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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에서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은 이미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에 있다
서안 지구에서 크게 붐이 일어나고 있는 정착촌 건설 현장. 특히 미국의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정착촌 건설은 크게 확대됐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서안 지구에서의 정착촌 건설을 불법으로 간주한다. 2019.1.1
서안 지구에서 크게 붐이 일어나고 있는 정착촌 건설 현장. 특히 미국의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정착촌 건설은 크게 확대됐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서안 지구에서의 정착촌 건설을 불법으로 간주한다. 2019.1.1ⓒAP/뉴시스

지난 달 선거를 앞두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자신이 재선되면 [국제사회가 불법 점령지로 규정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합병하겠다는 뜻을 발표했을 때 국제사회와 언론은 난리를 쳤다.

하지만 이 점령된 영토에 살고 있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네타냐후의 말에 당황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서안지구의 라말라에 살고 있는 35세의 변호사 와엘 압둘 라힘은 “서안지구가 사실상 이미 병합됐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했다.

그는 그가 살고 있는 마다마 마을이 있는 북부 서안지구에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사용하는 길인 60번 도로의 경찰관으로부터 최근 교통 딱지를 받았던 일을 얘기해줬다.

“나는 벌금을 물기 위해 (서안지구에 있는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인) 베잇엘에 가야 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이 지역을 자기네 땅으로 취급한다. 그러니 나는 네타냐후의 선언에 전혀 충격받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의 일부나 전부를 공식적으로 병합한다면 이스라엘의 대 팔레스타인 정책이 급격하게 강경해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기본권과 자결권이 침식될 것이라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말한다.

하지만 네타냐후의 말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우려는 사실상 지난 수십 년 간 서안지구 병합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하나의 정부’

이스라엘 인권 단체 빗셀렘의 아밋 기루츠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한 1967년부터, 특히 서안지구를 A, B, C 세 구역으로 분할하고 서안지구의 약 60%를 점령한 이스라엘군을 ‘현실’로 인정한 1990년대의 오슬로 협정 이후부터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전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취급하고 사용했다”고 했다.

(오슬로 협정에서는 서안지구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A구역,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군이 공동 관할하는 B구역, 이스라엘군이 단독 관할하는 C구역으로 구분한 후 최종 협상 타결 전까지 현상 변경을 금지했다. 물론 협정은 서안지구가 점진적으로 팔레스타인 관할권 내로 이양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편집자주)

그런데 동예루살렘은 서안지구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50여 년 전 이스라엘이 이 곳을 군사적으로 점령했을 때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에 병합됐다.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정책 네트워크인 알샤바카의 야라 하와리 연구원은 네타냐후의 발언을 둘러싼 국제적인 소동과 현지의 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실제로는 요르단강과 바다 사이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정부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정부”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인 약 30만 명이 사는 서안지구의 C구역에서는 이스라엘군이 자원 관리, 계획과 건설 모두를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건설이나 개발을 C구역의 1% 이하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현재 상황으로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추가적인 건설이나 개발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국제연합은 말한다.

빗셀렘은 “팔레스타인인은 집을 짓거나 지역을 개발할 법적 수단이 아무것도 없어 늘 집이 철거되거나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추방되어 생계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서안 지구의 베두인 거주지에 대한 철거 작전. 이스라엘 경찰이 철거를 반대하는 활동가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떤 건물도 새로 지을 수 없도록 금지하고 동시에 기존의 마을들을 철거해 이들을 특정 지역으로 몰아넣어 왔다. 2018.7.4
서안 지구의 베두인 거주지에 대한 철거 작전. 이스라엘 경찰이 철거를 반대하는 활동가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떤 건물도 새로 지을 수 없도록 금지하고 동시에 기존의 마을들을 철거해 이들을 특정 지역으로 몰아넣어 왔다. 2018.7.4ⓒAP/뉴시스

반면 이스라엘 정권은 현재 60만에 달하는 유대인이 국제법을 어기며 거주하고 있는 서안지구 C구역에 불법 정착촌을 계속 지으며 이를 서로 연결하거나 서안지구와 이스라엘의 경계선인 그린 라인 너머에 있는 마을과 도시들과 연결하는 도로망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있다.

빗셀렘의 기루츠 대변인은 “그린라인이 사실상 지워졌기 때문에 서안지구를 지나는 유대인은 서안지구가 점령지라는 사실조차 잘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그린라인은 유대인 불법 정착자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반면 팔레스타인인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국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C구역에 수십 개의 경찰서를 설치해 구역을 순찰하고 과속이나 안전띠 미착용 등 교통법규를 위반한 팔레스타인인에게 이스라엘 벌금을 물린다.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경찰에게는 서안지구에서 활동할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스라엘의 우파 정치인들은 수년 간 C구역의 공식적 합병을 주장해 왔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단독 관할인 서안지구 A구역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공동 관할인 B구역의 집단 거주지 165개가 C구역 곳곳에 섬처럼 흩어져 있다.

