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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철 칼럼] 최옥란을 기억하며

3월 26일은 여성이자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자 빈민이었던 최옥란의 기일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노동시장에 배제하는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노동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90년대 말, 그녀는 청계천에서 철거 단속에 맞서며 노점 장사를 통한 수입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러던 중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면서 수급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당시 국가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책정한 금액으로 수급자에게 보장했던 수급비는 26만원이 고작이었다. 그녀가 살던 집의 월세는 16만원이었다. 월세를 내고 남은 10만원으로 한 달을 살라는 것은 문화적인 삶은 고사하고 식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건강마저 위협하는 낮은 금액이었다.

장호경 감독의 ‘최옥란들’ 중 한 장면.
장호경 감독의 ‘최옥란들’ 중 한 장면.ⓒ장호경 감독

26만원에 가로 막힌 ‘더 나은 삶’

그녀는 부족한 생활비와 약값을 보충하기 위해 노점 장사를 계속해야 했다. 하지만 국가는 그녀에게 노점과 수급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의 경우 장애가 없는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녀는 의료급여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급권을 선택했다.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이 그녀를 싸움의 전선에 서게 했을까.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현행 최저생계비에 기초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그리고 최저생계보장이라는 법의 취지에 위배한다”며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그리고 지급된 26만원의 수급비를 반납하고 ‘민중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2001년 12월3일 한파 속에서 명동성당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당시 농성 돌입 결의문 내용 중 일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벌써 두 명의 수급권자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수급자들이 자살하거나 저같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당시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낳은 9살 난 아이의 양육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통장에 700만원을 모아두었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국가는 700만원을 이유로 그녀에게 수입이 있다고 간주하여 양육과 수급권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국가가 그녀에게 요구했던 선택들은 언제나 그녀의 삶의 일부를 통째로 도려내라는 협박이었다. 더 나은 어떤 삶도 기대하지 말고 현재의 모욕과 고통에 적응하라는 폭력이었다. 열사는 결국 극약을 마시고 병원에 이송되었고 입원 중 2002년 3월26일 운명했다. 최옥란의 삶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여성으로, 빈민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삶이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최옥란 열사 추모대회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최옥란 열사 추모대회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함께 싸우자’는 최옥란의 외침

최옥란의 죽음으로부터 17년이 지났다. 우리 사회가 장애가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기 위한 준비는 어느 정도 갖추어졌는가. 날이 갈수록 진입하기 어려워지는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한 노점상인들은 구청에서 고용한 용역폭력과 계속 마주하며 사람 없는 도로로 밀려나고 밀려나 결국엔 생계수단인 노점마저 강탈당한다. 노점을 없앤 거리에는 화단이나 벤치가 놓인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가사말이 거짓말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삶은 예산과 동등한 위치에서 저울질되어 생사가 결정된다. 시설입소 중심의 장애인 정책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분리·격리 조치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하겠다고 선언한 장애등급제 역시 판정 방식이 바뀔 뿐이며 예산에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기준 등의 선정기준으로 인해 여전히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으며, 수급권을 보장받는다고 해도 한 달을 살아내기 버거운, 낮은 금액이 수급비로 지급된다.

최옥란이 살아냈던 당시보다 복지에 대한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권리의식이 확장되었으며 보이는 폭력의 강도는 낮아졌을지도 모르지만, 가난한 내일이 두려워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 국가는 여전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분리시켜 다른 위치에 두고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옥란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함께 싸우자’는 외침이었다. 그녀가 명동성당 앞에서 노숙농성에 들어갈 당시 결의문에 적었던 내용이다. “비록 지금은 저 혼자 텐트 농성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와 함께하리라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녀의 죽음 이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함께 목소리 내 싸워 온 사람들이 있다. 2012년 8월21일부터 2017년9월5일 까지 광화문에서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로 내걸고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1842일 동안 농성을 전개했다. 그녀의 외침은 전해지고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최옥란을 열사라 칭하고 기억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잘못된 삶이 아니라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목소리 내어 싸운다. 잘못된 삶은 없다. 자신의 삶에서 앞으로를 가장 깊고 짙게 고민하고 할 수 있는 선택들 중 최선을 선택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같다. 장애가 있건 없건, 가난하건 가난하지 않건, 내일의 삶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어떤 차별이나 불평등 없는 세상을 만드는 걸음을 함께 내딛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최옥란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최옥란 열사의 삶과 투쟁을 다룬 장호경 감독의 ‘최옥란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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