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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일본인 예술가 겐마 히사가 마주한 한국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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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00년에서 1940년 사이, 프랑스 파리는 전 세계 예술인들을 끌어들였다. 특히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엔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Amadeo Modigliani, 1884~1920), 러시아의 샤갈(Marc Chagall, 1887~1985), 폴란드의 키슬링(Moïse Kisling, 1891~1953), 리투아니아의 수틴(Chaim Soutine, 1894~1943) 등이 그들이다.

파리의 예술비평가들은 이들을 ‘에콜 드 파리’라고 불렀다. 이들은 모두 조국을 떠나온 외국인 예술가였고, 가난했다. 이들 중 일부의 생활은 가난 때문에 비참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에콜 드 파리’의 그림은 로맨틱하고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어떤 이의 그림엔 우아한 애수가 깃들어 있었다. 또 어떤 그림엔 섬세한 관능미가, 격렬한 정서가 담기기도 했다.

이들은 주류에 휩쓸리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에선 입체파 화가들이 화단을 주름잡고 있었지만, ‘에콜 드 파리’는 자신들 고유의 예술성을 잃지 않았다. 프랑스 타지에서 오히려 그들만의 정서로 독자성이 강한 예술을 확립해 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예술성은 지속되고 있으며, 세계인들은 그들의 작품을 보기위해 파리로 향한다.

시대가 변했지만, 지금도 세계 각국엔 ‘에콜 드 파리’가 존재한다. 태어나고 자란 조국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어떤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을 확립해 가는 예술가들이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한반도에도 그런 외국인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

겐마 히사 작가의 작업실
겐마 히사 작가의 작업실ⓒ민중의소리

한국을 찾은 ‘일본인 예술가’ 겐마 히사

지난달 27일, 외국문화의 집결지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을 찾았다. 가파른 경리단길과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골목 카페들을 지나, 붉은 벽돌로 지어진 4층짜리 빌라를 찾았다. 이곳 빌라 꼭대기 옥탑방을 작업실 삼아 작가활동을 하는 한 일본인 예술가를 만나기 위해서다.

아래층 가정집과는 달리, 4층 옥탑방은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달랐다. 옥상으로 이어질 것 같은 문을 열어젖히자, 그의 작업실이 나타났다. 옥상에 가벽을 세워 만든 옥탑방 이었지만, 꽤 넓고 아늑했다.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과 거실 한 가운데에 세워진 이젤, 캔버스가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했다.

캔버스엔 감각적인 붓질과 색감으로 커더란 바위산의 형태가 그려져 있었다. 그 옆엔 손님을 맞이한다고 급하게 치우다 만 유화재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곳 작업실의 주인은 겐마 히사(Hisa Gemma) 작가다.

그는 199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인 일본 나가노(長野)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다.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 한국이 좋았다는 그는 일본 명문 사립 미술대학인 ‘무사시노 미술대학’(武蔵野美術大学, Musashino Art University) 유화과를 졸업하곤, 2011년 9월 한국으로 건너왔다.

“막연하게 좋았어요. 어렸을 적 각국의 국기가 그려진 세계 지도를 펼쳤는데, 한국의 국기가 눈에 들어왔던 게 생각나요. 뭐라 해야 할까요. 깔끔한 디자인에, 청순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한국으로 유학을 가보자는 생각은 없었는데, 대학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굳혔어요. 그때 한국인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거든요. 그때 친했던 한국인 학생들 영향으로 한국으로 왔어요.”

그해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1년간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2012년 9월부터 홍익대 회화과 석사 과정을 밟았다. 대학원 석사 과정은 2년이지만, 외국인이었던 그에겐 4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비자문제로 최대한 학생신분을 유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대학원 수료는 2014년에 했어요. 비자 문제 때문에 논문을 많이 미뤘어요. 아마 한국에서 예술을 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점이 비자일거에요. 특히 예술가에겐 비자가 쉽게 나오지 않아요.”

그의 말대로, 정기적인 세금 납부가 어려운 외국인 예술가에겐 비자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 또한 형편이 좋은 예술가는 아니었기에, 작품 판매 외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업실 및 자취방 월세를 충당하던 상황이었다. 논문이 통과될 쯤엔 일본 케이블 방송인 ‘채널W’에 ‘한국서 활동하는 일본인 예술가’로 잠시 출연할 기회가 생기면서, 일시적으로 비자가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도 최근엔 6년여 만에 거주비자를 받고, 미술학원에서 일본 미술대학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일을 하며 체류하고 있다고 했다.

소매물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겐마 히사 작가
소매물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겐마 히사 작가ⓒ겐마 히사 작가 인스타그램
울릉도-송곳산, Oriental painting, pen, pencil on paper, 30x45cm, 2017
울릉도-송곳산, Oriental painting, pen, pencil on paper, 30x45cm, 2017ⓒ겐마 히사 작가
태안반도-안면도, Oil on canvas, 130×60cm, 2013
태안반도-안면도, Oil on canvas, 130×60cm, 2013ⓒ겐마 히사 작가

통영항서 26㎞ 배타고 소매물도,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

비자를 받기조차 어려운 한국에서 그가 그리는 그림이란,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 있는 자연풍경이다.

지난해에도 그는 경북 울릉도를 찾았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간 뒤, 강원도에서 3시간 배를 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그는 챙겨간 미술도구를 꺼내 그림을 그렸다. 푸른 바다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장엄한 바위와 주변 풍경을, 그곳서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화폭에 그려 넣었다.