빗셀렘의 기루츠 대변인은 이 집단 거주지들이 “서로 연결돼 있지 못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개발할 자원이 없다.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C구역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이스라엘이 C구역의 자원을 유대인들을 위해 사용하면서 팔레스타인들이 있는 지역의 개발은 불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하와리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현장에서 최대한 많은 땅과 자원을 통제하고 그 땅 위에 최대한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몰아내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기루츠 대변인은 “이 모든 것은 명확하게 예측가능하다”며 “서안지구의 상황은 지난 수십 년간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갔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포고문에 서명한 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연설을 들으며 웃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포고문 서명을 마친 후 서명한 펜을 네타냐후 총리에게 건네면서 “이스라엘 국민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멋진 친구를 둔 적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반겼다. 2019.03.2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포고문에 서명한 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연설을 들으며 웃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포고문 서명을 마친 후 서명한 펜을 네타냐후 총리에게 건네면서 “이스라엘 국민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멋진 친구를 둔 적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반겼다. 2019.03.26.ⓒAP/뉴시스

사실상의 병합에서 공식적인 병합으로

오슬로 협정이 서안지구의 관할권을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다르다. 하와리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의 전지역을 계속 통제하고 있다. 심지어 A구역에서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질서유지 정도만 담당하고 이스라엘이 사실상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와리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이미 서안지구 전체를 통제하고 있지만 병합 이야기가 이스라엘 우파, 특히 “과격한 불법 정착민들”을 부채질하는 격이 됐고 실제로 공식적인 병합이 이뤄진다면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건설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서안지구가 공식적으로 병합되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억압적인 조치들이 가속화된다는 것인데 이는 “천천히 각종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인권단체 예시딘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20대 의회(2015-2019) 임기 동안 서안지구 병합 관련 법안이 60개 발의돼 그중 8개가 통과됐다고 한다.

예시딘은 이것이 “사실상의 병합이 공식적인 병합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의회가 “국제인권법이 규정한대로 군정을 실시하는 것을 넘어 서안지구의 입법권과 주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간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루츠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오슬로 협정에 규정된) ‘점령의 일시성’을 도리어 “서안지구를 수탈해 그 자원을 임의대로 가로채고, 인구통계학적으로 공간을 설계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을 고립된 집단 거주지에 몰아넣는” 핑계로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점령이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일 수 있도록 고안됐다는 건 분명”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기루츠 대변인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스라엘에게 서안지구를 공식적으로 통합하는 것보다 현재의 상황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합법성이라는 허울을 쓴 이 체제는 이스라엘에게 굉장히 효과적이다. 이스라엘은 자국이 민주주의임을 표방하며 민주주의 국가들의 클럽에 끼어 그들이 누리는 모든 특혜를 누리니 말이다.”

팔레스타인인의 정치적 권리?

예시딘은 강화되는 병합 움직임이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의회가 점령지에 있는 수백만 팔레스타인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을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에게는 투표권도, 그리고 이스라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어떤 수단도 없다.

예시딘은 “두 유형의 사람이 그 통제와 주권을 인정하며 이스라엘 정권 아래 살고 있다. 하나는 완전한 권리를 지닌 이스라엘 국민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적 권리를 포함해 어떤 권리도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이라고 꼬집었다.

하와리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전체를 공식적으로 합병할 경우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떻게 될지를 보고 싶다면 동예루살렘을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공식적으로 합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팔레스타인인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고 ‘예루살렘 신분증’을 발급했다. 그나마도 각종 사유로 언제든지 박탈할 수 있다. 1967년 이후 거의 15,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예루살렘 신분증을 박탈당했다.

한편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예루살렘 지방 선거에는 투표할 수 있지만 전국적인 의회 선거에서는 투표권이 없다. 기루츠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아직 서안지구를 공식적으로 합병하지 않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정치적 권리 없이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살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기루츠 대변인은 서안지구의 공식적인 합병이 이뤄지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커질 수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라고 강조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안지구가 합병됐는가 안 됐는가가 아니다.

기루츠 대변인은 “더 중요한 질문은 이미 존재해왔던 합병 상태가 백주대낮에 강화,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왜 이를 막기 위해 더 확실한 조치를 위하지 않았는가이다”라고 못박았다.

기사출처: Has Israel already annexed the West Bank?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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