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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 칼럼]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한반도 비핵화

전쟁처럼 잔혹한 것은 없을 것이다. 전쟁처럼 비참한 것은 없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가담했던 책임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는 지도자들에게 이끌리고 있는 국민만큼 가련한 존재가 또 있을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무기는 약 70만 명의 피폭자, 그 가운데 23만 명이 사망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오전 출근시간이었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자가 대다수였다. 당시에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고통스러운 일상과 언제까지 대물림이 종식되리란 것조차 알 수 없는 유전이라는 극도의 공포에 지배당하고 있다.

당시 전체 피폭자 수의 10%에 해당하는 집단이 조선인이었으며, 이들은 거의 다 식민지배로 인한 강제된 이주민이었다. 생존한 한국인들은 방사능 피폭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아야 살아가기가 유리했기 때문에 침묵이 생존전략으로 구조화되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사자들의 처지에 철저하게 무관심했던 남한 사회였다.

1945년 전체 원폭피해자와 한국인 원폭피해자
1945년 전체 원폭피해자와 한국인 원폭피해자ⓒ필자 제공

지금까지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원자탄이 떨어진 해는 1945년이었지만, 한국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2016년도에 제정되었다니 이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규명되고 있는 것인지, 당사자들의 고통을 감히 헤아릴 길이 없다. 아무런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가 없는 가운데 피폭 공개로 인한 수많은 차별(일상, 결혼 등 모든 삶의 문제에 있어서)은 그들에게 정의를 세우는 일과 진상규명을 하는 일보다 훨씬 두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침묵은 오히려 고립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많은 강대국들은 전쟁 후에 핵무기 피해에 대한 인류적 차원의 반성보다는 원자력 에너지 개발에 따른 자국의 경제성장, 핵무기가 가져다주는 파괴적인 힘과 권력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동시적 과정에서 한국인 피폭자의 고통은 꽤나 철저하게 공적 담론에서 배제되었다.

원폭 피폭자들이 공적 담론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고립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핵폭탄을 투하했던 미국과 제국주의의 원흉 일본, 양국의 진심어린 사죄이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들과 그 2, 3세 문제의 본질은 국제정치의 폭력이며, 그 폭력을 행사한 국가들이 정직하게 대면하고 사죄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단초인 것이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미국 측에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과 조사, 배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미국 측에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과 조사, 배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국민은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것이 누구도 아닌 ‘자신’임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동의할 수 있는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동의할 수 있는 핵무기’ 또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세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앞두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거대한 과제의 매듭을 풀고 있다. 난 여기에서 핵무기로부터 희생당한 한반도 국민들에 대해 미일의 진정어린 사죄가 없이, 한반도 비핵화의 명분이 바로 설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핵폐기를 지향하는 프로세스가 여러 가지로 남북미 간에 의논되고 있다. 나는 여기에 근본적으로 인간 생명의 존엄관을 확립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한국인 원폭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에 그 정의가 바로 세워지고, 생명 존엄관이 한반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때 핵폐기와 한반도 비핵화가 진정한 그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허명석 길벗 한의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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