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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그리고 연극 ①]김나연 극작가 “여성에게 가해지는 ‘미지의 폭력’ 표현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만난 여성 연극인들은 '미투' 이후 여러 동지들을 만나게 됐고 거기서 힘을 얻었다고 했다. 이러한 여성 연극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궁금해졌다. 1960년대에 비해 여성 작가와 여성 연출가의 수가 늘어났고 다루는 주제의 폭도 확장됐다. 오늘날 여성 연극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풀어내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시리게 아팠던 점에선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바라보고, 뜨겁게 열정적인 점에선 여성과 연극의 가능성을 관찰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나연 극작가
김나연 극작가ⓒ김세운 기자

지난해 1~2월 공연계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 '미투 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공연예술인들은 용기를 내어 폭로와 발언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자발적연대체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연극˙영화계 교수 혹은 중견 배우들의 발뺌과 사과 등이 있었고 재판도 있었다. 관객들은 미투 가해자 공연예술가의 작품을 보지 않겠다는 선언도 했었다. 그랬던 시기에 '여성 폭력'을 소재로 한 연극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바로 김나연 극작가가 쓰고 김형용 연출가가 연출한 연극 '그녀들의 첫날밤'이라는 작품이었다.

연극 '그녀들의 첫날밤'은 2017년도에 써진 뒤 그해 12월 초연 무대를 가졌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미투 운동'에 영향을 받아서 제작된 작품은 아니었다. '미투 운동' 때문이 아니라면 어떤 배경과 계기가 김나연 작가로 하여금 여성 폭력에 대해 쓰게 만들었을지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또한 작품 속엔 '결혼식 전날 예비신랑을 납치한 예비신부의 사연'이 등장하는데, 이 설정으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형태를 어떻게 그리고자 했는지 주목해야 할 점들이 많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16일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김나연 극작가를 만났다.

얼마전 김나연 작가는 이 작품을 새롭게 보완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마무리 했다. 이 작품이 '제2회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다시 관객을 만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2017년과 2018년 상연됐을 때는 '그녀들의 첫날밤'이라는 제목이었지만 올해엔 '코카와 트리스 그리고 노비아의 첫날밤'이라는 제목으로 상연된다. 변한 것은 제목 뿐만이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성 폭력'과 관련한 다양한 사건과 변화들이 일어났고 김 작가의 새로운 고민들이 덧입혀졌다.

김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은 어떤 원대한 배경 때문이 아니었다. 2016년 김 작가가 활동하는 극단에서 마침 작업이 없던 3명의 여자 배우들이 있었고, 김 작가는 이들이 따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해 관련 작품을 찾아봤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여자 3명이 나오는 작품이 거의 없다고 느낀 김나연 작가는 "내가 여자 3명이 나오는 작품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같은 해 김 작가의 눈에 띈 뉴스가 있었다. 성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과 만나는 지인에게 '성범죄자 알림e' 화면을 캡처해 보냈다가 벌금을 물게 된 사람과 관련된 뉴스였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행위는 명예훼손죄에 해당돼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리적으로는 그럴 수 있는데, '만약 그 친구에게 사실을 안 알려줬으면 이 여자는 그 남자랑 사귀다가 결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와 관련해서 어떤 이야기가 있나 찾아봤다. 실제로 학교 친구가 올라와 있다거나 옛날에 알던 아저씨가 올라와 있다는 글들을 봤다. 그런 글들을 보고 이런 일들이 뉴스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굳이 그 사이트에 올라와 있지 않아도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얼굴 뒤에 숨어 있을까 생각했다. 자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의심, 두려움, 이런 걸 써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녀들의 첫날밤'을 쓰게 됐다."

김나연 극작가
김나연 극작가ⓒ김세운 기자

연극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남녀 고정관념과
여성을 향한 '미지의 폭력'

최근 남녀 고정관념에 대한 논의와 성차별·성인지에 대한 토론 등이 다채롭게 이뤄지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보편적인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 드라마와 같은 방송물부터 직장생활과 일상생활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연극 '그녀들의 첫날밤'엔 이러한 보편적인 고정관념이 반영됐다. '집안에 남자가 있어야', '킬러는 보통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등의 대사들이 그런 경우다. 극 중 캐릭터의 말과 행동은 창작자가 바라본 세상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김나연 작가는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공연계에서도 여전히 남녀 고정관념이 존재한다고 했다.

"제가 참여하지 않은 공연을 봐도, 남성의 시각으로 쓰여진 작품을 남성 연출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안에서 비중있는 역할은 남자 배우들이 하는 경우가 많고 여자 배우는 비중이 적거나 주변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캐스팅 할 때 성별 언급 없이 캐릭터의 '직업'만 나와 있을 때, 그 직업만 보고 '이건 당연히 남자 배우가 해야지' 하는 경우도 있다. 형사, 의사, 과학자는 여자를 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잘 안 한다. 요즘 많이 바뀌고 있긴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땐 여전히 남녀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초반부, 이러한 사소한 고정관념을 맞닥뜨린 뒤 작품은 본격적으로 예비신부 노비아가 왜 코카와 트리스를 고용해 예비신랑을 납치하도록 의뢰했는지 이유를 보여준다.

이유는 애인이 속해 있는 단톡방과 관련이 있다. 우연히 예비신랑의 단톡방을 본 노비아는 예비신랑 지인들의 음담패설을 보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음담패설을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노비아는 의심과 공포, 불안감에 빠진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불안과 공포를 키운다.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예비신랑도 나에 대한 음담패설을 했을까?', '예비신랑에게 음담패설에 대해서 물어볼까?', '물어봤는데 음담패설을 했다고 한다면?', '더 나아가 혹시라도 나와 관련된 사진과 영상을 공유했다면?', '그것을 지인이 봤다면?', '곧 결혼식인데 어떡할 것인가?', '결혼을 취소해야 하나?'

