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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전 세계 35000km 돈 없이 떠돌며 “저처럼 살아도 돼요”
없음

집이 어디예요?
“사람이 꼭 집에 살아야 하나요?”

나이가 몇 살이예요?
“나이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직업이 뭐예요?
“직장을 꼭 가져야 할까요?”

누군가에 대해 알기 위해 꼭 물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질문들이 바보스러운 것이 돼버렸다. 이하루씨는 나이도, 집도, 직업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의미도 없는 명함을 건넨 것이 멋쩍어졌다.

“사회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라’라는 매뉴얼에서 벗어난 삶을 적극적으로 살고 싶어요. 사람들한테 이런 식으로 대충 살아도 된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싶어요.”

이하루씨. 숲에서 노숙을 하는 모습.
이하루씨. 숲에서 노숙을 하는 모습.ⓒ이하루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전 세계 53개국에 가봤고, 35000km를 히치하이킹으로 다녔어요. 제 경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마 한국에서 가장 많이 히치하이킹을 한 사람 아닐까요? 하하”

“스코틀랜드에 있었을 때 2년 반 정도 드레드락(머리카락을 여러 가닥으로 땋아 늘어뜨린 머리 모양, 레게머리)을 했었어요. 파란색 머리였는데 정말 예뻤죠. 유럽 친구들은 ‘우와 너 머리색이 예쁘다. 좀 줄래?’하면 그냥 가위로 잘라주곤 하는 거예요. 그럼 그걸 받아서 제 머리에 엮어 다니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관리가 힘들어서 훌훌 털어버리는 마음으로 삭발을 했었고, 지금은 제 자연스러운 흑발이 좋아요.”

하루씨는 20대 여성이다.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마치고 유럽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후 약 4년 간 무전여행을 하며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여행만 하며 살아야겠다.”

‘학교’는 그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다. “폭력적, 권위적, 억압적이고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곳이죠. 대학은 마치 자유로운 척하면서 다 똑같아요.”

이어 “그런데 제가 대학 졸업장이 있다”며 ‘말하기 부끄럽다’, ‘창피하다’고 수차례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지금 그에게 학창 시절은 흑역사다.

여행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느냐고 묻자 “제일 처음 한국에서 러시아 모스크바로 갈 때 25만원짜리 비행기 표를 탄 이후로는 계속 히치하이킹을 하며 무전여행을 했다”고 답했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려면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냥 ‘돈을 안 써야 겠다’고 생각해요. 잠은 숲 속에서 노숙을 하거나 친구에게 초대를 받아 해결했어요. 숙박비와 교통비가 전혀 안 들었죠. 또 저는 소비를 아예 안 해요. 새 물건을 사지 않은 지는 몇 년 됐어요. 옷 같은 경우엔 추워지면 프리샵이나 친구에게 얻는 식이죠.”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이하루씨.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이하루씨.ⓒ이하루

그녀의 ‘소유물’은 배낭가방에 담긴 노트북과 카메라, 타투 용품, 그리고 침낭이 전부다. 노트북과 카메라는 영화 촬영을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전여행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중이라고 한다. 제목은 ‘파랑새 방랑학교’가 될 예정이다. 타투용품은 취미로 타투를 배운 이후 들고 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가끔 돈벌이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여행이 ‘여성’으로서 위험하지는 않을까? 라는 질문에 “위험한 경험들이 없던 것은 아니”라면서도 “제가 여행을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위험은 한국사회에서 더 심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루씨는 열정적인 ‘비건 운동가’이기도 하다. ‘비건(Vegan)’은 육류뿐만 아니라 유제품, 계란, 해물 등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 채식’을 뜻하는 말이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짧은 기간 동안 강연을 하고 떠났다. 지난 2일 동물권단체 ‘MOVE’ 주관으로 열린 ‘우리는 왜 불의에 맞서 저항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강연이었다. (현재는 다시 여행 중이다.) 내용은 여행 중 비건 운동가가 된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행 도중 많은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해외의 동물권 단체, 비건 운동가 단체 등에서 활동한 바 있다.

동물권단체 시위 활동 중인 이하루씨.
동물권단체 시위 활동 중인 이하루씨.ⓒ이하루

“기린은 동물원에. 돼지는 도살장에. 인간 관점에서 정한 거예요. 살아있는 돼지는 동물원에 없어요. 돼지는 동물이 아니라 음식이니까요. 소와 돼지는 가축. 돼지는 베이컨. 소는 스테이크. 그렇게 주입된 시스템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뇌돼 ‘문화’가 되고, 세대를 넘어가면 ‘전통’이 돼요. 고기를 먹는 게 전통이 돼버리는 거죠.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를 보신 적 있나요? 눈이 완전히 빨갛고, 정신이 완전히 나간 모습이에요. 그런 돼지들을 우리가 먹는다면, 사람들도 영향을 받겠죠. 비건들은 돼지와 스테이크 사이에 사람들이 잊고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여행 도중 성범죄를 겪고 이를 폭로하는 경험을 하면서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과 ‘비거니즘’을 관련지어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루씨가 겪은 이야기다. 이스라엘에서 한 부유한 67세 남성이 홈파티를 열고 히피와 여행자들을 초대했다고 한다. 그곳에 간 하루씨 일행은 이른바 ‘매직풀’이라고 명칭된 누드 수영장에 들어갈 것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파티는 애초 젊은 외국인 여성 여행자를 주로 초대했다. 남성들은 ‘매직풀’에 들어가지 않는 여성들에게 ‘멋이 없다’, ‘겁쟁이’, ‘자유롭지 못하다’ 는 등으로 자극해 들어가게 하려했다. 하루씨 일행은 끝내 거절했고, 이 일을 페이스북을 통해 폭로했다. 폭로 이후 해당 이스라엘 남성에게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피해자들이 다수 등장했고, 실제 강간을 당했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그 남성은 무려 15년 넘게 이같은 홈파티를 열어왔다고 한다. 하루씨는 피해자를 모아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그 남성은 체포됐다고 한다.

“비건이 아닌 사람들은 비건들에게 ‘채식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비건들이 왜 그렇게 사람들에게 비거니즘을 알리려고 하는지, 왜 가만히 있을 수 없는지, 이 사건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비거니즘’이 강조하는 동물에 대한 차별과 폭력, 그것이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하루씨
이하루씨ⓒ이하루

‘고기를 먹는 건 내 선택이야. 내 권리야. 내 자유야’라는 말이 하루씨에겐 ‘여성을 성폭행하는 건 내 선택이야. 내 권리야. 내 자유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게 들린다는 것이다.

“비건들은 축산업의 폭력성 때문에 동물성 식품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즉, 동물을 먹는다는 것은 ‘가해’죠. 그런 눈 앞에서의 ‘가해’를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제가 성희롱 사건을 보고 방관할 수 없었던 것처럼요. 가만히 방관한다는 것은 가해자의 편이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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