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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의 화재와 ‘서방에 의해 저질러진’ 참사들의 무게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나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기도하고 있다. 2019.04.16.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나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기도하고 있다. 2019.04.16.ⓒ뉴시스

편집자주/누군가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고통이 있다’고 외치는 건 예의바른 행동도, 현명한 행동도 아님에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번 노트르담 화재에 고통을 느끼는 서방세계의 주류 사회에 대해 위화감을 느낀다.

미국에서 태어나 공부했고 미국의 진보적 매체인 자코뱅의 부편집자인 벨런 페르난데즈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페르난데즈는 알자지라에 기고한 글에서 근년간 벌어진 ‘비극’들이 노트르담의 화재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공감을 일으키고 있는 현상 그 자체야말로 “비극”이라고 주장한다. 원문은 Notre Dame and the case of misplaced empathy에서 확인할 수 있다.

4월 15일, 파리의 상징적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염에 휩싸였다는 소식이 퍼지자 SNS는 해시태그가 잔뜩 달린 애도의 물결로 넘쳤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전 국민이 휘몰아치는 “감정”에 압도되고 있다고 했고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만큼 강렬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수억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번 사태가 “가슴 아프다”고 트위터에 올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재가 “끔찍한 일”이라며 불길을 잡기 위해 “날아다니는 급수차를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떤가”라는 말을 던졌다.

한편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인류 전체”의 것인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의 “슬픈 광경”과 이를 보며 느끼는 “경악심”을 애통해 했다.

물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억압당하고 카톨릭 교회의 오랜 범죄 역사의 희생자였던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비탄에 빠진 세계

나는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의 붕괴를 애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 노트르담 대성당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다른 세계적 문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훨씬 더 심각한 인간의 비극이 이 정도 수준의 국제적 “비탄”을 거의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불길로 인한 슬픔의 강도는 뭔가 마음에 걸린다.

예를 들어 이스타일이 정기적으로 가자지구를 불태워버릴 때마다, 만인이 느끼는 절망감은 어디에 있는가?

이스라엘이 벌인 2014년의 가자지구 ‘50일 전쟁’ 동안 유엔은 이스라엘 군이 여성 299명과 아이들 551명을 포함해 최소한 2,251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죽였다고 추정했다.

당시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용감하게도 병원을 폭격할 이스라엘의 “권리”를 옹호했다. 하지만 이 객관적으로 “슬픈 광경”을 보면서 느끼는 문자 그대로의 “경악심”에 트위터를 뒤덮는 애도의 물결은 전혀 일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쓰러진 팔레스타인 청년의 시신 옆에 서있다. 군인들에 따르면 이 청년은 이스라엘 군인들을 칼로 찌르려했고, 군인들은 그를 사살했다. 이런 류의 충돌은 웨스트뱅크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쓰러진 팔레스타인 청년의 시신 옆에 서있다. 군인들에 따르면 이 청년은 이스라엘 군인들을 칼로 찌르려했고, 군인들은 그를 사살했다. 이런 류의 충돌은 웨스트뱅크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다.ⓒ신화/뉴시스

2018년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일 년간 가자지구 경계의 평화로운 시위대를 죽이고 불구로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이 260명 이상을 죽이고 거의 3만 명을 다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우디가 이끄는 연합군이 계속 폭격을 퍼붓고 있는 예멘의 상황도 국제적으로 특별히 가슴 아픈 일은 아니다. 미국이 공급한 폭탄으로 인해 학교버스에 타고 있던 40명의 아이들이 무참히 죽였을 때처럼, 예멘이 때때로 관심을 받기는 하지만 사우디의 공격이 2015년에 시작된 이후 8만 5천 명의 아이들이 굶어죽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가 나와도 사람들이 이 때문에 지속적, 그리고 집단적으로 울지는 않았다.

제레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이 영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수출하는 것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정치 잡지 폴리티코에 주장한지 며칠 만인 지난 4월 7일에 사우디 연합군은 학교 하나를 또 공습해서 14명의 아이들을 죽였다. 그 때에도 세계적으로 거의 아무 반응조차 없었다.

‘보다 고귀한 목표’?

SNS에서 사람들이 연대해서 아주 상징적인 건축물, 그러니까 국제적으로 사람들의 의식에 확고히 박혀 있고 수많은 동료들, 특히 여행을 할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회 계층이 방문했던 건축물을 애도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다는 점은 분명하다.

최소한 나같은 미국인으로서는 내 정부가 살해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팔레스타인이나 예멘인들을 어떻게 애도할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그런 건축물을 애통해 하는 것이 훨씬 쉽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번 화재를 두고 “역사를 잃어버릴 때 애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다”라고 침울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오바마가 2016년에 그랬듯 한 국가가 일 년에 26,171개의 폭탄을 세계에 투하할 때 (그것이 그 자체로 역사를 파괴하는 것임이 분명한 것 같아도) 애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 그의 ‘본능’이 아닌가!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이런 글을 트위터에 올려 애도 모드에 들어갔다.
“파리 시민의 심정을 이해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인간이 보다 고귀한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했다”.

한때 이란이라는 국가 “전체를 완전히 초토화”시킬 의지가 있다고 자랑했던 그 힐러리 클린턴이 말이다.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나 화염과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2019.04.16.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나 화염과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2019.04.16.ⓒ뉴시스

뉴욕타임스는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프랑스 문화와 역사를 상징했던 성당이 불길에 휩싸이자 프랑스와 전 세계의 슬픔을 불러일으켰다”고 썼다.

하지만 앞서 넌지시 언급했 듯 프랑스의 “역사”는 그다지 포용적이지 않았다. 프랑스의 역사는 오히려 체계적인 고문과 다른 형태의 야만적인 행동에 기반한 식민지 종주국의 피에 젖은 무모한 행동과 결합돼 있다.

오늘날에도 서방의 식민지적, 제국주의적 유산은 여전히 세계 인구 대부분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방의 식민지적, 제국주의적 유산은 놀랍게도(?) 그렇게 긍정적인 개념인 “인류”의 일부가 되려는 중앙아메리카 출신 난민들의 길을 막거나 아예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우파 정권들이 점점 그들의 존재 자체를 범죄시하려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테말라 아이들이 미국 정부의 구금 시설에서 죽고, 이민자들이 지중해에서 수백 명씩 익사하는 무자비한 파노라마가 현재 펼쳐지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당신의 개인적인 애착 정도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인 현실들이 한 성당의 화재가 불러일으키는 격렬한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더욱 심각한 비극이다.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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