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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1980년 5월 21일 전두환의 광주 방문, 낱낱이 밝혀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처음 발포한 5월 21일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해 회의를 주재했다는 공개 증언이 나왔다. 증언자는 당시 미 육군 501정보여단 방첩부대 요원이었던 김용장 씨와 당시 계엄군의 지휘소 역할을 했던 505보안부대 수사관 허장환 씨다.

이들에 따르면, 5월 21일 낮 전두환이 광주의 K57 비행단장실에서 특전사령관 정호용, 505보안 부대장과 이재우 등과 회의를 열었고 회의 직후 광주 금남로의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집단발포해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전두환은 그간 학살이 이뤄질 당시 광주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그의 광주 방문이 여전히 흑막에 가려진 발포명령권자 규명의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계엄사령관이자 보안사령관으로 신군부의 수괴인 전두환이 광주에 있었다면, 그가 발포 사실을 몰랐을 수 없다. 아니 전두환 말고는 누구도 발포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정호용 등 수족들과의 회의 직후 발포가 이뤄졌다는 증언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당시 헬기 운항기록 등을 철저히 조사해 전두환의 행적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이번 증언은 다른 중요 내용도 많다. 당시 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앉아 쏴 자세’로 시민을 겨냥해 사격했다는 증언은 자위 차원의 발포였다는 전두환 일당의 거짓말을 반박한 것이다. 허 씨는 “발포명령이 아니라 사살명령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위성 감시 등이 북한과 광주에 집중돼 ‘북한군 600명 침투’는 가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편의대’라는 이름으로 젊은 군인들을 사복을 입혀 시민들 속에 침투시켰다고 폭로했다. 편의대의 임무는 방화, 총격, 장갑차 탈취 등을 직접 벌이거나 유도하는 것이며, 각종 유언비어 확산도 수행했다는 증언이다.

아울러 신군부가 5.18 당시 사망자들을 가매장 했다가 발굴해, 광주 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했고 일부는 바다에 수장했을 것이라는 증언도 사실 가능성이 높아 보여 진상조사를 통한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5.18의 끝나지 않은 진실규명은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진상규명위원에 무자격자를 추천해 진실규명을 지체시키며 방해하고 있다. 39년 전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민을 무차별 학살한 세력과 단절하려면, 다시 민주주의를 짓밟고 권력을 찬탈할 의사가 없다면 진상규명 활동에 이제라도 성실히 응해야 한다. 언제까지 군부 쿠데타, 시민학살을 옹호할 셈인가.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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