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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애널리스트→아나운서→재단 이사장…대체 정체가 뭐세요?
없음

애널리스트→MBC 아나운서→서울시장 후보 캠프 대변인→청와대 행정관→재단 이사장.

'명함은 얼마나 많이 바꿨을까'라는 엉뚱한 질문이 떠오를 정도로 수많은 이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 사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스타 아나운서로 기억에 남아있는 한준호 씨 얘기다.

아나운서 재직 시절 뉴스와 예능 및 다큐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면서 큰 사랑을 받았던 한 씨는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는 이유로 미운털이 박혀 결국 퇴사를 해야 했다.

얼마 후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던 곳은 다름 아닌 국회와 청와대. '정치에 꿈이 있었나' 궁금했던 찰나 한 씨는 또다시 서울 모처로 자신의 근거지를 옮겼다. 어느새 그의 타이틀도 '재단 이사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역마살이 꼈다"고 평가하던 한 씨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반전에 반전 거듭하는 생활들
프로그래머에서 애널리스트로

한준호 새로지음 재단 이사장
한준호 새로지음 재단 이사장ⓒ한준호 씨 제공

한 씨의 삶은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우선 그의 전공은 수학과 생활디자인이었는데, 대학시절 돈을 벌기 위해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려 뜻밖의 성공을 경험하게 된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은 조종사였지만, 이상하리만큼 이 직업만큼은 연이 닿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 씨는 "저는 사실 꿈을 이룬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다 한 통신회사에 취업을 했지만, 프로그래머로서의 생활은 자신과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 좋은 회사이긴 한데, 저한테는 컴퓨터 앞에서 매일 코딩 작업을 해야 하는 게 너무 지루하더라고요. 항공사 시험 일정이 올라오면 호시탐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당시 아내가 '조종사는 싫다'고 명확하게 얘기해서 꿈을 확 접게 됐죠."

그 무렵 한 아이의 아빠가 된 한 씨는 꿈 대신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나섰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험운이 참 좋아서" 코스닥시장(현재는 한국거래소로 합병됐다) 채용 시험에 합격해, 애널리스트(투자분석가)로서의 새로운 생활이 펼쳐지게 됐다. 이 경험은 한 씨가 아나운서에 도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코스닥시장에서는 그냥 열심히 일을 했어요. 이 때 여러 방송사에서 시황방송이라는 것을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제 적성에 잘 맞더라고요. 그러던 중 제가 멘사 회원이란 게 소문이 나면서 신문 인터뷰도 하고, 아침마당에도 출연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이참에 언론사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그게 자극이 된 셈이죠."

아나운서로 유명세 치렀지만
파업 나서며 짧은 방송생활 마감

MBC 노조 집행부로 파업에 참여했던 한준호씨
MBC 노조 집행부로 파업에 참여했던 한준호씨ⓒ한준호 씨 제공

아나운서 시험도 예상과 달리 '툭툭' 붙었다. 입사 후 적응을 하지 못해 잠시 방황을 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을 오히려 좋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채워나갔다. 이런 노력들은 결국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봤고, 한 씨는 이른바 '스타 아나운서'로서 유명세를 치렀다.

"갑자기 네이버 검색어에 제 이름이 올라오기도 하고, 보도국에 전화가 오는 거예요. 심지어 어느 날은 회사 앞에 팬들이 오고, 일본 팬들이 뉴스를 보고 오기도 하고요. 결국 제 마음가짐이 중요하더라고요. 단순히 방송인이라고 거들먹거리기 보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죠."

그렇게 한창 잘나가던 그의 방송 생활은 노동조합 집행부로 활동하면서 막을 내렸다. 유학을 준비하던 그는 '방송사 상황이 좋지 않다'는 선배의 말에 유학을 미루고, 노조 집행부의 일원으로 파업을 이끌었다.

"선배들이 생각하기에는 저를 적극파라고 생각한거죠(웃음) 사실 이렇게 최악으로 치달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했고, 그런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나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구성원들에게) 확신을 줘야 했고, 졌을 때 책임을 피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죠. 다신 못할 것 같네요."

