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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인권은 멀리 있지 않아요”…혐오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없음

지난해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서 '성소수자'가 보호 대상에서 배제됐다.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 484명 중에는 단 2명(0.4%)만이 난민으로 인정됐다. 감옥문을 열고 나오는 양심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여전히 노동자는 단식과 고공농성을 반복하고, 농민들은 '밥 한공기 300원'을 외치기 위해 상경한다. 여성들은 생존을 걸고 곳곳에서 '미투'를 이어간다.

한편으로는 집단간 증오과 대립을 부추기는 폭력적 언어가 준동하고, 가짜뉴스와 손 잡은 파괴적 메시지는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된다. 혐오 선동세력은 이를 자신들의 존재 기반으로 활용하고 정치적으로 메시지화하면서 극우포퓰리즘의 모습을 과시한다. "이 또한 우리의 권리다"라는 폭력적 선언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는 동안 '함께 살자'는 민중의 언어는 온갖 혐오의 대상이 된다. 평화와 통일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 심지어 생각까지 증명하라며 '빨갱이·종북' 사냥의 표적이 된다.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는 '귀족노조' 거짓선동의 대상이 되고,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은 '피해자다움'을 강요받는다. 정치권의 '5.18 모욕'은 화룡점정이다.

이 악의적 프레임 속에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마저 상대화된다. 공론의 장에서는 교묘한 거짓선전과 궤변이 난무할 뿐, 차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다. "사람답게 살 권리", 만국의 수많은 민중이 피로 만들어온 '인권'의 언어는 이렇게 다시 먼 곳의 얘기가 된다.

인권운동가의 고민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상임활동가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상임활동가ⓒ미류 활동가

15년째 일상의 '인권'을 위해 현장 곳곳을 뛰어다닌 인권운동사랑방(이하 사랑방) 미류 상임활동가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표현의 자유'는 혐오 선동세력이 훔쳐갔다"고 일갈한다. 그는 지난 2005년부터 상임활동가로 활동하며,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부터 강정마을, 용산, 밀양, 세월호, 안산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조직운동 등의 현장에서 인권 지키기에 앞장서왔다.

"프랑스대혁명 당시에도 표현의 자유는 저항의 언어였는데 지금은 막말할 자유가 돼버렸어요. 혐오 선동세력의 사회적·정치적 의미는 명확해요. 돈과 힘 없는 소수세력은 이 사회에서 시민권을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보내는 겁니다. 다시는 여론의 일원으로 나서지 말라고. 그리고는 차별금지법과 인권교육지원법,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을 반대하며 '반인권' 행동에 물불을 가리지 않아요. 이렇게 '권리'의 언어를 오염시키고 인권을 부정하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 지경에서 인권운동가들은 요즘 상당히 고민이 많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방향이지만, 구직자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단일팀이 구성된다는 소식에 반가워하다가도, '기회박탈'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어쩌지. 분명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지점이었다. 그러나 차분한 논의가 이뤄질 새도 없이 '반평화', '반노동'을 조장하는 세력들이 치고 들어온다. 지난해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은 한국 사회의 단면이다.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에요. 동시에 '사람으로서 대접받을 권리'이죠. 여기에서 공정성이라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에 자신이 평가절하되거나 불리한 조건에 놓이지 않고, 스스로 온전한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질 않더라고요. 뭔가 새로운 정치적 전망이 만들어지지 않는 속에서도 불만을 넘어 대안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힘이 예전에는 '인권'에서 나왔다면, 지금은 바로 그 '인권'에서 막혀있는 현실이죠."

'촛불' 이후 인권운동 영역에 가장 큰 사건이라면 단연 헌법재판소가 제한적으로나마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일을 꼽을 수 있다. 이제는 '감옥 아니면 군대'와는 다른 선택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가혹하다. 현재 논의되는 대체입법은 법적 처벌을 대체하되 사회적 징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준비되고 있다. '분단'이라는 상황논리가 병역을 필한 남성들의 '억울함'이라는 보상심리와 만났다. 신념을 지키려는 소수의 권리를 다시 제한하고 옥죄면 합리적 타협점이 도출될 것처럼 그들은 선전한다.

"군대 안 갔다온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사회를 만든 것은 국가 아닌가요?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의 억울함은 '국가'와 '군대'를 상대로 풀어야죠.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에게 악조건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촛불을 경험한 이 사회가 지금까지와는 어떻게 다른 경로로 나아가야 할지 토론이 부족하다는 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다움을 놓치지 않는 것이 인권운동"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상임활동가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상임활동가ⓒ민중의소리

미류 활동가가 몸 담고 있는 사랑방은 1993년 창립해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다. 창립 당시만 해도 한국사회에 '인권'과 '활동가'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하지만 국내 최초 인권전문 소식지 '인권하루소식'을 창간해 '인권'이라는 단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후 각종 간첩조작사건 진상규명부터 시작해 국가보안법폐지운동을 선도했고,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실태를 다양하게 폭로했다. 인권에 대해 자유권 뿐만 아니라 사회권적 접근 방법을 다양화해 시민사회의 활동영역을 그만큼 넓히는 데 일조했다.

