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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구 4000만 명 이상 선진국 중 올해 경제성장 전망 1위

“거짓말에는 그냥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학이 있다.”

영국 수상을 지낸 정치인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의 통렬한 지적이다. 통계학자들이 들으면 무척 억울해할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종종 숫자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그리고 그것을 통계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뒤 혹세무민을 일삼기도 한다.

통계가 거짓말에 매우 유용한 이유는 숫자가 주는 위압감 때문이다. 숫자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은 통계에 가려진 진실을 보기 쉽지 않다.

3월 초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은 숫자를 악용한 혹세무민의 결정판이었다. 그는 “최근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2019년도 한국경제성장률을 2.1%로 대폭 낮췄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습니다. 지난 20세기 실패한 사회주의 정책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부활하고 있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정의철 기자

그러면서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위헌이며,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헌정 농단’ 경제 정책”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차차 살펴보겠지만 무디스와 OECD의 통계는, 나경원 대표 발언의 취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숫자들이었다. 원문을 보면 5분 만에 알 수 있는 거짓을, 공당의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사용한다. 디즈레일리가 통계를 ‘3대 거짓말’로 꼽은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통계에서 유리한 숫자만 쏙 뽑아 곡학아세하는 짓을 멈추고, 충분히 납득 가능한 표본으로 새로운 해석을 해보자.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자유한국당이 왜곡한 통계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9일 2019년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를 발표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평이하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6%로 지난해 10월 발표와 변동이 없었다. 반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5%에서 3.3%로 하향 조정됐다.

그런데 이 자료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놀라운 결과가 두 가지 나온다. 첫째, 인구 4000만 명이 넘는 선진국 10개 나라 중 대한민국의 2019년 경제성장 전망치는 단연 1위로 예상됐다.

둘째, 이 추세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내년(2020년) 전망에서도 한국은 이들 중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것이 예상된다.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서 한국은 2년 연속 대형 선진국 중 가장 빛나는 경제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야기다.

독보적인 경제 성장률의 주인공은 한국

IMF 발표에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OECD 소속 36개 국가의 경제전망치가 실렸다. 이들 중 인구가 4000만 명이 넘는 나라는 모두 10개다. 미국(3억 2600만), 멕시코(1억 3000만), 일본(1억 2700만), 독일(8200만), 터키(8200만), 영국(6600만), 프랑스(6500만), 이탈리아(5900만), 한국(5200만), 스페인(4600만) 등이 그들이다.

이들 중 올해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나라는 대한민국으로 2.6% 성장이 예상됐다. 뒤를 이어 2위 터키가 2.5%, 3위 미국이 2.3%, 4위 스페인이 2.1%로 전망됐다. 멕시코(1.6%), 프랑스(1.3%), 영국(1.2%)이 1%대 성장에 머물 전망이고 일본은 겨우 1% 성장에 걸쳤다. 독일은 0.8%로 9위, 이탈리아는 0.1% 성장으로 꼴찌로 예상됐다. 10개 나라 중 6개국이 2% 성장에도 미치지 못한다.

2020년 전망도 마찬가지다. 역시 성장률 1위 예상국은 한국이다. 2.8%의 성장이 예상돼 올해보다 전망치가 더 높아졌다. 2년 연속 2위는 터키의 몫이었지만 터키의 예상 성장률은 2.5%로 올해와 같았다. 3위 미국은 1.9%로 올해보다 0.4%포인트나 하락했다.

4위 스페인, 5위 멕시코, 6위 프랑스, 7위 영국까지 순위 변화가 없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한 계단 씩 올라 8위와 9위를 차지했고, 올해 8위였던 일본이 내년 0.5% 성장으로 꼴찌로 곤두박질쳤다. 2020년 2% 넘는 성장이 예상되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 단 둘 뿐이다. 1위에 오른 한국은 대형 선진국 중 2년 연속 가장 빛나는 경제성장을 달성할 전망이다.

OECD 36개 나라 전체를 봐도 한국의 순위는 매우 양호하다. 상위 국가는 주로 인구가 적은 나라들이 휩쓸었는데, 1위는 아일랜드(4.1%)였다. 뒤를 이어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칠레, 슬로베니아, 이스라엘,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이 3%대 성장이 예상됐다. 체코,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대한민국이 2.5%가 넘는 높은 성장률 전망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OECD 36개 나라 중 13위로 매우 좋은 순위를 기록했다.

