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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나에겐 세월호 가족들이 히어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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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참사 현장같은 곳에서 슈퍼맨 같은 영웅들이 나타나서 다 해결해주고 사람들을 구해주잖아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테는 '안전사회를 건설하자'라고 투쟁하는 4.16 세월호 유가족들이 히어로(영웅)이더라고요."

누군가는 참사의 순간 어느 노래 가사처럼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적같은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민중의소리는 길가는밴드 리더 겸 보컬 장현호(40)씨를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중의소리는 길가는밴드 리더 겸 보컬 장현호(40)씨를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민중의소리

길 위에서 노래하는 밴드, '길가는밴드' 리더 겸 보컬 장현호(40)씨는 거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세월호 가족들은 내 자식은 잃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시 희생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투쟁하고 계신다. 그래서 세월호 가족들은 여전히 내게는 영웅"이라고 말했다.

그의 오른쪽 팔목에 노란 세월호 팔찌가 있었다. 그는 평생을 차고 다닐만큼 노란 팔찌가 집에 있다고 말했다. '잊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새로운 봄은 샛노란 리본을 불러내고/해맑게 웃던 너희들을 기억한다 살아내겠다 노래해/잘가시오 잘가시오 울지마오"-'길가는밴드'의 노래 '다시 봄- 4.16 그대들을 기억하며' 중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나는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잊어서는 안되는 참사였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노래뿐이었다. 음악은 또 다른 이름의 '기록'이자, '기억'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그 해, 그는 곡 하나를 만들었다. '다시 봄-4.16 그대들을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곡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싶어서 만든 노래였다.

"이 곡의 후렴구에 제가 음을 계속 끌어요. 우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아이들 생각하면서 숨이 끊어질 것처럼 진을 짜내서 부른다고 해야할까요? 그렇게 마음을 담아서 부르고 있어요."

기독교인인 그에게 4월은 특별한 날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4월은 부활절이 있는 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달 첫주 일요일마다 세월호합동분향소가 있었던,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는 별이 된 아이들을 기억하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기도한다.

그는 기독교 음악을 하는 팀인 '부흥한국'에서 7년 간 베이스 기타연주자로 활동했다. 장 씨는 밴드 세션을 하면서, 뒤에서 코러스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게 어색했다. 그래서 혼자 몰래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저 좋았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억지로 노래를 부르지 않고, 거리에서 그 노래를 듣는 사람도 억지로 노래를 듣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지나가는 사람이 노래에 끌려서 노래를 듣게 되고요."

그는 기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노래로 말을 걸었다. 스쳐지나갈 줄 알았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음악에 귀기울였다. '버스킹'을 그는 '우연과 우연이 만나서 필연이 되는 공연'이라고 표현했다.

길거리 공연을 이어가다 2011년, 자연스럽게 '길가는밴드'가 결성됐다. 밴드에는 김동석(드럼), 이지음(베이스), 장원(음향 엔지니어)가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 씨는 '쌀의노래', '75m 위', '가치를 같이', 'We're gonna dance in the DMZ' 등 20여곡을 작사·작곡했다.

"모든 사람의 입에/곡식을 공평하게 넣어 주는 것이/평화/평화가 필요하다는/소식을 듣고 쌀을 팔아/그곳으로 달려 갔지만/부끄러워 문 밖에 두고 나왔는데/밥을 지어 주고 싶구나" - '쌀의노래' 중

그는 노래로 '평화'를 꿈꾸기도 한다. 그가 빚어낸 '쌀의노래'에 나오는 평화(平和)라는 단어는 특별하다. 벼 화(禾)자에 입 구(口)자가 합쳐진 한자, 그는 모든 사람의 입에 쌀을 공평하게 넣어주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해 가사에 담았다. 이렇듯 그는 따뜻한 마음으로 '통일'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길가는밴드는 지난해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쌀의노래 콘서트'를 개최하고, 모금을 통해 북한에 쌀을 보내기도 했다.

"그댄 볼 수 있어요/75m 위 작은 점을 희미한 불빛을/그댄 볼 수 있어요/내리는 햇빛도 비바람도 추위까지도 부둥켜 안으니 내려가지 못합니다"-'75m 위' 중

그는 공장 밖으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있는 거리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는 파인텍 해고 노동자들이 75m 굴뚝에서 농성 하고 있을 당시, 기독교대책위원회의 구성원으로 매주 한 번씩 열리는 기도회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떻게 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2018년 8월 '75m 위'라는 노래가 음원으로 출시됐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지난 겨울, 그는 굴뚝 밑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장 씨가 그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자신도 노동자라고 말했다.

"저는 일요일인 주일에 교회 가서 찬양 인도를 하는게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에요. 소속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노동자로 불러주시는 거죠."

그는 '사역'이라는 말 대신 '노동'이라고 말했다.

"저는 사람들한테 일부러 당당하게 '교회에 노동하러 간다'고 이야기해요.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제가 학습하게 된 거죠.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게 된 거예요. 나도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지만, 이것도 신성한 노동이니까요."

그는 어떤 뮤지션으로 살고 싶을까?

"60살까지 노래하고 싶은데...사실 평생 노래하고 싶어요. 저희 밴드는 가늘고 길게, 끝까지 가고 싶어요."

그러면서 그는 며칠 전에 TV에서 세월호 유가족인 한 어머니가 인터뷰 하는 장면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참사를 당하거나, 해고를 당하거나, 억울한 당사자가 됐을 때, 과연 세월호 유가족처럼, 굴뚝 위에 올라간 노동자처럼, 김용균 어머님처럼 살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 투쟁하고 있는 당사자들처럼 용기있게 나서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파하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뮤지션으로서 노래로 위로하고, 힘을 드리고 싶어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그분들 곁에서 노래하고 싶어요. 그거는 제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서로의 용기가 되어'라는 길가는밴드 노래 제목처럼, 아파하는 이들에게 서로 용기를 나누는 뮤지션이 되고자 한다.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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