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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살리겠다” 국회 뛰쳐나간 자유한국당, 정작 ‘골목상권 살리기 법안’은 외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7일 부산 덕포시장 인근에서 ‘국민 속으로’를 외치며 민생투쟁 대장정에 나서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7일 부산 덕포시장 인근에서 ‘국민 속으로’를 외치며 민생투쟁 대장정에 나서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자유한국당이 황교안 대표를 필두로 민생을 살리겠며 장외투쟁에 나섰지만, 정작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법안의 처리는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황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7일부터 25일까지 무려 19일간 전국을 순회하는 '민생 대장정'을 진행할 예정인데, 이 기간 동안 국회에서 할 수 있는 법안 심사에도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결국 "민생"을 외치며 시작한 장외투쟁이 국회는 내버려둔 채 개혁 법안 처리를 발목잡는 꼴이라 제1야당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패스트트랙 대치 과정서
애꿎은 불똥 튄 법안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지난달 9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방복을 입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지난달 9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방복을 입고 있다.ⓒ정의철 기자

8일 기준으로 국회에서 심사를 기다리는 법안은 총 1만3천964건에 이른다. 어느 법안 하나 국민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법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국민적 요구가 높은 법안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이미 전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패스트트랙 대치' 과정에서 불똥이 튀어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던 법안이나 여야 모두 법안 처리 시급성을 인정했음에도 수년째 감감무소식인 경우도 있다. 이 중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대표로 발의했거나 적어도 발의에 동참한 법안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법안이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위한 소방기본법과 소방공무원법 등이다. 강원도 대형 산불을 계기로 소방 업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으면서 소방공무원들의 국가직 전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청원 글은 38만여 명이 동의했을 정도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제동이 걸렸다. 전국민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법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어렵사리 열렸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에 반발하며 국회의 모든 회의를 열 수 없다고 막아섰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 행안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은 "쇼 하고 있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 분초를 다투는 일이냐" 등 국민감정에 반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고교 무상교육을 뒷받침할 법안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정부는 올해 2학기 고등학교 3학년부터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위한 초중등교육법과 지방재정 교육 재정교부금법 등은 국회에서 언제 처리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지난달 24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해당 법안에 대해 심사하려 했으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반발을 이유로 회의에 불참하면서 논의에 진척이 없었다.

소상공인, 택시기사들의 문제 해결 위한
법안들도 해 넘기며 국회 심사 기다리는 중

최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소상공인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소상공인연합회 회원들이 국회를 규탄하며 국회 사진에 던진 숟가락이 놓여있다.
최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소상공인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소상공인연합회 회원들이 국회를 규탄하며 국회 사진에 던진 숟가락이 놓여있다.ⓒ김슬찬 인턴기자

소상공인과 택시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법안들도 하염없이 국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난 2017년 발의된 후 해가 두 번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은 중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대규모 점포 및 준대규모 점포의 입지를 제한하고, 재벌·대기업의 복합쇼핑몰에 대해서는 영업을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소상공인들은 이 법안을 '골목상권 살리기 위한 법안 1호'로 꼽으며 시급히 처리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밖에 논의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자유한국당 박맹우 의원이 "재래전통시장이 어렵고, 소상공인이 어렵다고 해서 시장원리를 벗어나는 정책을 남발하며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발한 뒤 논의가 흐지부지됐다.

택시기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도 마찬가지다.

택시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사납금제를 근절하고, 택시기사들의 월급제를 법률로 명시하도록 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발의됐지만 여전히 처리는 요원하다. 특히 택시 월급제는 카풀 도입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 합의안에도 포함된 사안이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도 힘 보태겠다"
자유한국당도 앞다퉈 발의해놓고
여전히 국회서 잠들고 있는 법안들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위원장과 문체위 소속 의원들이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운동선수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체육계 성폭행 및 폭행 근절을 촉구하고 있다.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위원장과 문체위 소속 의원들이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운동선수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체육계 성폭행 및 폭행 근절을 촉구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역설적으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도 자당의 장외투쟁에 발목을 잡혔다. 특히 전국민적인 공분을 일게 한 일련의 사건 이후 여야 가릴 것 없이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하며 발의한 법안들이 대다수다.

올해 1월 체육계의 폭력 및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여야 의원들은 이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하며 경쟁적으로 법안들을 쏟아냈다. 당시 자유한국당 염동열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가 힘을 모아서 함께 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으나, 법안 처리는커녕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른바 '스포츠미투법'이라고 불리는 국민체육진흥법은 5월 현재까지 12건이 발의됐다. 대개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선수들에게 폭력 및 성폭력을 가한 지도자는 그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발의만 됐을 뿐 지금껏 심사 한 번 이뤄지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양진호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발의된 전기통신사업법 등도 마찬가지다. 이 법안에는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의무화하고, 이를 발견한 경우에는 지체없이 삭제하도록 하는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 역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법을 통과시켜 불법 촬영물 문제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지만, 법안심사소위에 넘어간 뒤로 진전이 없다.

이처럼 특정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법안들은 시간이 갈수록 국민적인 관심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시급히 처리되지 않을 시 장기간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이 계속되면서 이들 법안의 운명도 깜깜해진 상태다.

더 큰 문제는 국회가 언제 다시 가동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8일 여당 신임 원내대표 선출과 맞물려 자연스레 협상 테이블이 새롭게 마련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이 지금과 같이 장외투쟁에 몰두한다면 당분간 국회 정상화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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