이처럼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잘 가보지 않는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려 왔다. 그렇게 그가 찾아간 곳은 울릉도 외에도 경남 통영항에서 약 26㎞ 떨어져 있는 소매물도, 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도장포마을 바닷가에 있는 신선대, 부산의 태종대와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오륙도, 태안반도에서도 깊숙이 들어간 안면도,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 딸린 섬 홍도 등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이 찾아가기엔 너무나 먼 곳들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어코 목적지까지 가고선, 그날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을 그곳 풍경과 함께 그림(스케치) 속에 담는다. 그림 속에 담아내지 못한 풍경은 잊지 않기 위해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중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적 기류는 사진 위에 직접 스케치로 남기기도 했다.

100년 전 파리에 모였던 외국인 예술가들이 파리의 감성에 젖어들어 자신들만의 예술을 확립해 갔던 것처럼, 그 또한 한국의 풍경을 접하며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고향에선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풍경을 만나면서 느낀 감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그림으로 담아내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일본에서 잘 볼 수 없는 모양의 바위들이 있어요. 그러한 경관이 제에겐 소재가 돼요.”

미국 근대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와 미국 광고 및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엘리어트 어윗(Elliott Erwitt, 1928~)의 사진을 좋아한다는 그였지만, “그림에는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인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인간다움’을 “시간 속에 제 감정, 기억들”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에도 시간을 담아내는 여러 기법과 기술이 있지만) 저는 그림으로 더 깊은 감동을 주고 싶어요.”

이런 이유에선지, 그의 그림에선 사실적인 묘사 외에도 감정적 표현으로 보이는 추상적인 붓질이 곳곳에서 눈에 띤다. 때론 단조롭지만 화려하고 원색적인 물감이 붓질과 함께 묻어난다.

깊은 바다의 사색, Oil on canvas, 41x53cm, 2016
깊은 바다의 사색, Oil on canvas, 41x53cm, 2016ⓒ겐마 히사 작가
서울의 평범한 날의 장면, Oil on canvas 45×60cm 2017
서울의 평범한 날의 장면, Oil on canvas 45×60cm 2017ⓒ겐마 히사 작가

“한국을 떠나야 하나, 고민했어요”

외국인이 그림도구 들고,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겪게 되는 특이한 경험도 있었다.

한번은 그림도구가 든 은색가방과 접이식 이젤이 든 길쭉한 가방을 매고 인왕산을 오른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가 2016년, 한참 청와대 주변으로 경비가 삼엄할 때였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알지 못했던 그는 서울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인왕산을 올랐다. 하지만 그는 인왕산을 지키고 있는 경찰에 의해 3번의 검문검색을 받아야만 했다. 길쭉한 가방에 혹시 총이 들어가 있진 않은지, 은색가방에 위험한 물건이 담기진 않았는지 검문을 받은 것이다.

“굉장히 특이한 경험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해질녘 풍경이 아름다운 강원도 양양 낙산사를 찾았을 때도 독특한 경험을 겪었다. 바다 절벽에 위치한 이곳 사찰에서 이젤을 펴놓고 한참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를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자신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이도 있었다고 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 자리를 뜨려고 하니, 한 관광객은 그림을 들고 함께 사진을 찍어 달라 했단다.

외국인 예술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거북스러웠을지도 있지만, 그는 그런 한국인의 모습을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관심이 그에겐 즐거움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일본 사람들보다 좀 더 활발하고 솔직한 것 같아요. 자신의 생각이라던가, 감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문화가 좀 다른 것 같아요. 일본인들은 돌려서 말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그에게도 한국생활의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보통의 외국인들이 힘들어할 만한 문화의 차이, 생활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이 처한 특수한 역사적 상황 때문이었다.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나, 한참 고민을 한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또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 북한과 미국이 싸운다고 해서, 일본 대사관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었거든요. 전쟁이 일어나면, 어디로 헬리콥터를 보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정신적으로 불안했어요.”

Waves-原始的 힘의 시작, Mixmedia on paper, 40×21cm, 2017
Waves-原始的 힘의 시작, Mixmedia on paper, 40×21cm, 2017ⓒ겐마 히사 작가

또 그는 한·일 관계에 대해 우려했다.

“요즘 양국의 사이가 좋지 않잖아요. 그렇다보니, ‘일본인이 한국에 있으면서 계속 작업을 하는 게 괜찮을까’, ‘어떤 의미가 될 수 없을까’ 등의 고민도 하게 돼요. 그래도 저는 한국이 좋아서 계속 머물고 싶어요. 항상 정치가 꼬이면 저 또한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이런 고민 속에서도, 그는 귀국보단 한국에서의 작가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반갑게도, 오는 7월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이 잡혔다. 이에 그동안의 우려와 걱정을 떨쳐버리고 약 3개월 동안 작품 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겐마 히사 작가는 2007년 일본 도쿄에 있는 ‘갤러리 야스타케’(Gallery Yasutake)에서 첫 개인전 ‘회향(懷鄕)의 풍경을 찾으며’를 열었다. 이어 2014년 서울 ‘GS타워 더 스트릿 갤러리’(GS tower The Street Gallery)에서 ‘이어지는 삶-풍경을 걷다’ 개인전을 개최했고, 2015년엔 서울·부산·마산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가장 최근엔 경남 거제시 ‘갤러리 거제’(Gallery Geoje)에서 ‘A Meeting of Scenery and Vitality-심경(心憬)의 풍광(風景)’을 열었다. 또 그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경기도 헤이리마을서 열린 ‘Portfolio for Future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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