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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정태춘의 새 노래
정태춘 40주년 기념 음반 사람들 2019’
정태춘 40주년 기념 음반 사람들 2019’ⓒ정태춘 박은옥 4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박은옥과 정태춘의 새 노래를 들은 지 7년째다. 박은옥과 정태춘은 2012년 10년만의 새 음반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내놓고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2016년 11월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정태춘이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불렀던 모습이 그나마 최근에 많은 이들 앞에 선 모습이었는데, 올해 대대적인 40주년 기념사업에 돌입한 정태춘은 드디어 새 음반을 내놓았다.

정태춘만의 40주년 기념 음반으로 내놓은 새 음반의 제목은 [사람들 2019’]. 음반에는 여덟 곡을 담았다. 그 중 새로 만든 곡은 ‘외연도에서’와 ‘연남, 봄날’ 2곡이다. 타이틀곡 ‘사람들 2019’는 1992년에 만든 ‘사람들’의 가사를 새로 썼다. ‘고향’은 1978년 곡이고, ‘나그네’는 1973년 곡이며, ‘빈 산’은 2001년 곡이다. ‘들 가운데서’는 1984년 곡이고, ‘이런 밤’은 1978년 곡으로 대부분 기존 음반에 수록한 곡을 다시 불렀다.

박은옥과 정태춘
박은옥과 정태춘ⓒ정태춘 박은옥 4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정태춘의 지금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준 음반

다수의 곡들이 1990년대 이전 곡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이 아니다. “늙은 목소리로 젊은 시절의 노래를 불러보라는” 딸의 제안으로 시작한 음반답게 히트곡이 아닌 젊은 시절의 곡들 가운데 정태춘의 마음이 기우는 곡들을 고른 듯한데, 수록곡들은 올해로 예순 다섯을 맞는 정태춘의 지금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워낙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탓에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음반이다. 정태춘의 목소리는 여전히 구수하고, 질박하며, 때로 극적이다. 물론 1980년대의 목소리처럼 힘이 넘치거나 압도적이지 않고, 더 낮아진 톤을 느낄 수 있지만 그래서 더욱 좋은 음반이다. 한 명의 뮤지션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순간을 담은 새로운 노래를 계속 들려준다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지금 한국의 60대 이상 뮤지션 가운데 새로운 노래, 새로운 음반을 발표하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음악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고, 이제는 자신의 최선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좀처럼 새 음반을 내놓지 않는다. 정태춘의 경우는 다르다 해도, 오랜만에 내놓은 음반은 정태춘의 현재 기록이자 근황이라는 점만으로 의미 있다.

그것은 정태춘이 홀로, 그리고 박은옥과 함께 내놓은 음악의 궤적 때문이다. 그들이 음악으로 기록하고 싸우고 발언한 이야기의 가치와 무게 때문이다. 한국적 포크의 전형을 만든 음악의 아름다움과 개성 때문이다. 정태춘은 산업화, 도시화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격동 속에서 소멸해가는 고향을 기록했고, 방랑하고 꿈꾸는 서정을 노래했으며,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을 품었다. 이웃과 마을을 사랑하는 안타까운 시선은 내몰린 이들을 껴안다가 결국 시대의 모순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혁명을 꿈꾸는 선언으로 타올랐던 노래는, 패배의 쓰라림과 환멸까지 노래함으로써 노래의 몫을 다했다. 노래의 유장한 변화는 고스란히 시대의 역사와 맞물렸으며, 한 예술가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불멸의 기록을 완성했다. 정태춘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정직한 예술가이자, 가장 냉정한 예술가이며, 가장 끈질긴 예술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정태춘
정태춘ⓒ정태춘 박은옥 4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35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의외의 감동

이번 40주년 음반에서도 정태춘은 지금 자신을 드러낸다. 그 정태춘은 “이사 온 첫날”, “아침 현관 앞에 사채 업체 명함들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어 기겁하는 정태춘이고, 손녀 서하와 놀다 삐지는 할아버지 정태춘이며, 뉴스를 유심히 보는 정태춘이다.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더 잘 보이는 노년의 정태춘이고, “술은 먹었다, 끊었다”하는 정태춘이다. 그는 새 노래 ‘외연도에서’ 특유의 구수하고 빠른 읊조림으로 변방의 섬 풍경을 훑는다. 그리고 그가 이사 온 동네 연남동의 풍경도 노래로 불렀다. 목소리에 배인 쓸쓸함과 고단함은 어쿠스틱 기타와 아코디언, 드럼 정도의 단출한 편성으로 노년의 정태춘을 도드라지게 한다. 여전히 정겹고 질박하며 고뇌하는 목소리의 질감은 정태춘 음악이 일관되게 표현하고 이어온 한국적 서정의 깊이를 증거한다. 특히 정태춘 스스로 “비극적 서정의 백미”라고 칭한 ‘빈 산’은 정태춘이 얼마나 탁월한 송라이터이자 보컬인지를 가슴 시리게 드러낸다.

그런데 이번 음반에서 의외의 감동은 박은옥과 정태춘의 딸인 뮤지션 정새난슬의 몫이다. 맑고 쓸쓸한 목소리로 정새난슬이 ‘들 가운데서’를 부를 때, 이 노래는 35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의 젊은 노래로 다시 태어난다. 1978년 곡 ‘이런 밤’도 정새난슬과 박은옥이 가세하면서 더욱 부드럽고 울림 깊은 노래로 밀려온다. 슬라이드 기타와 물방울처럼 번지는 피아노 연주가 이어질 때, 세 보컬의 다른 매력은 온전히 지켜진다.

기존의 정규 음반들에 비하면 소품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2019년 정태춘이 오랜만에 띄운 음악 편지에는 정태춘의 형형한 시선과 산문적 진술을 너끈히 완성하는 리얼리스트 정태춘을 확인하기 충분하다. 그러니 그의 시선으로 본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계속 노래해주기를. 정태춘의 노래는 오직 정태춘이 할 수 있을 뿐. 누구도 대체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 노래에는 박은옥의 시선과 목소리도 함께이기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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