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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이제 그만 헤어져] 국선변호사의 국가보안법 사건 변론기

몇 년 전 일이다. 법원이 매칭해서 무료 변론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선사건으로 A님의 국선 국가보안법 찬양고무죄 위반 사건의 국선 변론을 맡게 되었다. A님이라 부르는 이유는 아버지처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었기 때문이다. 노인, 장애인, 외국인, 구속된 사람은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법원에서 필요적 국선변호인 매칭을 한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은 연을 맺고 계신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같이 내 사무실에 상담을 오셨다. 사실은 민변의 국가보안법 사건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려고 민변에 연락해보았는데 마침 지정된 국선변호사가 조수진이라고 하니, 전화 받은 민변 간사가 “아, 조수진 변호사님도 민변 회원이고 국가보안법 전문가에요”라고 했다지 뭔가. 나는 민변 회원이지만 민생경제위원회원일 뿐 국가보안법은 문외한이었다.

그즈음 재벌 증세하고 사회복지세 도입해서 복지국가 만들자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것 같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내가 실토를 했다. 선생님, 저는 국가보안법 변론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고요, 국보법은 형량이 세니까 다시 민변 가셔서 전문가를 만나셔요. A님은 허허 웃으시더니 내가 인상이 좋다며 조변호사가 계속 맡아주쇼 하시는 거다. 그리고 나가서 같이 백반을 먹고 A님이 좋아진 나는 ‘까짓 한번 해 보자’ 싶었다. 백반집에서 활동가분이 하얀 봉투를 꺼내어 비용이라고 주셨는데 손사래를 치며 거절을 했다. 국선은 원래 돈 안받습니다, 그동안 세금 내신거 이번에 국선변호비로 돌려받으시는 셈 치세요라며. 촌지인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나중에야 사건 기록 복사를 하면서 왜 비용을 주시려 했는지 이해가 되었는데 사건 기록이 수만 페이지에 달했다. 복사카드를 한방에 다 썼다.

당연히 무죄를 주장하는 이 사건에서 쟁점은 A님이 인터넷에 써서 올린 많은 북한을 소재로 하거나 북한 관련 뉴스를 소재로 한 글들이 과연 찬양고무냐, 그저 사실의 전달이거나 의견제시에 불과한 것이냐였는데, 수만페이지의 방대한 기록 중 무엇을 잡고 변론해야 하는지 각이 나오지 않았다. 재판날은 다가오고 애가 타서 물어물어 국가보안법 연구모임에 참관을 갔다. 이것저것 눈을 빛내며 물어보았더니 곧바로 공부 모임에 들어오라는 영입권유가 들어왔지만 민생경제운동에 헌신(?)하겠노라며 완곡히 거절하였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가장 자세한 해설책이라는 교과서를 소개받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곧바로 구입해서 읽어보니 과연 국가보안법을 조문별로 나누어 설명한 뒤에 법원 판례를 소개했을 뿐 아니라 각종 학설이 정리되어 학술적으로 상당히 잘 쓴 책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황교안 현 자유한국당 대표가 검사 시절 쓴 책 ‘국가보안법 해설’이다. 공안 수사의 교과서란 세간의 평을 얻었던 검사 시절, 황교안 자한당 대표의 또 다른 별명이 ‘미스터 국보법’이었다고 한다. 공안 수사란 어떤 것인지 우리는 대강 안다. 공안 수사 경험의 집약체로 탄생한 교과서를 읽으며 국가보안법을 변론하다니 세상사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를 정독하고 나서 연구모임에서 추천받은 국가보안법에 정통한 이모 변호사에게 부탁하여 변론자료를 받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는 자신이 쓴 변론요지서를 한글 파일로 주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모은 무죄 판례 자료들, 각종 전문가들의 글까지 흔쾌히 넘겨주었다. 누가 내 저작물 서면을 달라하면 PDF로 건네곤 하는 못돼먹은 나와는 질적으로 다른 따뜻한 인품의 변호사였다. 이변호사의 거의 100여쪽에 달하는 00사건의 변론요지서에 나오는 국가보안법의 연혁, 개정 역사, 헌법재판소에서 찬양고무죄에 대해 판시한 법리, 그리고 이변호사의 치밀한 논리를 정독하면서 나는 찬양고무죄에 대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재판이 시작되었고 그 뒤 몇 달간 신문과 구두변론, 서면 제출이 이어졌다. 피고인 신문 때는 어디까지 물어야 인간의 양심을 지키는 변론인지 얼음판같았다. 판사도 내가 갖게 된 ‘인식’을 갖게 하려는 것이 내 목표였다.

