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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칼럼] 시험, 시험, 또 시험!

한국을 지칭해온 세간의 말 중에 시험공화국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평생 수험생’,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험’이 언론의 표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공무원 및 공기업 시험에 전념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면서 ‘공시 공화국’이라는 말도 실감나게 들린다.

여기서 시험은 보통 객관식 5지 선다형 또는 진위형 문제를 말한다. 지금도 학교는 물론이고 기업과 공공기관의 입사 및 승진시 이런 유형의 시험이 광범위하게 치러지고 있다. 지필고사 대신에 직무역량을 평가하여 승진시키는 사례도 있으나 여전히 지필시험의 비중이 높다.

성적이 중시되는 환경에서는 시험성적이 곧 학생들의 존재가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 쉽다. 모두에서 무거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안타깝지만, 이 때문에 학업 곧 시험성적이 자살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당연히 학생들의 자해의 원인도 시험에 관련된 강박적인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프에서 보듯이 중고생이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가장 큰 이유가 학업부담으로서 중학생은 응답자의 34%, 고교생은 39.7%가 그렇다고 답했다.

2018 중고생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
2018 중고생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도표 출처: 통계청. 원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

시험이, 수험자에게 높은 부담을 주는 입학, 취업, 승진 등과 같이 생의 진로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경우 ‘고부담 시험(high-stakes tesing)’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즉 고교 수능시험(졸업시험), 성취도평가, 학위 및 직업관련 자격증 시험 등을 말한다. 근래에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고부담 시험으로서 표준화 시험은 학생들의 성적평가와 함께 교사들의 책무성을 묻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했다. 그러나 그 효용성에 대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2019.5.4일자 위키백과 영문판).

우리나라에서 인문계 고교생들이 치르는 시험을 보면, 고3은 5월과 8월을 제외하고 모의고사를 매달 한 번씩 치른다. 1, 2학년은 한 학기에 두 번씩 모의고사를 치른다. 여기에 모든 학년이 한 학기에 두 번씩 교내 정기고사를 본다. 고3의 경우 사설 모의고사 1~2회 더 추가된다. 가히 시험이 일상이다.

2019년 고교생 모의고사 계획
2019년 고교생 모의고사 계획ⓒ서울, 인천, 경기 교육청 및 평가원

정부, 표준화시험(일제고사)의 유혹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하고 있어

우리는 지금껏 문재인 정부에 대해 교원노조를 재합법화시키지 못한 것과 관련하여 정치철학을 의심하면서도, 학교현장에 대해 과도한 경쟁기제를 들이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의 박경미 의원이 2017년 5월에 ‘기초학력보장법안’을 발의했다(관련 기사:2019.4.24일자 여성소비자신문). 이는 현 정부를 미국의 부시 정부와 비교하는 것이 무리지만, 마치 부시 정부의 교육정책 즉 일정기준 이하로 뒤쳐지는 아이가 없도록 하겠다는 NCLB(No Child Left Behind)를 잠시 연상케 한다.

이어서 교육부가 지난 3월 28일 2018년 기초학력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초학력을 보장하기 위해 초1에서 고1까지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기초학력평가를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전북과 광주교육청에 이어 부산시 교육청이 교육부의 기초학력 의무진단(일제고사)에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관련 기사:2019.4.28일자 노컷뉴스).

정부가 기초학력진단을 들고 나온 이유는, 학력보다는 인성과 창의성을 추구하는 진보교육감들의 지역 교육행정, 혁신학교,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 자유학기제 등 일련의 정책들이 국영수 중심의 교과공부를 소홀히 함으로써 교과성적이 전반적으로 뒤쳐져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성적이 낮게 나온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진보교육 정책이 전반적으로 교과성적을 낮춘다는 견해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고 논쟁중인 사안이다.

반면 2020년 대입 수시 선발비중이 77.3%로 역대 최고가 될 것이라는 점은 국영수 위주의 교과학습과 지필고사가 갖는 한계가 보다 뚜렷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설령 진보정권 및 진보교육이 교과성적을 다소간 낮춘다고 해도 그것이 개인 및 국가 교육경쟁력의 상실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접근방법은 달라야 할 것 같다.

일단 시험이 많은 현실에서 시험을 더 추가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초학력평가는 교원단체에서 지적했듯이 난이도가 쉬워 교과성적 최하위권 학생들 몇 명을 재확인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기능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미 교사들은 어느 학생이 기초학력이 떨어지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할 일은 기초학력진단이 아니라 이들 학생들에 대해 학교에서 진정 보충수업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별도의 방과후 수업을 취지대로 살리는 방안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 보조교사 심지어 보조원까지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GDP 대비 교육예산이 아직 국제기준에 못미치는 현실을 감안해서 이를 늘림과 동시에, 학교현장에서 불요불급한 곳에 허비되는 예산을 줄이면 보조원까지 채용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표준화시험, 일제고사 등으로 불리워지는 고부담 시험을 논의하는 이유는, 정부의 기초학력평가제가 이내 고부담 시험으로서의 일제고사로 전환될 것이라는 우려보다는 (이런 우려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이미 고부담 시험이 학교와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 때문이다.

