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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애쓰고 애쓴 뮤지션들의 얄미운 역작
이오에스(EOS)
이오에스(EOS)ⓒEOS

얄미운 뮤지션이 있다. 나쁜 행동을 해서가 아니다. 음악을 잘 해서다. 도무지 힘을 들이지 않는 것 같은데 에누리 하나 없이 똑 떨어지는 음악을 내놓으면 얄밉다. 세상에 재주를 타고 난 사람도 있긴 있나싶다. 물론 몰라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 뮤지션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 정도의 음악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듣고 연습하고 다시 만드는지 몰라서 하는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천재가 있다지만 대부분의 성취는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오에스(EOS)의 앨범 'Shall We Dance'
이오에스(EOS)의 앨범 'Shall We Dance'ⓒEOS

음악을 잘 해서 얄미운 밴드 ‘EOS’

3인조 밴드 이오에스의 EP [Shall We Dance]를 들으면서도 살짝 얄미웠다. 첫 곡 ‘Skydive’가 흘러나올 때, 보컬을 맡은 김형중이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끝/후~ 깊고 또 뜨거운 마지막 심호흡”이라고 노래하기 시작할 때나, ‘잊혀진 스파이로 사는 법’에서 “붉게 금이 간 눈으로 날 쫓는다/숨 가쁜 미행, 집요히 날 탐한다”라고 노래할 때 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이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보컬 앞에 무슨 말을 더할까. 얼마나 연습해야 완성할 수 있는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 보컬의 테크닉은 김형중이 20년 이상 유지한 실력을 찬탄하게 한다. 맞다. 이렇게 빼어난 호흡의 목소리를 만나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름다운 대상 앞에서는 말을 잊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오에스의 음악을 찬탄하게 하는 대상은 보컬 김형중만이 아니다. 베이시스트이자 송라이터인 배영준과 기타리스트 조삼희가 온기호와 함께 만든 곡들은 모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깔끔하다. 스카이다이빙을 앞둔 순간부터 하늘 바다로 뛰어든 순간까지를 담은 ‘Skydive’는 정적 같은 긴장에서 활강의 순간으로 넘어가는 속도감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서서히 리듬을 조이다가 경쾌하게 질주하고, 터트리듯 곡의 절정으로 잇는 솜씨는 드라마틱하다. 그 순간 멜로디는 명료하고 강력해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이 매혹적인 멜로디를 분출하기 위해 곡을 쌓고 터트리는 연출과 각자의 몫을 다하는 연주와 노래는 첫 곡부터 짜릿하다. 잘 만든 일렉트로닉 팝임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두 번째 곡 ‘잊혀진 스파이로 사는 법’은 시작부터 신디사이저 사운드의 멜로디가 압도한다. 음악은 반복하며 쌓는 소리의 구조물이라고 할 때, 초반의 신디사이저 연주로 제시하는 테마 멜로디는 곡의 완성도를 단 3초만에 완결할 정도로 빼어나다. 여기에 신디사이저 연주를 더하며 만드는 뉴웨이브의 질감은 이오에스의 취향과 정체성을 대변한다. 트렌디하지 않지만 중독적인 멜로디와 사운드에 김형중의 떨림 가득한 보컬이 얹힐 때 곡의 완성도는 완벽하다. 일렉트릭 기타를 더하고, 비트와 코러스를 가미해 변화를 만드는 곡은 끝까지 지루하지 않은 긴장감과 쓸쓸함을 유지한다. 멤버들의 세대와 지향까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곡이다.

새 음악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존재감을 보여준 새앨범 ‘Shall We Dance’

이오에스 음반의 수록곡들은 이처럼 매끄럽고 유려한 멜로디를 신디사이저 사운드로 재현하면서 곡의 중심을 움켜쥔다. 세련되고 우수어린 이별 노래 ‘Sentimental Airline’의 사운드는 미니멀한데, 곡의 도입부에서 제시하는 테마는 한결같이 영롱하다. 노랫말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멜로디는 팝의 완성도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인데, 이 곡 역시 좋은 팝이 갖춰야 할 요건을 모범답안처럼 제시한다. 신디사이저와 드럼, 베이스의 단출한 구성으로 만드는 단정한 사운드,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보컬에 어린 그리움은 한 편의 영화 같은 노랫말을 예고편처럼 재현하고 사라진다. 웰메이드 팝의 연속이다.

반면 ‘19禁의 세계’는 베이스 기타를 돌출시켜 리듬감을 부각한다. 명징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구축한 펑키한 하우스의 질감, 더 끈적한 사운드를 구현하는 연주와 노래는 여전히 단정하다. 시타르 연주처럼 들리는 도입부를 지나자마자 질주하는 ‘과호흡’의 리듬감과 당연하게 선명한 멜로디는 서로의 받침대가 되어 곡을 떠받친다. 다른 곡들보다는 화려한 연주를 더하는 곡은 곡과 곡 사이의 선을 분명히 그으며 음반을 마무리한다.

돌이켜보니 오래도록 배영준의 음악을 들었다. 김형중의 노래를 들었다. 이제는 데뷔 25년이 넘도록 활동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지 않는다. 20년이 넘게 새 노래를 발표하며 활동하는 이들이 몇이나 되는가. 한 번이라도 좋은 곡을 써내지 못하고 음악을 중단하는 이들도 얼마나 많은가. 과거 코나의 명곡, 이오에스의 명곡, 그리고 W의 명곡으로 받은 감동이 여전히 살아 있는데, 이들은 다시 좋은 곡을 완성했다. 그 음악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고심하고 애태웠을까. 빼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음악은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나이가 약점만 되지는 않지만 감각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모으는 일은 갈수록 쉽지 않다. 2018년 이오에스를 재결성하고 음반과 싱글을 발표하며 호흡을 맞춘 이들은 자신들의 이력이 무색하지 않은 새 음악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정말 애쓰고 애써 이만하면 충분하니 나의 대답은 예스! 이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자.

이오에스(EOS) 포스터
이오에스(EOS) 포스터ⓒ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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