2020년 전망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1위 슬로바키아(3.5%)를 필두로 아일랜드, 이스라엘, 칠레, 폴란드, 라트비아 등 6개 나라가 3%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의 예상 성장률은 2.8%로 36개 나라 중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통계를 악용한 곡학아세를 멈춰라

어떤가? 나경원 대표가 저주를 퍼부은 통계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 바뀔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관점은 나 대표의 곡학아세와 달리 그 어떤 왜곡이나 조작도 없다. 나 대표는 이에 대해 뭐라고 답을 할지 심히 궁금하다.

나 대표가 사회주의 운운하며 인용한 통계는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와 OECD의 자료였다. 무디스는 2월 28일 발표한 세계거시경제전망(Global Macro Outlook 2019-20)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2.3%→2.1%) 떨어뜨렸다. OECD 역시 3월 6일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Interim Economic Outlook)에서 한국의 성장률을 0.2%포인트(2.8%→2.6%) 내렸다. 이 자체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두 보고서의 원문을 살펴보면 나 대표의 주장이 얼마나 왜곡됐는지 금방 드러난다. 두 보고서의 주제는 모두 “올해 세계 경제 전망이 극도로 나빠진다”는 것이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국가의 경제성장이 모두 떨어졌다는 게 두 보고서의 요지다. 그걸 들고 나 대표는 “한국만 사회주의로 경제가 망한다”는 사기극을 펼친 것이다.

무디스 보고서부터 살펴보자. 무디스는 유로존을 한 나라로 묶은 뒤 G20에 소속된 선진국 10개 나라의 경제를 전망했다. 미국, 유로존,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한국이 분석 대상이다.

그런데 이들 중 미국(+0.2%)과 일본(+0%) 두 나라를 뺀 나머지 여덟 개 나라의 전망치가 모두 하락했다. 한국만 떨어진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미국과 일본 외에 한국보다 전망치가 덜 떨어진 나라는 프랑스(-0.1%)뿐이었다.

나머지 6개 나라는 한국과 똑같이 떨어졌거나 훨씬 더 떨어졌다. 그러면 한국보다 전망치가 악화된 유로존,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도 20세기 철 지난 사회주의 정책으로 경제가 망한 나라들인가?

OECD 통계도 마찬가지다. 이 통계에서 한국의 전망치는 고작 0.2%포인트 하락했는데,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한국보다 훨씬 나빠졌다. 0.1%포인트 하락한 미국만이 한국보다 나은 편이었고 0.2% 하락한 한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및 일본과 함께 2위권을 형성했다. 이외에 다른 선진국들은 모조리 전망치가 한국보다 더 나빠졌다.

절대적인 수치를 비교하면 한국의 경제전망은 더 빛이 난다. 무디스 분석대상 10개 나라 중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무려 3위다.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유로존 등등 기라성 같은 나라들을 다 제쳤다.

OECD 자료도 마찬가지다. 분석 대상국 중 2019년 한국의 경제성장 전망은 공동 5위였다. 그런데 1위가 인도(7.2%), 2위가 중국(6.2%), 3위가 인도네시아(5.2%)였다. 냉정히 말해 이들은 한국과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5위라는 순위는 4위 오스트레일리아(2.%)에 이어 선진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위치에 해당한다.

이게 나경원 대표 눈에는 “사회주의 정책으로 나라 경제가 망한 지표”처럼 보이나보다. 하지만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이런 지표들은 “세계적인 불황기에 한국이 선진국 중 두 번째로 높은 경제성장이 전망된다”는 칭찬으로 해석돼야 마땅하다.

물론 GDP를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률이 그 나라 민중들의 행복을 장담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IMF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GDP 성장률이 인구 4000만 명 이상 선진국 중 당당 1위다!”라고 기뻐할 일만은 아니긴 하다. GDP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나경원 대표처럼 GDP 숫자를 가지고 온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면 곤란해도 너무 곤란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발 좀 정상적으로 정치를 하라. 한국보다 전망치가 더 떨어진 영국이나 독일에 가서 “너희들도 철 지난 20세기 사회주의 정책으로 나라 망했지?”라고 떠들면 그 나라에서는 미친 놈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런 멘트를 공당의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떠들면 나라의 품격이 뭐가 되겠나?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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