드디어 재판 선고 날. 적잖이 기대하고 긴장도 살짝했지만 판사의 선고는 찬양고무죄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유죄, 다만 양형에 있어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 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참 A님 볼 낯이 없었는데, A님은 예의 그 허허 웃음을 지으실 뿐이었다. 나는 이 사건의 2심 재판을 인품 좋은 이모 변호사님께 부탁드렸는데 다행히 흔쾌히 선임해 주어서 다행이었다.

경찰 등 수사기관은 자본론, 페다고지 등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서적들도 압수수색을 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증거로 제시한다.
경찰 등 수사기관은 자본론, 페다고지 등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서적들도 압수수색을 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증거로 제시한다.ⓒ민중의소리 자료사진

간접 증거만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밝히는 국가보안법 사건

그 뒤 일 년 정도 뒤였던지, 법원이 또 내게 국가보안법 사건의 국선 변론 지정을 했다. 이번에는 구속되어 있는 인터넷 카페 운영자 B대표 사건이었다. B대표는 지적인 탐구심이 강한 인물로 인터넷 카페를 수 년동안 운영하면서 여러 폴더를 만들어 본인이 번역한 북한에 대한 외국 기사들과 자신의 생각을 올렸는데 카페 방문자 수가 상당히 많고 토론의 장이 되고 있었다. 카페 운영자라 본보기로 구속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구치소 접견을 마치고 또 작전을 짜보았다. 이번에는 판사를 이해시키기 위해 전문가 증인 카드를 쓰기로 마음먹고 북한학 관련 교수님을 증인으로 모셨다. 다행히 이번 담당 판사인 N은 상당히 법리에 충실한 편이고 증거 없으면 얄짤없이 무죄를 꽂는다는 평판이 있는 인물. 교수님을 증인으로 모셔, 나도 궁금했던 이론적 구성이나 찬양고무죄의 연혁에 있는 사건 같은 것에 대해 상당히 긴 시간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카페 폴더가 여러 개인데 그 중 일부만 북한 관련 소재의 폴더인 점과 단체활동을 하지 않는 개인 연구자라는 점도 강조했다. 피고인 신문에서 검사가 파고들었지만 요리조리 잘 피했다.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네모가 아니고 세모로 생겼다는 점을 증명하는 기분이었다. 변호인은 이렇게 생겼을 것임이 00라는 증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라고 주장하고 검사는 아니라며 저렇게 생겼을 것임이 **라는 증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라고 주장하는 식이었다. 자백하지 않는 사건에서 그 사람이 과거에 가졌던 생각을 간접 증거만 가지고 밝히는 것이 가능은 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선고 날, 이번에는 무죄 판결을 받아들었다. B대표는 석방되었고 내게 따로 전화 한번 온 일은 없었지만 본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N판사와 조수진 변호사 훌륭하다고 칭찬 글을 올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요즘도 글 올리시나 궁금해서 카페에 다시 들어가 보았더랬다.

이렇게 두 건의 국가보안법 변론을 하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지식과 인식을 얻었다. 어렵고 새로운 사건을 맡았을 때 다시 국보법 변론 경험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국가보안법 변론에 묵묵히 헌신하시는 변호사님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 그리고 대관절 내가 국가보안법 전문이라고 전화받은 그 민변 간사는 누구였던 것일까. 몇 명 되지 않는 간사님들에게 오다가다 물어보았지만 범인(?)은 찾을 수 없었더랬다. 뉴스에서 황교안 대표가 나오고, 다시금 A님과 B대표를 생각하게 될 때면 문득 궁금해진다.

조수진 변호사(법무법인 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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