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만민보] 국내 방탈출 매니아들을 한 데 모은 ‘방탈꾼’, 콜로지엠과 방탈출을 하다
없음

만민보에서는 잘 없을 익명 인터뷰를 하게 됐다.

2015년 이래 지금까지 500번 이상 방탈출을 해 본 사람, 유일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온라인 방탈출 공간인 ‘오프라인 방탈출’의 전 부매니저, 한국 방탈출카페 위키의 내용을 모두 쓴 제작자, ‘방출대기’라는 팟캐스트 방송으로 방탈출 정보를 나누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간 해 온 활동은 주로 온라인이었기에 인터뷰이는 익명을 원했다.

본래 방탈출과 관련해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만나 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어른의 사정’들도 있었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에 방탈출 문화가 형성되고 퍼져나간 현장의 일부를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아 인터뷰는 그대로 진행됐다.


방탈출 매니아들이 모인 ‘오프라인 방탈출’ 카페의 산 증인

방탈출카페 위키와 오프라인 방탈출 네이버 카페
방탈출카페 위키와 오프라인 방탈출 네이버 카페ⓒ민중의소리

콜로지엠이 방탈출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5년 경, 한국에 방탈출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을 동생으로부터 전해 듣고서였다. 이미 일본 등에서 성행하던 방탈출카페는 온라인 게임으로나마 한국에 나와 있었고, 이를 했던 기억을 살려 홍대 앞 한국 1호 방탈출카페를 방문했다고 한다. 현재는 홍대 권역에만 40~50개 가까이 된다고 한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했었다면서도 거기서 했던 체험은 자신을 방탈출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눈 앞에 창살이 있고, 막대기가 하나 있어요. 막대기로 창살 너머에 있는 열쇠를 우리 앞에 끌어와서 문을 여는 거죠. 그게 도대체 잊혀지질 않는 거에요. 평생 살며 감옥에 갇혀 볼 일도 없고, 언제 창살문도 열어 보겠어요? 이날 방탈이 아주 만족스럽진 않았는데, 그 경험이 뇌리에 남아 잊혀지질 않더라고요. 방탈꾼들도 그런 경험 때문일거에요. 해 본적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거요.”

그렇게 시작한 방탈출, 늘 동생과 함께 다녔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그는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다. 그게 2016년 2월이었다. 공개된 온라인 모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기에 ‘최초’ 타이틀도 탐이 났고, 나중에는 유명해지지도 않겠냐는 장난스러운 말도 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그를 가장 괴롭힌 건 ‘회의론’이었다. 대왕카스테라나 생과일쥬스 등이 겪었던 처럼, 반짝 유행 타고 곧 사그라들것이라는 회의론. 방탈꾼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갔고,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2016년 여름 끝자락이었을거에요. 언젠가부터 후기들이 올라오더니 그게 쌓이고 사람들이 생겼죠. 사람들이 모이니 오프라인 모임을 하길 원했거요. 만들어 뒀으니 책임은 져야지 싶은 생각에 정모를 띄웠고. 결국 저와 동생, 그리고 남자 회원 세 명이 모였어요. 명동에서 다섯 명이 방탈출을 했죠. 그때 왔던 세 명중 두 사람은 방탈출 테마 제작자가 됐어요. 정말 잘했거든요. 내가 제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곳곳에 팀을 이뤄 도장깨듯 다니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그때쯤 알았죠.”

실제로 모임이 되는 걸 알게 된 온라인 카페 회원들은 더욱 활발히 방탈출을 함께할 파트너들을 찾았다. 후기 연재도 올라오고, 모임 글도 올리고. 그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게시물들에서 스포일러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 단속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카페 회원 1천 명이 되던 해, 방탈출 정모를 또 한번 주최한다. 건대입구 근방 방탈출카페 네 개를 한번에 잡아 시간대를 조직하고,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본인도 온라인 카페를 통해 방탈출 파트너를 찾아 전국 방탈출카페를 정복하러 다녔다.

“자꾸 하다 보니 저도 방탈출 취향이 생겼어요. 개인적으로는 힌트를 쓰지 않고, 두 명이서 하는, 자물쇠방을 좋아해요. 당시엔 첨단 장치를 통한 방탈출이 이미 대세가 되어 가고 있었어서 저와 취향이 맞는 사람을 온라인으로 찾았죠. 그렇게 서울 뿐만 아니라 일산, 경기, 대전, 전주, 부산, 광주, 대구, 춘천, 군산… 제주 빼곤 안 가본 곳이 없는 것 같아요. 테마는 놔두면 없어지거든요. 없어질까봐 마음이 더 급했죠.”

이런 수준이 되자 그가 손댈 수 없을 만큼 카페는 알아서 굴러갔다. 온라인 카페와 방탈출 경험을 통해 많은 데이터를 쌓게 된 그는 입문자들에게 객관적이면서도 기초적인 정보들을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 한국 방탈출카페 위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그리고 팟캐스트 방송 ‘방출대기’였다.

“이미 ‘방탈꾼들’이라는 구글 스프레드시트가 있었어요. 엑셀러라는 친구가 방탈출카페의 테마별 랭킹을 여러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만든 순위표죠. 틀은 모두 이 친구가 만들었지만 점포별 자잘한 정보나 위치, 하다못해 할인내역까지 입력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었을거에요. 그래서 제가 ‘방탈출카페 위키’ 작성을 도맡게 됐죠. 그렇게 하다가 방송도 하게 됐어요.”

현재는 3만 명이 넘는 온라인 카페 ‘오프라인 방탈출’. 회원수가 늘어나고, 자신의 카페 운영 철학이 더 이상 유효한 것 같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운영자를 넘겨 주었다고 한다.


