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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압도하지 않는 즐거움, 경쾌한 농염함
더 보울스
더 보울스ⓒThe Bowls

알고 있다. 이 글은 리뷰다. 이 글이 기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분명 리뷰다. 리뷰는 비평이고, 비평가의 의견이다. 리뷰는 리뷰일 뿐, 음악이 되지 못한다. 음악을 대신할 수 없고, 음악을 듣게 만들기도 어렵다. 물론 리뷰를 읽고 음악을 찾아 듣는 이들도 있지만, 심장자동충격기처럼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런 음악이 있다고, 혹시라도 짬이 난다면, 행여 짬을 낼 수 있다면 들어보라고 슬쩍 말을 흘릴 뿐이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다 누릴 수 없듯, 세상의 모든 좋은 음악을 다 들을 수 없다. 비평가는 여시아문 같은 리뷰로 멀리 피어난 꽃의 빛과 향기를 받아 적을 따름이다. 꽃 하나 피우기 위해서는 온 세상이 도와야 하듯, 음악이 흐르기 위해서도 온 세상이 함께 밤을 지새워야 한다.

5인조 밴드 더 보울스의 음반 ‘If we live without romance’는 3월에 피었다. 4월에 피어난 봄꽃들에 눈이 팔려서인지 더 보울스의 음반에 눈 맞추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누가 보던 보지 않던 꽃은 꽃이다. 향기는 저절로 흩어지고, 꽃잎은 멀리까지 날린다. 더 보울스의 꽃은 록의 꽃이다. 개러지라든가, 일렉트로닉 록 같은 최근의 록이 아니다. 더 보울스가 스스로 언급했듯 이번 음반에는 스테판 비숍(Stephen Bishop)의 ‘Bish’, 스틸리 댄(Steely Dan)의 ‘Aja’, 래리 칼튼(Larry Carton)의 ‘Discovery’ 같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록 음악의 비가 흩뿌렸다. 때려 부수는 비, 묵직하게 압박하는 장맛비가 아니다 깔끔하고 나른한 록, 세련된 록, 팝을 자주 들락거리는 소프트하고 컨템포러리한 록이다. 당시를 살지 않았음에도 오래 전의 뮤지션들이 가꾸고 키운 록을 순식간에 이식시키는 솜씨는 매끄럽다.

록이 팝과 만났던 순간을 부활시킨 ‘보울스’의 첫 음반

음악을 구성하는 것이 멜로디와 리듬, 사운드와 가사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적고 보면 너무 뻔한 재료들을 더 보울스는 어떻게 자르고 굽고 끓였을까. 더 보울스의 음악에는 매끄러운 멜로디가 있고, 여유로운 연주가 있다. 과거 블루스 음악의 묵직하고 끈끈한 사운드를 앞세웠던 더 보울스는 이번 음반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음악의 무게를 덜었다. 일렉트릭 기타와 건반, 신디사이저가 채우는 사운드는 매끈하면서도 펑키해 리듬감 넘치고 몽롱하다. 많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공간감을 활용하고, 배음을 적절히 부여한 사운드 메이킹은 보컬만큼 나른한 여운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이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이야기 한 뮤지션들이 오래 전에 선보였던 사운드에 자연스럽게 아련한 멜로디를 얹은 노래는 몽롱함과 강렬함을 적절히 교차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록이 팝과 만났던 순간을 부활시키고, 록의 가장 부드러운 맨살을 만질 수 있게 한다.

이번 음반을 호평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더 보울스와 음반의 조력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사운드의 일방통행로를 잠시도 이탈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보울스는 리듬을 당기거나 늦추면서, 혹은 일렉트릭 기타를 터트리거나 퇴장시키면서, 또는 건반을 부각시키거나 뒤로 숨기면서 사운드의 변화를 주지만, 그 모든 변화는 항상 팝과 록의 경계 사이의 개척지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강렬함조차 매끈하게 만들어버리는, 강렬함으로 매끈함을 더 매끈하게 만들어버리는 사운드 메이킹은 고급스럽게 달콤하다. 어느 선까지 뜨거워야 하고, 어느 선까지 달콤해야 하는지, 어느 선까지 부풀어 올라야 하는지 아는 덕분이다.

더 보울스의 음반 ‘If we live without romance’
더 보울스의 음반 ‘If we live without romance’ⓒThe Bowls

예스럽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뿜는 음반 ‘If we live without romance’

가령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건반을 이어 경쾌함을 불러일으키는 ‘Drive’는 리듬을 반복하다 일렉트릭 기타의 변주로 확장하고, 몽환적인 보컬을 흩뿌려 로맨틱한 분위기에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간주 부분에서 등장시킨 트럼펫은 곡을 더욱 멋스럽게 색칠한다.

이렇게 예스럽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뿜는 것이 이번 음반의 의도라면 더 보울스는 완전히 성공했다. 13곡의 노래는 제각각 다른 노랫말과 리듬을 구사하지만, 설레고 들뜨고 따스한 정서의 톤을 유지할 뿐 아니라 좋은 노래로 사운드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매끄럽고 달콤한 사운드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많지 않은 악기를 심심한 듯 무심하게 넣고 빼면서 쉴 새 없이 온도를 높이고 사운드 스케이프를 넓혔다가 비우면서 레코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곡의 초반부에서 제시한 리프와 사운드를 반복하는 곡은 한 곡도 없다. 공들여 고민하면서 쌓았다가 허물고 다시 쌓는 사운드의 정교하고 보드라운 손길. 압도하지 않는 즐거움, 경쾌한 농염함의 온도로 달아오르는 음악은 봄처럼 따뜻하고 들뜬 계절에 제격이다. 우리가 현재라고 믿는 오늘은 얼마나 많은 과거가 함께 하는가. 과거와 만나 더 두터워지는 오늘의 음악.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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