사실 노비아는 단톡방에서 지인들의 음담패설은 봤지만, 예비신랑이 음담패설에 수긍·참여 하거나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말들을 보지 못했다. 폭력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어디서 부터 물어봐야 할지도 모호하고 묻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펼쳐질 상황도 까마득하다.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지점들은 바로 이러한 지점들이다.

"극에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실체가 없고 모호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때론 경계가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연인 관계의 경우, 남자가 여자에게 우리의 순간이 소중해서 둘이 볼 수 있도록 영상을 찍어 간직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 것이 폭력이 될 수 있을까. 여자가 꺼려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남자는 '내가 누구 보여줄까봐 그래? 너 나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거 아니냐'며 서운해 할 수 있다. 그러면 여자는 또 정색하고 거절하기 애매해진다. 이런 것들을 폭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로 봐야할 것인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김나연 작가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지점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할 수도 있고 누군가가 이를 악용할 수도 있다"며 "이것이 어떤 식으로 변질될지 모른다는 하나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나연 작가가 여성폭력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던 또 다른 지점은 '미지의 폭력'에 대한 것이었다. '미지의 폭력'이란 단어 그대로 '아직 알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폭력'을 말한다. 이 미지의 폭력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에 대한 부분도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밤에 여자가 집에 가는데 뒤에서 남자가 쫓아온다. 여자는 무섭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자가 자신을 지나쳐서 다른 골목으로 간다. 여기서 직접적인 폭력은 발생하지 않았다. 여자는 다시 자기가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간다. 근데 여자는 불을 켜지 않고 깜깜한 상태에서 한참동안 방 안을 살금살금 다닌다. 그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 내가 집에 들어갈 때 내가 어디 산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고 나를 덮칠 수도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다. 저는 직접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보다 미지의 폭력과 경계가 모호한 폭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게 과하다거나 피해의식이 크다고 말하기 전에 왜 여자들이 이렇게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여성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운 작업
하지만 계속 이야기 되어야...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이 연극이 세우고 있는 '설정'이다. 이 연극은 음담패설이 담긴 단톡방 때문에 예비신랑을 납치한 '설정'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납치 계획을 세운 노비아는 자신이 납치를 하게 된 이유를 킬러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한다. 하지만 노비아의 말들은 개연성이 떨어져 보인다. 일부는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 '개연성이 없다', '남친이 범죄자도 아닌데 저렇게 까지 하는 것은 좀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 아니냐'라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지적은, 여전히 우리가 잘못된 성인지와 고정관념에 젖어 있음을 알려준다. 김나연 작가는 "영화를 보면 납치되는 여자들은 저렇게 많은데 납치 당하는 남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또 여자가 납치될 때는 개연성이 떨어져도 이해가 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진다. 저 여자는 납치됐으니까 성폭력을 당하고 죽겠구나 생각하면서 굳이 설명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연극 장면을 다시 여자가 납치되고 남자가 납치한 상황으로 바꿨을 때 어떻게 될까.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 '개연성이 없다', '여친이 범죄자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라는 질문을 하게 될까. 여자이기 때문에 납치된 것을 또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진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방송이나 매체가 재생산해낸 여성 폭력의 잔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여성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납치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고, 평범한 남자가 아무 이유 없는 이유로 납치되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말이다. 작품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한 조각 편견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저는 차라리 상식을 깨고 납치당하는 사람을 평범한 남자로 넣어보면 어떨까 생각 했다. 남자가 나쁜 사람이라든가 특별한 이유 없이 납치되는 상황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극중 노비아는 예비신랑을 왜 납치했는지 설명하려 하지만 개연성이 떨어진다. 어쩌면 이게 작품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공연계 뿐만이 아니라 문학, 체육, 출판 등 전 장르에서 성폭력과 관련해 아픈 사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끊임없이 연대하고 함께 발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2차 가해를 예의주시 하는 것도 필요하다. 거대한 폭력의 세계에 대한 희곡을 쓰는 일은 연대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2차 가해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 작가 역시 올해 다시 무대에 올리는 시점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다. 오는 6월이면 작품이 올라가지만 "여전히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다"면서 작업이 쉽지 않음을 전했다.

"이번에 작품을 고치면서 생각한 것이 있었다. 저번에 올린 작품들이 결과적으로 너무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괴로움이나 아쉬움이 있었다. 어떤 시선으로 피해자를 바라보고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할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번에 작품을 고쳐 쓰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또한 자칫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어려운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함에도 그런 공연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회 이슈가 사실관계로 드러나는 것과 영화, 소설, 공연에서 재창조되어 이야기 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관련 법안이 통과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연극 '그녀들의 첫날밤'은 '남자가 진짜 성범죄자냐, 아니면 여자가 과도한 것이냐' 식의 이분법적인 논리를 펼치는 것이 아니다. 폭력 아래에 놓인 여성의 모습을 통해서 현 사회의 배경을 역추적 하고, 여전히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남녀 고정관념을 맞닥뜨리게 만든다.

이번 세번째 공연을 통해서 작가가 아쉬웠다는 지점과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깊이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주목된다. 연극 '코카와 트리스 그리고 노비아의 첫날밤'은 오는 6월 20~2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상연된다.

제2회 페미니즘 연극제 공연 날짜와 장소 보러가기(클릭)

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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