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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낙태죄 폐지! 모두를 위한 새로운 세계로
낙태법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위헌 손피켓을 들고 있다.
낙태법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위헌 손피켓을 들고 있다.ⓒ김철수 기자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원치않는 임신을 하고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마음 졸이며 찾아다니고, 병가나 연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해 충분히 쉬지도 못한 채 일터에 나가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처지를 말입니다.

약물로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불법촬영물로 여성을 유희로 삼고, 성별임금격차로 여성을 착취하고, 여성 노동을 하찮게 여기며, 낙태죄를 뒤집어씌워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다중 차별과 다중 고통의 현장에 바로 여성이 있습니다.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보다 우선될 것은 임신-출산-양육으로 인한 차별을 겪지 않을 양질의 일자리, 성평등한 노동현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3월의 마지막 토요일, 광화문에서 개최된 ‘낙태죄폐지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폐지 이후의 세계’ 집회 현장에서 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낙태죄’로 인해 이중삼중의 고통과 차별을 겪어야했던 여성의 현실을 알렸다. 그리고 광화문에 모인 천오백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악법이 옥죄여 왔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자고 목소리를 모았다.

‘낙태죄’, 즉 임신중지를 이유로 여성을 처벌하고 또한 여성의 임신중지를 도왔다는 이유로 의료인도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징벌하며, 건강과 삶을 위협해온 역사는 종결되어야 한다. 국가가 인구를 줄이기 위해 ‘강제 낙태’와 불임시술을 강요하다가, 다시 저출산 해소라는 명목으로 임신을 중지하는 여성을 비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기만적인 행태는 더 이상 반복될 수 없다. ‘낙태죄’ 폐지 이후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다섯 가지 요구를 소개한다.

사회단체 회원 등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회단체 회원 등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낙태죄 폐지, ‘모두의 재생산권이 보장되는 세계’ 위한 마중물

하나.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 및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
장애, 질병, 연령, 경제적 상황, 지역적 조건, 혼인 여부, 교육 수준, 가족상태, 국적, 이주상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사회구성원들이 아이를 낳을 만한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지 않고 여성을 처벌하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성평등 사회,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는 사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65년간 존치되어온 악법인 ‘낙태죄’ 폐지가 그 마중물이 될 것이다.

둘. 포괄적 성교육 보장 및 피임 접근성 확대.
자신에게 필요한 피임기술과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임신상태를 중지할 수 있는 권리는 국가가 보장하여야 하는 기본적인 재생산 권리이다. 하지만 피임의 접근성과 성교육의 필요성이 임신을 중지하는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서 동원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비과학적이고 차별적 내용의 성교육을 시행하며 모두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보편적 인권에 기초한 포괄적인 성교육이 표준이 되는 사회, 결혼유무와 관계없이 어떠한 조건과 차별도 없이 피임 접근권을 보장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셋. 약물적 유산유도제 도입 및 여성건강권 보장.
임신중지는 합법적이고 안전한 의료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안정성이 보장된 약물적 유산유도제의 국내도입이 가로막혀 있는 현실이 조속히 개선되어야 한다. 여성들은 더욱 안전하고 접근성이 높은 방식으로 임신중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또한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약품 처방과 시술을 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는 최신지견의 의료기술에 대한 의료인 교육을 제도화하고, 약물적 유산유도제를 지금 당장 도입하라. 의료인 교육을 책임지는 대학병원과 공공의료기관은 안전한 임신중지와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실천에 앞장서라.

넷.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및 인권 억압의 역사 청산.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가족계획사업의 시행을 위해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소위 ‘정상가족’ 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켰다.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으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국가가 공공연하게 법을 만들고 제도를 시행했으며, 강제 불임시술마저 허용했다. 형법상의 낙태죄 폐지와 더불어 우생학적 모자보건법이라는 치욕의 역사도 종결하라. 우리는 더 이상 임신중지 사유를 허락받고, 증명해야 하는 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며, 임신중지에 대한 합법화를 기초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다섯. 낙인과 차별 해소, 모두의 재생산권이 보장되는 세계.
과연 누가 어떤 기준으로 임신허락을 하고 임신중지를 처벌할 수 있는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이다. 여성이 가족의 간섭없이, 교회의 간섭없이, 국가의 간섭도 없이, 일체의 간섭없이 온전히 자율적으로 임신 여부와 그 횟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임신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중지할 것인지, 아이를 언제 어떻게 낳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여성이 아닌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따라서 임신중지를 이유로 여성을 심판하거나 처벌할 권한 역시 그 누구에게도 없다.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아이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 모두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인권 존중의 사회를 향한 출발점이다. 비혼 여성이 출산하면 문란하다고 손가락질당하고, 기혼 여성이 출산하면 모성을 강요받고 경력 단절되는 현실 역시 낙태죄 폐지와 성과 재생산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바꿔나갈 것이다. 우리는 한 사회가 다음 세대를 재생산해나가는 과정에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 사회 부정의에 대항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모자보건법상의 인공임신중절 허용사유를 확대하여, 즉 사회경제적 사유 추가를 통해 소위 ‘낙태 예방’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임신중지는 권리의 문제이지 예방을 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양육비 지원 등은 임신중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정책이다. 경제 위기로 인한 출산율 급감의 문제를 여성에게 책임전가하는 것도 중단되어야 한다.

오는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우리는 2019년, ‘낙태죄’를 반드시 폐지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시대의 요구에 화답하여 낙태죄 위헌을 결정하라! 정부와 국회는 낙태죄 폐지와 성과 재생산의 권리 보장을 위한 행동에 나서라!

문설희(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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