콜로지엠이 전수하는, 당신에게 맞는 방탈출카페 고르는 법

함께 방탈출에 나선 기자와 콜로지엠
함께 방탈출에 나선 기자와 콜로지엠ⓒ민중의소리

이날 만나기 전 방탈출 카페를 가 보자는 기자의 제안에 콜로지엠은 여러 가지를 나에게 물었다. 먼저 나에게 물은 것은 장치/자물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센서 등을 위주로 만들어진 속칭 2세대, 자물쇠를 푸는 것 위주로 구성된 속칭 1세대형 테마가 있어요. 보통 꾼들끼리 만나면 ‘장치? 자물쇠?’라고 물어보거든요. 움직임을 감지하거나 장치를 특정한 곳에 대면 방의 구조가 바뀐다거나 하는 게 장치고요, 문제 풀어서 자물쇠 푸는 게 자물쇠죠.”

그 다음은 테마였다.

“그 다음에는 공포 여부죠. 아주 핫한 주제에요. 공포 테마만 다니는 방탈출 팀도 있어요. 실제로 방탈출 예약할 때도 공포도가 적혀 있죠? 물론 아예 공포는 싫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공포를 싫어해요. 공포를 제대로 하려면 센서 등을 많이 이용할수밖에 없거든요. 전문용어로 ‘삑딱꽝’이라고 하는.”

그러면서 테마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다음으로 특화된 테마가 바로 19금 테마죠. 공포에 이어 가장 특수화된 장르에요. 미성년자들 제대로 거르지 못한 문제 때문에 뉴스에도 나온 바 있었죠. 하여튼 이건 우리가 할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요… 이외에도 스토리 등이 중요시되고요, 예를 들면 ‘비행기에서 납치당했다’던지. 그런 건 가 보면 기내로 꾸며져 있죠. 거부의 집에 집사가 몰래 잠입시켜준다는 스토리를 가진 테마에 가면 알바생이 집사 옷을 입고 연기도 합니다. 야외 방탈출도 있고, 아예 매장에 찾아가는 길도 숨겨져 있는 방탈출카페도 있어요.”

주로 그의 취향에 맞춰 정해 인터뷰 장소에서 가까운 방탈출카페에서 함께 방탈출을 했다. 눈 앞에 등장하는 문제들을 풀어나가며 꽤나 인상적인 쾌감을 느꼈다. 방안에 걸린 온갖 자물쇠들을 맞춰 나가는 기분이 짜릿했다.

60분에 걸친 방탈출을 마치고 나와 그곳에서 느낀 여러 가지 소회들을 나눴다. 초심자임에도 느꼈던 해당 테마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방탈출 업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쁜 업체 거르고 좋은 업체는 대우받게…. 그게 카페운영의 보람이었어요”

네이버 카페 오프라인 방탈출 회원에게 할인해주는 방탈출카페 배너
네이버 카페 오프라인 방탈출 회원에게 할인해주는 방탈출카페 배너ⓒ신택진

1년만에 망할 것 같았던 방탈출 카페들은 서울 홍대 권역, 강남, 그리고 건대 등을 중심으로 각각 수십 개의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불어난만큼 비양심적인 업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가 보면 관리가 안 돼서 말도 안 되게 더러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불 싹 다 끄고 한 명에게만 손전등 쥐어준 채 어둠에서 오는 공포로만 영업하는 곳 많은데요, 그런 데는 십중팔구가 인테리어나 장치가 허접해서 어둡게 하는 것이거든요. 업자와 사기꾼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정말 많은 게 방탈출이에요.”

그가 운영한 카페에 쌓인 후기는 그가 말한 경계에 서 있는 업체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 노력도 안 하고 대충 하면서 돈은 돈대로 벌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 게임에 1인당 2만원이 넘는 만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가령 서울 어디선가 하나 만들고, 똑같은 걸 경기도 어딘가의 방탈출 카페에 팔고… 이런 업자가 있었어요. 그럼 안되는 거잖아요. 똑같은 걸 두 번 할 이유가 없는 건데. 후기가 쌓이고 쌓이니 자연히 특정 업체나 테마 제작자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게 됐죠. ‘OO나무 타는 냄새 난다’라는 말이 있어요. 후기들이 쌓이고, 저는 그런 유저들의 글을 장려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문화죠. 제가 특별히 한 일은 없지만 길항작용 정도는 한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업체는 대우받도록, 나쁜 업체는 도태되도록. 이게 카페 운영의 보람이었죠.”

그가 꼽은 또 하나의 보람은 현업 종사자들이 이 온라인 공간의 위상을 인정해 준 것이라고 한다.

“특별히 제가 한 일은 없었는데, 카페들이 ‘오프라인 방탈출’ 회원이면 할인 등의 혜택을 알아서 제공했어요. 그만큼 영향력도 커진 거겠죠. 테마 제작자나 실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들 중에서도 이곳을 거치신 분들도 있고 하니. ‘오프라인 방탈출’의 의미는 제겐 참 각별하죠. 나도 모르게 던져 본 것인데 이렇게까지 클 줄이야. 전혀 몰랐죠.”

2015년 카페 운영 시작하게 된 이야기부터 흑역사, 그리고 지금까지 총 500여 회가 넘는 방탈출을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방탈출까지 하고 나니 하루가 부족했다. 자물쇠 위주의 테마를 즐거워하는 기자에게 “저랑 꽤 잘 맞는다. 한번 더 해 보자”라는 그를 뒤로하고 카페를 나왔다. 한국에 상륙한지 약 4년이 되어 가는 방탈출카페라는 놀이문화가 어떻게 발전하게 될 지 조금은 들여다 본 시간이었다.

이동현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