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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 ‘임종헌이 사법농단 문건 작성 지시’ 인정 “거부하면 생활 못해”
28일 오후 구속 후 첫 소환 조사를 받으러 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28일 오후 구속 후 첫 소환 조사를 받으러 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관여한 것으로 지목된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가 관련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에 따랐던 것이라고 법정 증언했다. 그는 임 전 차장의 지시를 거부할 경우 “찍혀서 어려움을 겪는다”며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17일 열린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시 판사는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사법농단 사건 관련 문건들 다수에 대해 이 같이 답변했다.

그는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일제 강제징용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등 재판에 개입하고 상고법원 도입 방안을 살피는 등에 관여한 인물이다.

시 판사는 이 같은 재판거래 과정에 관여한 배경에 대해 검찰 조사 당시 ‘법원행정처 분위기가 워낙 경직된 관료적 성격을 띠어 현실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한 번 거부하면 생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이날 증인 신문에서 검찰이 이를 언급하자 시 판사는 “그런 측면이 있었다”고 자신의 진술에 대해 재차 시인했다.

그는 또 “나상훈 전 법원행정처 기획제2심의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2014년도에 같이 근무할 때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부합하지 못하는 심의관들이 찍혀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걸 봤다는 이야기를 저한테 해줬다”고 밝힌 검찰 조사 당시 진술도 인정했다.

시 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를 거부하게 되면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검찰 질문에 대해 “특정해서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면서도 “행정 업무를 하는 조직이다 보니까 경직돼있다. 작성 지시라고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그는 이날 검찰이 다수 사법농단 문건을 직접 제시하며 “본인이 작성한 문건이 맞느냐”고 묻자 그렇다며 시인했다. 다만 임 전 차장 등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 판사는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에 대해 “취합한 건 제가 맞다”며 “상당부분 완성된 기초자료가 있었고 거기에 대여섯개 사례를 추가하라는 지시를 받고 추가 취합해 완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문건에는 ‘협력 사례’로 국가배상 제한 등 과거사 사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통상임금 사건, KTX 승무원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이 기재됐다.

시 판사는 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사건 재상고심 지연 및 파기환송 방안 등 검토 문건을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작성한 사실도 시인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임 전 차장이 대법 하급심에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이 여럿 있으니 쟁점에 대해 검토해보라는 취지로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대부분의 보고서가 그랬듯 이것도 (임 전 차장이) 문건을 몇 개 주면서 취합 정리해오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임 전 차장이 강제징용 관련 문건 작성을 지시할 당시 건넨 참고자료였던 것으로 확보한 ‘일본 강제징용 배상판결 국가적 부담’, ‘소송 현황 업데이트’ 등을 제시했다. 이는 각각 2013년, 2014년 외교부에서 작성됐다.

시 판사는 문건을 보자마자 “맞다”면서 “저것들을 주면서 종합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요약하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 문건에 대해서도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정확히 말씀드리면 다른 심의관이 작성한 1차 자료를 보완해서 최종적으로 편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문건 지시 상황에 대해 “(상고법원 관련) 법률안이 발의된 이후 법원행정처 예상과 달리 통과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간부진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청와대 반대가 심해 설득방안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런 맥락에서 지시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문건 내용 중 ‘상고법원 도입은 대법원장의 최대 역점 사업이자 사법부 추진 과제’, ‘대법원장 리더십 상실이라는 위기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BH(청와대) 설득이 필요한 시기’ 등을 검찰이 언급하며 “이런 문제의식은 증인이 작성한 것인가”라고 묻자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작성한 것”이라고 답했다.

상고법원 입법 추진과 관련해 청와대 현황을 조사하며 박 전 대통령 측근인 비서실장, 민정수석 등의 성향을 분석한 내용에 대해서도 “실장급 이상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임 전 차장이) 알려주는 대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해 ‘영향력 약화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문건에 적은 데 대해서도 “임 전 차장의 지시”라고 답했다. 당시 사법부는 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 출신이기 때문에 상고법원 입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졌다고 파악했다.

시 판사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개입한 문건에 대해서도 ‘임 전 차장의 지시’라고 밝혔다.

그는 가토 다쓰야 재판 관련 보고서 문건에 대해 “통상의 사건 설명 자료와 달리, ‘허위사실이 명확히 확인된다’는 결론부터 적었다. 이는 청와대가 관심을 가진 사항이다. 본인의 아이디어인가”라는 검찰 질문에 “임 전 차장의 지시였던 걸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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