고부담 시험의 성격에 대한 G. 마다우스와 M. 러셀 교수의 견해

먼저 한국의 시험환경을 의식하면서 고부담 시험 관련 저명한 이 두 교수들의 견해를 요약해 본다. 번역문은 따옴표 (‘ ‘)로 표기하기로 한다[출처:George Madaus & Michael Russell (둘 다 보스턴 대학), 고부담 시험의 역설, Journal of education, Vol 190, 2010/2011].

‘우리는 대체로 시험의 기원을 기원전 200년경의 중국에서 찾는다. 이 당시 시험은 정치에 있어서 족벌세력을 물리치고 정사(政事)를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개방한 데서 비롯되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시험은 관료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선호되는 장치였다. 이런 시험이 이제는 어떤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즉 시험이란 개혁을 위한 <만나>인가 아니면 밀가루 속의 바구미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두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두고 있다.ⓒ2019.5.4일 위키백과 영문판

‘만나’(Manna 혹은 Mana)는 40여년 광야의 시련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진 신의 음식이며 이 때 메추라기도 함께 주어졌다. ‘만나’ 곧 신의 음식은 인간에게 생존의 희망적 조건을 의미하지만, 비유컨대 ‘시험’은 어떤가? 시험점수가 학교와 사회생활의 ‘만나’라고 할 수 있을까?

‘시험은 하나의 기술이다. 기술이 지닌 속성에 따라 시험기술도 진화한다. 현대에는 컴퓨터의 도움으로 평가를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 때의 평가는 질적 평가보다는 양적 측정이며 주관성보다 객관성을 우위에 둔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기술은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심대한 역기능도 한다.’

‘기술관료, 기술적 언어,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과제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이 등이 기술적 영역의 하나인 시험을 친숙하고 매력적인 친구처럼 여기도록 만든다. 그러나 시험은 학생, 교사, 학교에게 위험한 적(敵)일 수 있다. 정책적 도구로서 고부담 시험은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가치를 증대시킨다. 즉 공리주의, 경제적 경쟁심리, 기술적 낙관주의, 객관성, 관료적 통제, 책무성, 행정적 편의성, 숫적 정확성, 효율성, 표준화 그리고 획일성(다양성을 무시하고 동조시키는 경향:conformity)이다. 이러한 가치가 고부담 시험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배양된다.’

‘역설적이게도 고부담 시험의 기술은 교사의 판단과 책무성을 감소시킨다. 동시에 수업을 단순 반복시킴으로써 교사의 생활도 단순화시키고 면밀한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시험성적이 공개되면 교사간 및 학교간 비교가 가능해지면서 교사간 신뢰관계는 붕괴된다. 심지어 교사들 사이에서 성적이 낮은 결과를 보이는 동료를 비난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시험성적 공개는 교사들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특히 학생들의 교과능력을 모두 일정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은 획일화된 표준화 시험을 강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학생과 교육에 대한 질적 판단이 불신을 받게 된다. 이는 성적을 유일한 정책판단의 근거로 삼는 관행을 강화시킬 수 있다.’

‘고부담 시험은 (점수화 할 수 없는) 학생들의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외면하게 한다. 일례로 비언어적 소통과 공간 및 시각적 기억에 의존하는 아메리칸 인디언이 수학, 영어단어, 과학적 용어 등 언어를 중시하는 시험문화에서 불리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는가” 보다는 “자신의 앎과 행위의 이유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이며, 이를 교육자들과 정치인들이 알아야 한다.’

‘2001년 4000여명의 시험환경에 놓인 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가 시험성적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시험으로 평가할 수 없는 내용을 다루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그리고 43%가 시험에 나올 법한 범위에서 수업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었으며, 63%가 시중의 사설 참고서나 교육청에서 제작한 자료로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시험대비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제약하면서 수업내용 자체를 축소시킨다. 이는 일종의 낙수효과(trickle down)를 보이는데 여타 과목을 배제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배제되는 과목이 미술, 체육, 외국어, 목공수업과 같은 몸으로 배우는 활동, 직업교육 등이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2006년 학부모 및 교사 전국연합(전미 사친회. PTA)에서 아이들에게 휴식을 돌려주자는 캠페인(a Rescuing Recess)을 벌이기도 했다.’

‘시험위주의 환경은 높은 성적대의 학생들을 과하게 우대하고 교육적 배려가 더 필요한 중하위층 자녀들은 배제시킴으로써 교육적 차별이 일상화된다. 이어서 교사들에 대해서는 성과급으로 차별한다. 이렇게 평가위주의 환경에서는 진정 다양하게 평가하여 교육적으로 다가갈 영역을 소외시킨다. 고부담 시험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평균점 이하의 학생들을 더욱 배제시키기 쉽다.’

‘요컨대 고부담 시험은 부정의 측면이 많다. 교육과정을 좁히고, 시험으로 측정할 수 없는 많은 수업주제들을 배제시킨다. 이는 취학전 및 유치원 교육에도 악영향을 준다. 시험환경은 언제라도 성적조작, 컨닝, 교과 우수학생/낙오학생 차별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학생들을 성적에 집착하도록 만든다. 시험경쟁 환경에서는 낙오학생들에 대해 오히려 보살필 겨를이 없다. 모두 학생들에게 상당한 시험스트레스와 불안을 야기한다.’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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