미류 활동가는 "한국사회에서 '인권'이라는 게 1980년대까지는 반독재민주화투쟁 과정에서 강조된 양심수의 권리, 감옥에 갇힌 투사의 권리로만 한정된 측면이 있다"며 "그 개념을 확장시키는 차원에서 인권단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은 이 땅에 발붙이고 숨쉬며 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자연히 장애인을 비롯해 성소수자 등 특정집단의 권리문제에 주목하는 단체가 있는 반면, 의제로서 정보인권이나 병역거부운동 등에 천착하는 단체도 있다. 그만큼 인권운동 영역에서는 무수히 다양한 의제가 화두에 오른다. 동시에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이며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인권운동에서는 어느 하나의 의제만 해결된다고 해서 인권이 실현된다고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운동에 비해서는 상호성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편이에요. 특히 사랑방은 다양한 의제를 폭넓게 다루는 편인데, 예컨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이후로는 극심해진 노동탄압에 대응하는 데 노력을 쏟고 있어요. 인권운동이 근본적으로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엄호하는 길이 돼야 합니다. 분단체제 위에서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한국사회의 인권문제 해결 방법이 이 길목을 우회해서 나올 수가 없는 거에요."

자본주의가 결코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만 작동하지 않듯이, '자본-노동'의 문제에만 천착할 수가 없다. 미류 활동가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고리를 활용하지 않고는 노동자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분열·분쇄할 수가 없는 조건"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인권'의 문제를 직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인권' 하면 집회시위의 자유 등 표현상의 자유권을 흔히 떠올리지만, 한국사회의 '분단'을 대입하면 국가보안법이 바로 입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

"그래서 모든 운동이 결국 인권운동으로 귀결되는 거죠. 중요한 건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왜 싸우는가', '왜 저항하는가'인데, 그게 단순히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지속 가능한 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최저임금이 얼마가 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거냐' 이 질문에 대답부터 하는 것. '사람다움'을 사회적으로 놓치지 않는 것. 그게 인권운동인 것 같아요."

'인권'이란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상임활동가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상임활동가ⓒ미류 활동가

미류 활동가는 "인권운동이 항상 명쾌하지만은 않다"는 말을 몇 차례 강조했다.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단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내재한 갈등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운동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운동가들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계속 질문하고 의문을 품는 것이 일종의 직업병처럼 습관화돼있다고 한다. "세상은 정책이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이 어디였는지'를 물어봤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5년 전 세월호 참사를 입 밖에 올려냈다. 그는 "2016~2017년 박근혜 퇴진운동보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사회에 남긴 숙제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한다. 세월호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는 계기였다.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억울한 죽음의 행진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도. 결국은 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손을 잡고 연대할 줄 아는 사회가 사람을 살리는 사회라고 그는 말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인권'이라는 것을 멀게만 느끼는구나 하는 경험이 있는데요, 세월호 당시 '4.16 인권선언운동'이라는 것을 했어요. 일종의 풀뿌리 인권선언을 하는 취지인데, 어떤 시민들은 세월호에 아파하면서도 '지금 인권할 때냐'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여전히 '인권'에 대해 당장 닥친 문제라기보다는 더 멀리 있는 문제로 여기는 거겠죠.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것이 '인권적'인 것입니다. 그 권리를 주장하는 방법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문제인데, 오롯이 인권운동가의 숙제이기도 하죠."

'박근혜 정부냐, 문재인 정부냐'.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을 때 단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 광장의 열기는 '사람답게' 사는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일치된 욕구의 분출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민중적 기대를 등에 업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 미류 활동가는 아쉬운 감정을 조금 드러내보였다.

"아직 3년차이고…물론 박근혜랑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중요한 건 무수한 '삶'들이 말할 기회가 많아졌는가인데, 그런 측면에선 부정적인 면이 많아요. 경사노위 논쟁에서도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합의를 강요당하고 있고, 일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말한다고 볼 순 없죠. 여성들의 말하기인 '미투'도 당사자가 용기있게 만들어낸 흐름인데, 정부가 이를 확장시켜나갈 의지는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성소수자' 항목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 들어낸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조차 하지 못한 못한 일인데, 실망을 넘어서 규탄할 수밖에 없는 지점입니다."

그는 정부가 가짜뉴스를 동반한 혐오 선동세력에 단호히 맞서지 못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깊은 실망감을 드러내보였다. 민주주의의 기초를 허무는 반인권적 언어의 확장을 막기는커녕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이윽고, 인터뷰를 통틀어 가장 매끄러운 한 마디가 귀에 들려왔다.

"국가가 잘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보장되는 게 인권이 아닙니다. 단 하루라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저항의 언어를 구사할 때 보장되는 겁니다."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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