강대강으로 치닫던 상황이 잠잠해지고 미뤘던 유학을 나갔지만, 해외에서 2차 파업 소식을 또 듣게 됐다. 한 씨는 연수 기간을 남겨둔 채 서둘러 한국에 돌아와 투쟁 대열에 동참했다.

"저 혼자 놀 순 없잖아요. 파업에 참가해야죠. 연수 중간에 들어와서 합류했는데, 배현진 씨가 당시 앵커 자리를 꿰차는 걸 보고 페이스북에 '어린 친구들이 못된 것만 배웠다'고 썼다가 대기발령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사업부도 갔다가, 국회 대관업무도 했다가, 프로그램 협찬도 받으러 다니고 많은 업무를 했습니다."

그렇게 이 부서, 저 부서로 떠돌던 세월이 어느덧 9년. 긴 세월 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과도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단 걸 느끼게 된 한 씨는 아나운서로 돌아가 봐야 큰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표를 던졌다.

국회·청와대로 이어진 활동들
요즘 관심 가지는 분야는?

지난해 지방선거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인 우상호 의원의 선거 캠프의 대변인을 맡았던 한준호 씨.
지난해 지방선거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인 우상호 의원의 선거 캠프의 대변인을 맡았던 한준호 씨.ⓒ한준호 씨 제공

이후 한 씨는 국회와 청와대에 발을 들이게 된다. 지난해 지방선거 국면에서는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나섰던 우상호 캠프의 대변인으로 '깜짝' 등장했고, 자신의 역할이 끝난 후에는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의 러브콜로 청와대 행정관으로 발탁됐다.

이 과정에서 그가 느낀 것은 두 가지. 일자리 창출은 정부 주도로 쉽게 되는 게 아니란 것과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도 정부 주도로 할 수 없는 문제란 것. 그러자 한 씨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을 '또' 찾아 나섰다. 최근 출범한 비영리 재단 '새로지음'이 단적인 예다.

"재단은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는 비영리 법인이에요. 보통 도시재생이라고 하면 없애고, 새로 만드는 '재건'을 생각하는데 도시 재생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 재단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시 재생의 필요성을 알리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아나운서로, 대변인으로, 또 행정관으로, 이사장으로 수없이 타이틀을 바꿔왔던 한 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저도 물음표"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했던 모든 일들은 사실 '크리에이터'로서의 활동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저는 한 분야로 특정하지 않는 크리에이이터라고 생각해요. 제 아이디어를 책으로, 비영리 재단으로, 선거 캠프에 합류하는 것으로 만들어서 표현하고 해결책들을 제공하는 것이죠. 우상호 선배와 인연을 맺은 것도 대변인이 아닌 크리에이터로서 들어간 거죠. 그분의 정체성을 끄집어내서 그걸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어내는 작업들인데, 지금 하는 (재단) 작업도 마찬가지고요."

일각에서는 이번 재단 출범을 두고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한 사무실을 차린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이런 질문에 고개를 가로 지으며, 지금 당장은 출마보다 이제 막 출범한 재단을 통해 도시 재생에 매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단호히 말했다.

"정치란 건 제가 깃대를 꼽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반대편 사람들이 또 생기기 시작하고, 본질을 흐리는 여러 공격들도 많이 당하게 됩니다. (만약 출마한다면) 제가 지금 시작한 일이 모두 왜곡되겠죠. 혹시라도 필요에 의해, 요구가 있다면 굳이 피할 생각은 없지만, 굳이 제가 나서서 국회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전 지금으로서는 재단을 통해서 도시재생 사업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어요."

한준호 새로지음재단 이사장이 지난 6일 창립총회 때 PPT를 소개하는 모습.
한준호 새로지음재단 이사장이 지난 6일 창립총회 때 PPT를 소개하는 모습.ⓒ한준호 씨 제공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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