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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불법촬영·유포’ 피해 여성 알고도 신고 못 한 이유

“다른 여자 같으면 신고했을 거야. 친구한테 잘 말해서…”

가수 정준영 씨가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동의 없이 유포’했다. 13일 새벽 정 씨는 사과문을 통해 “저는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여성을 촬영하고 이를 SNS 대화방에 유포했고 그런 행위를 하면서도 큰 죄책감 없이 행동했다”라고 인정했다.

피해 여성은 최소 1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피해자는 유포 피해를 인지하고 정 씨에게 ‘신고하지 않을 테니 유포 확산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 씨는 지인에게 “동영상 걸렸다”라며 “영상만 안 걸렸으면 사귀는 척하고 (성관계를) 하는 건데”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촬영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 가수 겸 프로게이머 정준영이 12일 오후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정준영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촬영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 가수 겸 프로게이머 정준영이 12일 오후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정준영을 입건했다고 밝혔다.ⓒ김슬찬 기자

피해 여성이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 1월 발표한 ‘온라인 성폭력 범죄의 변화에 따른 처벌 및 규제 방안’(장다혜·김수아) 연구보고서에서 “유포 피해 확대에 대한 피해자들의 우려와 사법 처리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성범죄의 핵심은 ‘유포 피해’
헤어진 연인에 복수뿐 아니라 ‘성적 소비’ 위해 유포하기도

온라인 성범죄는 ‘비신체적’ 성폭력이다. 여성 개인의 신체와 인격, 성적 자기결정권의 자유를 직접 침해한다는 점에서 신체적 성폭력인 강간과 같다. 불법 촬영·비동의 유포·온라인 그루밍·지인 능욕·온라인 스토킹 등 그 유형은 다양하지만, 성적 촬영물에 대한 ‘유포 피해’가 가장 핵심이다.

유포 피해는 피해가 시공간을 초월해 반복되는 온라인 성범죄의 특성이 압축돼 있다. 유포 피해는 성적 사생활 유출을 통해 여성에게 사회적 수치심을 부과하고 결국 여성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실제 유포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들이 불안에 시달리는 이유다.

지난 30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등 주최로 불법촬영 및 비동의유포 피해자들을 위한 ‘이름 없는 추모제’가 진행됐다
지난 30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등 주최로 불법촬영 및 비동의유포 피해자들을 위한 ‘이름 없는 추모제’가 진행됐다ⓒ민중의소리

성적 촬영물에 대해 동의 없는 유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불법 촬영물’에 대한 유포다. 웹사이트나 SNS에 비동의 유포로 추정되는 성적 이미지 650건을 분석한 결과, 화장실 등 공공장소에서 이뤄지는 것(54.7%)만큼 사적인 공간에서 성행위를 몰래 촬영하는 행위(42.2%)도 상당했다.

제3자에 의한 불법 촬영도 있으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모자이크 처리 등 편집한 경우(63.6%)가 더 많이 나타나 성관계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않은 촬영 행위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정 씨의 불법 촬영 혐의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 하나는 합의된 촬영물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유포하는 행위다. 이는 흔히 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기 위한 ‘리벤지 포르노’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 씨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성적 소비 목적의 동의 없는 유포(43.7%)도 복수 목적의 유포(56.3%)만큼 상당한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다.

피해 확대 우려해 신고 꺼리는 여성들
가해자 처벌 미비한 현실도 한몫해

온라인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고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피해 확대와 그로 인한 2차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피해자 지원단체 상담일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피해자임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거나 처벌보다 삭제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66.7%)로 다수의 피해자가 사법처리를 포기했다.

신고한다고 해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도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다. 처벌이 미비한 1차 이유는 수사기관 담당자들이 온라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경찰관이 신고 접수를 거부하는 사례들도 나왔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불법 몰래카메라 촬영 규탄 집회에서 참가 여성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8.04.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불법 몰래카메라 촬영 규탄 집회에서 참가 여성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8.04.ⓒ사진 = 뉴시스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피해 촬영물 속 피해자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피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가해자와의 합의를 유도하는 경찰관도 있었다. 수사기관에서 촬영물 압수·폐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들이 재유포 피해를 경험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사법처리가 끝나도 가해자 상당수가 벌금형(68.8%)이나 불기소(21.9%) 처분을 받는다. 정 씨의 사례와 달리 보통의 사례에선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유포자가 동의 없는 유포를 인지하고 유포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해자들에겐 음란물유포 혐의가 적용돼 기소유예나 약식기소돼 가벼운 벌금형이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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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법체계의 한계도 있다. 현행법은 성범죄에 대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의 구분을 전제한다. 신체적 성폭력을 성범죄의 기본 유형으로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를 구성하고, 온라인 공간 등에서 발생한 비신체적 성폭력은 성폭력 특례법으로 따로 규정한다.

이에 비신체적 성폭력에선 인격권이나 사생활 침해와 같은 개인적 법익 침해보다 성 풍속을 해치는 음란 등 사회적 법익 침해가 더 강조된다. 온라인 성폭력 처벌법들이 성적 수치심 또는 성적 욕망이라는 음란성의 요소를 처벌 기준으로 삼는 이유다.

이에 온·오프라인 상관없이 기본적인 법익 침해를 중심으로 기본 범죄 유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온라인 성범죄가 성적 사생활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형법 제316조 비밀침해죄를 사생활침해죄로 개정해 기본범죄 유형을 신설하고, 성폭력처벌법에 성적인 속성을 포함한 가중처벌규정을 도입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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