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한국과 영국의 밴드가 함께 만든 아름다움
수요뮤직
수요뮤직ⓒ제공 =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모든 예술이 아름답지는 않다. 아름답지 않다고 예술이 아닌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사물을 보면 예술적이라고 표현하지만, 현대예술은 자주 문제의식으로 아름다움을 대체한다. 가령 뒤상이 옮겨 둔 변기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가.

그리고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다. 누군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을 다른 누군가는 기괴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안드레 세라뇨(Andres Serrano)의 사진, 할로우 잰(Hollow Jan)의 음악에 대한 반응과 평가는 극과 극이다. 미적 기준은 정체성과 안목,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오래된 예술 언어에 대해서도 낯설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 밴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과 영국 밴드 아이어 루(Eyre Llew)가 함께 만든 음반 [Carrier]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록 음악을 좋아하고 오래 들어온 이들은 포스트록이나 앰비언트 록이라고, 음악이 좋다고 이야기 하겠지만 록 음악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은 이 음악조차 시끄럽다거나 어렵다고 고개를 흔들지 모른다. 실제로 이런 저런 음악을 다양하게 듣지 않은 이들은 낯선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을 설명할 단어를 찾는데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 음반이 사용하는 언어와 구조는 천둥벌거숭이처럼 새롭지 않다. 포스트록이거나 앰비언트 록등의 록 장르 방법론을 활용하는 음악은 대중음악의 기승전결 구조에서 탈주하지 않는다. 노래가 있고, 기승전결 구조가 있는 음악은 특히 장르 특유의 점층과 상승, 폭발과 하강 구조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곡의 중심을 향해 진입하고 상승하며 힘주어 테마를 발산하는 방식은 드라마틱한 클래식 실내악곡이나 교향곡의 방법론과 멀지 않다. 악기를 연주해 만드는 울림이나 사운드 스케이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들으면 음악은 얼마나 다른가보다 얼마나 같은지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음악에는 리듬이 있고, 멜로디가 있다. 구조가 있고, 사운드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반드시 있다. 말로 표현하면 뻔한 요소들이 어울리고 변주하면서 다른 음악이 된다. 다른 감동이 된다.

수요뮤직
수요뮤직ⓒ제공 =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7분 넘는 긴 곡...음악으로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시간

아이어 루가 두 곡을 싣고,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 두 곡을 실고, 같이 만든 곡을 한 곡 실은 음반은 포스트록과 앰버언트 록 등의 방법론과 매력을 풍성하게 재현한다. 첫 곡 ‘Silo’는 충만한 공간감, 여리고 뿌연 보컬, 건반과 기타의 영롱한 앙상블로 서서히 비상한다. 7분이 넘는 긴 곡이 흐르는 동안 레퍼런스가 될 만한 다른 뮤지션들의 이름이 스쳐간다. 그렇다고 이 곡이 만든 아름다움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느린 테마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사운드를 부풀리고, 템포를 당겨 드라마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테마는 이미 아름답다. 그리고 사운드의 정갈한 부피는 아름다움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변화를 말하는 노랫말은 모호한데, 노랫말로 마음의 움직임과 변화를 명쾌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곡의 구조와 분출하는 사운드의 질감, 감성적인 멜로디의 혼연일체로 자아내는 울림을 총체적으로 흡수할 때 비로소 노랫말과 곡은 온전하게 맞아떨어진다.

두 번째 곡 ‘Bloc’의 노랫말도 모호함을 유지하면서 넘치는 공간감과 규모 있는 사운드, 서정적인 멜로디를 빌어 노랫말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순간과 영원을 통합하고, 지금과 지금 아닌 순간, 나와 나 아닌 존재를 잇는 듯한 음악은 어떠한 이야기도 품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어 루는 명확한 이야기를 하려고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음악이 어떤 이야기든 껴안을 수 있고, 음악으로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음악을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어 루의 음악은 익숙한 방법론으로 부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아름다움으로 모호함을 향해 나아가고, 분명한 소리로 분명하지 않은 이야기를 껴안을 때 음악은 표현의 가능성이 되고, 사유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익숙하지만 상투적이지 않은 곡의 힘은 아이어 루가 지금 무엇을 해낼 수 있고, 어디까지 와 있는지 스스로 기록한다.

수요뮤직
수요뮤직ⓒ제공 =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국경과 장벽 허물어지는 오늘날...한국의 밴드 역시 그 주체

아루이어와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 함께 만든 곡 ‘Moeve’는 좀 더 정교하다. 황금 계단, 포자, 담요, 날개라는 가사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명징한 멜로디를 펼치며, 악기 연주/사운드 메이킹을 교차시켜 발전시키는 방식은 제주도의 환경오염을 이야기한다는 주제를 알지 못해도 곡의 속도감과 공간감을 만끽할 수 있게 한다. 경쾌한 템포로 두둥실 들뜬 마음을 몽환적으로 노래하는 ‘Hero’는 템포를 변화시키거나 악기의 등퇴장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만든다. 록킹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터트리는 곡은 청량한 매력이 있다. 상대적으로 명확한 노랫말이 돋보이는 ‘And So It’ 는 다른 구성과 연출을 빌어 음악을 풀어가는 드라마가 흥미롭다. 사운드의 크기와 곡의 길이로 인해 다른 인상을 받겠지만, 보컬이 농염한 호흡으로 노래하다가 사운드를 몰아넣고 마무리 할 때의 쾌감은 짜릿하다. 음악의 차이와 강도만큼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은 개성을 만들고 음악의 완성도를 채운다.

이 음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음반을 아루이어와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밴드와 영국의 밴드가 함께 투어를 다니고 그 결과물로 음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음반의 완성도만큼 의미 있다. 방탄소년단과 몬스터엑스 같은 아이돌 그룹만 해외에서 반응을 얻지 않는다는 사실. 국경과 장르의 장벽이 테크놀로지와 시장의 통합으로 허물어지는 오늘, 한국의 밴드 역시 그 주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장의 규모가 다르다고 폄하할 일이 아니다. 대중음악의 역사는 모두 함께 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