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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아흔살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솜씨가 느껴지는 영화 ‘라스트 미션’
영화 ‘라스트 미션’
영화 ‘라스트 미션’ⓒ스틸컷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한 ‘라스트 미션’(The Mule)은 ‘용서받지 못한자’, ‘밀러언달러베이비’ 등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 뛰어나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감동적이면서 재미있는 영화다.

‘라스트 미션’은 많은 부분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10년 전 만든 ‘그랜 토리노’를 연상케 한다. 두 영화 모두 한국전 참전 용사로 지금은 은퇴한 노인의 이야기다. ‘그랜토리노’의 월트 코왈스키가 주변 세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편견에 빠져있고, 이웃을 비롯해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라스트 미션’의 얼 스톤도 달라진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 힘겨워한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됐던 주인공이 마음을 열어가는 비슷한 이야기지만, ‘그랜토리노’가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며 거칠게 메시지를 던지는 반면에 ‘라스트 미션’은 그렇지 않다.

주인공 얼은 원예사 일에만 빠져 살았다. 백합을 키우는데 온힘을 기울였고, 최고의 백합을 키운 공로를 인정받아 일등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상을 받은 날은 공교롭게도 딸의 결혼식이었다. 언제나 일을 앞세웠던 그는 대회를 핑계로 딸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17년이 지났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문자 메시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흔 살의 그는 점점 뒤로 밀려난다. 평생을 쏟은 농장과 집을 은행에 빼앗기고 만다. 손녀가 결혼을 발표하며 파티에 초대해 가족과의 화해를 도와주지만 전처와 딸은 얼을 외면한다. 딸은 12년넘게 말조차 하지 않는다. 얼은 평생을 투자했던 일에서 밀려났고, 일 때문에 돌보지 못했던 가족에게도 외면을 당했다.

그런 얼에게 우연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 들어온다. 얼은 평생을 일밖에 모르며 미국 전역을 누비며 살았지만 교통위반 딱지 한 번 떼본 일이 없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신중함과 일밖에 모르는 성실함, 그리고 나이 들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였기에 멕시코 마약 갱단은 얼을 운반책으로 고용한다. 그 일을 통해 돈을 벌었고, 처음엔 마약인지조차 모른채 운반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마약인지 안 뒤에도 그는 운반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이제는 낡고 허물어져 가는 자신의 것들을 지키려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생이 담긴 집과 농장, 이제는 낡아 허물어진 참전용사들의 쉼터도 복원하고, 손녀의 학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도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라스트 미션’은 2차대전 참전 군인으로 87세의 나이에 코카인을 운반하다 체포된 레오 샤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레오 샤프의 이야기를 뉴욕타임스에서 보고 ‘그랜토리노’의 각본을 맡았던 닉 쉥크에게 다시 작업을 맡겼고, 자신이 제작 감독 주연까지 맡아 영화로 만들었다. 아흔 살에 가까운 마약 운반책의 등장은 흥미롭지만, 일에 집착하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가장이 뒤늦게 후회하고 변화한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주제를 풀어낸 영화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와 연출을 거치며 그만이 전해줄 수 있는 감동을 담은 영화가 됐다. 반백년이 넘는 연기 경력과 연출 경력이 묻어나는, 한마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였기에 가능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라스트 미션’
영화 ‘라스트 미션’ⓒ스틸컷

‘라스트 미션’은 한편으로 미국이라는 체제에 보수주의자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노인들은 사회로부터 점차 밀려난다. 가족으로부터도 외면 받지만, 사회도 그들을 보장하지 못한다. 평생을 일군 부는 은행에 빼앗기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이제 흔들린다. 물론 진보주의자들이라면 이쯤에서 사회체제와 구조에 의문을 드러내고, 그것을 바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겠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선은 여전히 가족에게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 변화에 못마땅해하면서도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론 화해를 시도한다. 인종차별을 향한 문제의식을 담는 등 그의 시선은, 지난 대선에서 유행어처럼 등장했던 ‘따뜻한 보수’가 과연 무엇인지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Mule(뮬)’이다. ‘Mule’은 노새를 뜻하는 단어다. 속어로는 마약운반책을 의미한다. 노새는 평생을 짐만 나르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Mule’은 마약운반책으로 잡힌 노인을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동시에 평생을 일만 해온 그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한다. ‘노새처럼 일만해온 사람’ 말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소처럼 일만한 사람’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일만하며 달리는 ‘노새’ 또는 ‘소’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흔살이 넘은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일만하지 말고, 휴대전화만 들여다보지 말고,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주변을 둘러보라고 충고하고 있다. 지나면 다 소용이 없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는 없다”는 영화 속 얼의 대사를 가슴 깊이 새겨본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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