마다 다른 색과 빛을 발산한다.

특히 일렉트릭 기타는 좋은 리프를 계속 뽑아낸다. 좀처럼 록음악이 화제가 되지 않는 시대이지만, 그렇다고 록 음악의 미학에 들뜨는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첫 곡부터 로큰롤 라디오는 좋은 리프의 힘으로 곡을 주도한다. 로큰롤 라디오의 새 음반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리프의 마력을 만끽하는 일이다. 제시하고 반복하고 변용하는 리프의 완성도는 수록곡들의 아름다움을 책임진다.

좋은 음반이라는 게 별 게 아니다. 좋은 곡이 많으면 좋은 음반이다. 좋은 곡은 들어서 좋은 곡이다. 록 음악에서는 좋은 리프를 가진 곡이다. 좋은 멜로디를 가진 곡이다. 수천마디 말을 단숨에 대신하는 리프야말로 록음악의 핵심이며 비밀인데, 이번 음반 [You’ve Never Had It So Good]에는 음반이 끝날 때까지 좋은 곡들이 계속 포진했다. ‘말하지 않아도’, ‘Take Me Home’, ‘Keep Your Mouse Shut’, ‘Danse Macabre’, ‘The Mist’, ‘Dahlia’처럼 잘 만든 테마와 리프에는 더 보탤 말이 없다.

게다가 로큰롤 라디오는 밴드 사운드에 프로그래밍 사운드를 더해 신스 팝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넘나든다. 첫 번째 곡 ‘Here Comes The Sun’의 간주에서부터 로큰롤 라디오는 잼 연주처럼 자유롭게 놀면서 6년의 공백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Keep Your Mouth Shut’의 멜로디와 구조 역시 매혹적이다. 여기에 ‘Danse Macabre’에서 ‘The Mist’로 이어지는 곡들의 화려한 존재감은 음반의 중반 이후를 더 활활 불태운다. 로큰롤 라디오의 음악은 포스트 펑크에 집착하지 않고, 곡마다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사운드 메이킹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덕분에 별도로 타이틀곡을 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음반의 완성도는 고르게 높다. 이 정도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고, 기다려야 했다면 또 다른 6년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노랫말에 삶의 필연적 고뇌를 새긴 ‘로큰롤 라디오’

어쩌면 이 음반을 들을 때 신나는 속도감과 매혹적인 사운드를 즐기면 그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로큰롤 라디오의 음악은 명쾌하게 밝은 음악이 아니다. 보컬의 톤은 낮고 처질 때가 많다. 소리를 쌓아올린 사운드도 때로 흐리다. 포스트 펑크 특유의 음울함을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는데, 로큰롤 라디오는 노랫말에 삶의 필연적 고뇌를 새긴다. 수록곡 다수는 잘되지 않는 이야기, 고민하는 이야기이다. 고민해도 잘 풀리지 않는 이야기이다. 지난 6년간의 드문드문한 공백은 그 어려움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곡들에서 어려움과 좌절을 읽을 수 있다.

당신은 결코 이토록 좋았던 적이 없다는 음반의 타이틀. 그리고 “지나간 꿈”과 “일그러진 어제”를 기억하며 시작하는 첫 곡부터 로큰롤 라디오의 음악은 상실감과 허무함을 마주한다. 곁에 있는 사람은 떠났다. 위로도 소용 없다. “보잘것없는 날 위한/의미도 없는 변명과/기억나지 않는 거짓말”, 그리고 “가질 수 없는 널 위한/지키지 못할 약속과/후회만큼 남은 거짓말”을 곱씹는 시간은 고통스럽다. 고통과 방황의 시간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Take Me Home’ 에서는 새로운 만남으로 희망을 품기도 한다. 입 다물고 있으라는 강권 역시 평온을 위한 갈망이다.

하지만 ‘죽음의 무도’를 연주하고, 목 놓아 울고, 비참한 기분을 노래하는 삶. 철없는 사랑과 불안한 어둠을 직시하는 삶은 보편적이다. 우리는 사는 내내 들뜨고 가라앉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선다. 과거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잊는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인정할 건 인정한다. 그러면서 시지프스처럼 오늘을 들어올린다.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로큰롤 라디오는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더라도 응원을 보낸다. 영원한 건 없지만 상대의 손을 잡는 마음으로 예전과는 절대 같지 않을 날들을 살아갈 각오를 한다. 음반의 12곡에서 음악의 주인공은 결국 단단해졌다. 그 단단함이 로큰롤 라디오 멤버들이 함께 보낸 6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들어 늙어갈 때 모든 이들이 타협과 포기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토록 좋았던 적 없었다는 음반의 타이틀은 과거에 대한 아쉬움의 토로가 아니라 앞으로 맞을 새로운 오늘에 대한 기대와 축복일지 모른다. 단숨에 희망과 절망을 맞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로큰롤 라디오의 음악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살아보자. 다시 살아보자.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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