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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 칼럼] 한국군 학살지 베트남에서 찾은 희망
베트남평화의료연대는 한국군 학살 지역에서 의료 등을 지원하는 연대 활동을 하고 왔다.
베트남평화의료연대는 한국군 학살 지역에서 의료 등을 지원하는 연대 활동을 하고 왔다.ⓒ필자 제공

베트남전쟁, 흔히 우리가 월남전이라고 부르는 전쟁에 베트남은 15년을 소모했습니다.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벌어졌던 이 전쟁에 놀랍게도 우리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30만명이 넘는 전투병’이라고 합니다. 의무병이나 운전병 등 비전투병을 합치면 어느 정도 수준일지 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 당시 우리 나라 인구가 3천만명 수준이었다고 하니, 인구의 1%를 비행기타고 6시간 걸리는 나라에 보낸 것입니다. 가히 기록적이라고 할 수 있죠.

안타까운 것은 한국군이 가서 ‘적’으로 규정된 군인들만 죽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퐁니,퐁넛 마을, 하미 마을 등에서 희생된 민간인이 제가 듣기로는 9천명 가량, 만명 남짓 학살됐다고 합니다. 올해 평화연대 답사에서 추념비에 갔다가 우연히 돌아가신 피해자의 아내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90이 넘은 백발의 할머니셨죠. 할머니께 우리가 여기에 인사를 하러왔고 일주일정도 의료활동을 할거라고 설명드리니, 할머니 첫 마디가 “그 때 그렇게 죽여놓고, 이제 와 참배를 하러 와?”였다고 합니다. 다녀온지 약 3주 정도가 되어가지만, 그 때 그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의 표정이 기억이 납니다.

서론이 길었는데요. ‘베트남평화의료연대’는 앞 글에서 대략 느끼셨겠만, 한국군이 학살한 지역에 들어가 답사하고 사죄하고, 미약하지만 진료나 교육을 통해 그 지역사회의 건강에 기여할 방법을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체로 올해가 20년째 진료단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위안부’ 할머니들께 가는 일본인 의사의 처지 정도가 될까요. 처음 몇 년은 당연히 배제와 비난의 목소리를 감수해야 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 어떻게 여길 오냐” 이런 감성 있잖아요. 물론 제가 갔던 20기 진료단에서는 그 지역의 보건소장님,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이 우리의 진료에 도움을 주고 계셨습니다. 20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죠. 두번의 민주정권과 밋밋하지만 정권 수장의 유감표시, 우리나라 아이돌들의 한류열풍, 베트남과의 수교 정상화, 최근에는 박항서 감독님까지.. 강산이 두번 변하는 동안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에 대한 감정 기류가 좋은 쪽으로 변화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인 3일에는 하미 마을 생존자이자 민간인학살 증언을 해 오시던 ‘탄 아주머니’가 제주4.3평화상을 받으셨어요.

의료연대활동 중간에 탄 아주머니와 간담회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다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님(베트남인)이 통역을 하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베트남에 전쟁을 겪지 않았던 어린 친구들이 이 때의 일들을 기억하는 게 갈수록 소홀해지고, 혹은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아직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사죄받지 못하거나 한을 품고 사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 젊은 세대가 기억하지 못하면 남은 일을 누가 하겠나’ 이런 취지의 얘기였죠. 전 들으면서 자연스레 ‘위안부’ 할머니들이 떠올랐습니다. 며칠전 또 한분이 세상을 떠나 할머니들이 21분만 남아있다, 21분 중에 거동이 편한 분의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위안부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은 것이 없다는 특집 연재였는데요. 전쟁을 겪지 않은 나와 나의 친구들이 이걸 기억해주지 않으면 할머니들은 한이 남아 구천을 떠돌겠구나 싶었습니다.

진료 이야기를 잠깐 하면, 진료를 보면서 한국이랑 다르게 팔, 다리가 없으신 분들을 좀 많이 뵙게 되었는데요. 당뇨 등의 문제로 의학적 접근성이 떨어져 절단한 분도 계셨지만, 대부분은 전쟁 당시 파편이나 포에 맞고 어쩔 수 없이 신체 일부를 절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이번 활동에는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성장 관련된 교육을 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전쟁이 수습된지 50년도 아직 안되었지만 초등학교에 아이들이 넘쳐났고 그들은 백만불짜리 미소로 앞날에 대한 희망을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역동성은 역시 아이들에게서 찾는구나 싶었습니다.

이 활동이 내 나라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될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 한번 다짐해봅니다. 독자 분들도 저랑 같이 본인의 자리에서 과거를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안준 민중과함께하는진료모임 길벗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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