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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훌륭한 음반, 그러나 최고작은 아닌 음반
나윤선 10집 ‘Immersion’
나윤선 10집 ‘Immersion’ⓒHub Music Agency

나윤선은 막강하다. 2001년 첫 음반을 내며 데뷔한 이후 나윤선의 음반은 좋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나윤선은 항상 검투사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휘두르며 진군한다. 나윤선의 목소리는 날이 선 검처럼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세계를 벤다. 빛을 베고 어둠을 베고 시간을 벤다. 장엄하게 칼을 휘둘러 대결하고 끝내 돌파한다. 그 순간은 단절의 시간이 아니다. 나윤선의 음악은 빛과 어둠과 시간과 인간의 세계로 깊이 잠입한다. 잠입하고 껴안으며 초월하는 나윤선의 품은 넓고 옹골차다. 연주자들을 바꾸고 스타일을 바꿔가며 아홉 장의 음반을 내는 동안 나윤선은 자신의 음악 영역을 계속 확장했고, 한결같이 보컬을 벼렸다. 빼어난 재즈 뮤지션이자 보컬리스트임을 보여준 나윤선은 어느새 자신이 하나의 길이 되었다.

그래서 나윤선의 새 음반은 항상 지금 자신이 어디쯤 걷고 있는지 전하는 전언이었다. 수년마다 한 번씩 나윤선은 음반으로 자신의 근황을 전했고, 길의 좌표를 공개했다. 그리고 우리는 음반을 들으며 그 곳으로 향했다. 지난 4월 2일 공개한 열 번째 정규 음반 ‘Immersion’은 나윤선이 2년만에 전한 소식이다. 담금 혹은 몰입이라는 제목은 나윤선이 그동안 들려준 음악 스타일의 총합이며, 이번 음반에서도 변하지 않은 기풍의 적확한 요약이다.

나윤선
나윤선ⓒHub Music Agency

일체감과 깊이로 듣는 이들을 빨아들이는 나윤선의 ‘Immersion’

나윤선은 이번 음반의 수록곡 13곡을 부르는 동안 계속 담그고 몰입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일체감과 깊이로 듣는 이들을 빨아들인다. 이번 음반의 가장 큰 특징은 멜로디 악기를 최소화하고 그 공백을 자신의 목소리로 대체한다는 점이다. 첫 곡 ‘In My Heart’에서부터 나윤선은 자신의 노래 아래 자신의 스캣을 배치하고, 목소리의 공간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동안 거의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출하고 검박한 사운드를 구축한다.

그래서 10집 음반의 세계는 나윤선의 보컬이 주도하고 변주하는 세계다. 나윤선의 직선적인 보컬이 휘두르고 베고 멈추고 반짝이며 만드는 파장의 드라마이다. 두 번째 곡 ‘The Wonder’에서도 멜로디 악기는 보컬 아래 지층으로 숨는다. 리듬 악기마저 최소한의 역할 이상을 하지 않는다. 그 빈 공간을 나윤선의 보컬이 활보한다. 곡의 사이키델릭함을 강화하는 건반의 미니멀한 연주 위에서 나윤선의 보컬은 성큼성큼 뛰고 펄쩍 튀어오른다. 농염하고 탄탄한 보컬은 음악 속의 경이로움을 자신만만하게 표출한다. 보컬의 팽팽한 질감과 드라마틱한 변화는 나윤선이 얼마나 빼어난 보컬인지를 새삼스럽게 보여준다.

동정심이 아니냐고 묻는 리메이크 곡 ‘Isn’t It A Pity’에서도 연주는 간명하고, 보컬은 선연하다. 독백 같은 노랫말을 노래하는 나윤선은 일인극 배우처럼 강한 집중력으로 노래를 끌고 마무리한다. 사랑의 힘을 노래하는 ‘Here Today’에서 나윤선의 보컬은 신비롭고 결기 넘친다. 긴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몰입감으로 나윤선은 최소한의 연주를 목소리로 대체한다. 반면 타이틀 곡 ‘Mystic River’에서 나윤선은 더 많은 악기들을 활용해 인터플레이 하며 노니는 듯한 자유로움으로 나아간다. 드럼과 베이스의 상대역으로 나선 나윤선은 기품 어린 보컬과 힘 넘치는 보컬을 조합해 가장 화려한 드라마를 완성한다. 최근 세상을 떠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의 수록곡 'Sans Toi‘ 역시 최소화한 연주 위에서 나윤선의 보컬은 밀도 높다. 전반적으로 곡의 길이가 짧은 편인데, 곡 자체의 몰입감은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다.

탁월한 완성도를 보여줬지만, 훨씬 많은 기대를 하게 하는 나윤선 10집

한편 마빈 게이의 곡을 리메이크 한 'Mercy Mercy Me'는 담백하고 따뜻한 나윤선의 매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보컬을 겹쳐가며 노래하는 나윤선은 이 곡에서 편안한 안식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민요를 다시 부른 곡 ‘God's Gonna Cut You Down’에서 나윤선은 다시 자신의 맹렬한 보컬로 돌아간다. 타악기 연주의 오래된 리듬이 깔린 ‘God's Gonna Cut You Down’은 다른 뮤지션들이 리메이크 한 버전과 다른 격렬하고 사이키델릭한 나윤선의 카리스마 버전이다. 다정하게 부른 ‘Asturias’이든, 한껏 내지른 ‘I'm Alright’이든, 혹은 경외롭게 부른 ‘Invincible’이나, 애절하게 부른 ‘Hallelujah’까지 나윤선의 보컬은 흠잡을 수 없을만큼 순도 높다. 항상 훌륭한 리메이크의 전범이었던 나윤선의 리메이크는 이번에도 나윤선답고, 자신이 직접 쓴 곡들에서 만들어낸 완성도 역시 탁월하다.

하지만 이 음반 속 나윤선의 보컬은 다른 음반에서 이미 보여주었던 스타일의 재현인 경우가 많다. 특히 7집과 8집의 그림자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뮤지션이 항상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도 강박이거나 억압일 수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나윤선에게는 훨씬 많은 기대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덧붙여서 이번 음반이 재즈 뮤지션 나윤선보다는 싱어송라이터 혹은 보컬리스트 나윤선 쪽에 더 가까운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이는 선택의 영역일 수 있지만, 재즈 뮤지션으로 나윤선이 보여줄 수 있는 사운드가 아직 많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음반이 좋은 음반 이상의 음반임을 부정할 수 없음에도, 나윤선의 최고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견 뮤지션 이상의 뮤지션이 발걸음 옮기기가 이리도 쉽지 않다.

나윤선
나윤선ⓒHub Music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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