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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갑질에 멍든 부품사 “진짜 ‘공정경제’ 와야 미래차 보인다”
현대모비스 울산공장.
현대모비스 울산공장.ⓒ현대자동차그룹

한국 자동차산업이 위기에 처했다. 부품사가 무너지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추락하고 갚아야 할 빚은 늘고 있다. 주범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목된다. 현대차는 국내 부품 수요를 독점하고 있다는 배경을 활용해 제왕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부품사를 쥐어짰다. 관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기업과의 거래를 막고서 납품단가를 후려쳤다.

업황이 좋을 때는 부품사도 괜찮았다. 물량이 많으면 단가가 낮아도 살만했다. 그러나 현대차 판매량이 줄면서 부품사가 휘청거리고 있다. 일부는 도산을 면치 못했다. 운영하던 회사가 망해버린 ‘전 사장’들은 “직원 인건비도 제대로 못 주는 형국”이라고 호소한다. 살아있는 업체는 입을 열지 못한다. 현대차 보복이 두려워서다.

내연기관 없이 배터리와 수소연료전기로 달리는 전기차 시대가 오고 있다. 부품사는 대응 여력이 없다. 매년 줄어드는 단가로 연구개발 투자는 쉽지 않다. 내연기관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시장이 아예 사라진다. 제품을 확대하지 않으면 자연고사 할 판이다. 전문가들은 부품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거래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품사 줄도산으로 자동차산업 전체가 위협받게 된다는 경고가 뒤따른다.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고 부품사 단체행동권을 강화하는 대안이 제시된다. 거래조건을 투명하게 하고 부품사 협상력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우수기업에게 공정위 직권조사를 면제해주는 동반성장프로그램을 폐기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대차는 숱한 갑질 의혹 가운데서도 지난해 최우수 등급을 획득했다. 이제는 현대차가 정신 차려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부품사를 쥐어짜면 단기적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순 있지만, 장기적인 품질 경쟁력에서는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속거래에서 비롯된 기울어진 운동장…영업이익 양극화로 이어져

전속거래는 현대차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자동차산업을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고착화됐다. 고질적인 병폐로 이어져온 단가 후려치기도 전속거래에서 시작된다. 전속거래는 부품사가 한 곳 또는 두 곳의 원청사에만 부품을 공급하는 거래 형태를 의미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비계열 하청사 중에서도 장기거래를 유지하면서 매출액 50% 이상이 특정 원청사로 집중된 거래 관계를 전속거래라고 정의한다.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지난해 발간한 ‘자동차 부품산업 국내외 동향 및 경쟁력 분석’을 보면 2017년 기준 1차 하청사는 851곳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1차 하청사 45.9%가 단일 매출처에 의존하며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또한 납품처별로 보면 현대·기아차로부터 나온 매출이 38조 1000억원으로 전체 실적의 81%를 차지한다.

2차 하청사는 약 5000곳, 3차 하청사는 약 3000곳으로 추산되는데, 이들도 한두 곳의 1차 하청사에만 납품하는 전속거래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전속거래 관계에서 하청사 교섭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현대차가 부품 수요를 독점하면서 1차 하청사와의 거래관계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게 된다. 또한 1차 하청사는 2차 하청사 앞에서 갑으로 변모한다.

기울어진 판에서 맺어진 거래는 이익분배 양극화로 이어졌다. 산업연구원 조사 결과 2015년 기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영업이익률은 각각 9.60%, 7.02%, 10.06% 수준인 반면 부품사는 3.06%에 그친다. 유럽 경우 완성차 영업이익률은 7.1%인데, 부품사는 8.0%로 오히려 더 높다. 미국은 완성차와 부품사 모두 8.2%로 동일하다. 중국은 완성차 8.1%, 부품사 7.4%로 격차가 0.7%p 수준에 불과하다.

이익분배 불균형에 대해 산업연구원은 완성차업체가 비계열 부품사를 상대로 강한 교섭력을 행사해 납품단가가 낮아진 결과라고 설명한다. 또한 단가인하 압력을 받는 1차 하청사가 이를 2차 하청사에 전가해 최종적으로는 완성차업체 압력을 2차 하청사가 떠안게 된다고 봤다. 공시의무가 없는 소규모 2·3차 하청사의 경영악화는 수면 위로 드러난 1차 하청사보다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현대차와 하청사 영업이익률 비교표.
현대차와 하청사 영업이익률 비교표.ⓒ박상인 서울대학교 교수

단가 후려친 1차 하청사 “원가절감 차원…우리도 하고 있어”

현대차는 전속거래를 바탕으로 납품단가를 한계수준까지 쥐어짰다. 현대차 2차 하청사는 이른바 약정CR(Cost Reduction, 단가 인하) 탓에 납품단가가 직원 인건비에도 못 미친다고 호소한다. 단가에 하청사 이익률이 반영되지 않아 납품을 할수록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2차 하청사는 대출로 근근이 사업을 유지하다가 종국에는 도산에 이르기까지 한다.

약정CR은 애초 계약 당시 설정한 금액에서 매년 2~3%씩 단가를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하청사가 새로운 부품을 처음 생산할 때는 시행착오 등으로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평단가보다 조금 높게 책정했다가 점차 낮춘다는 게 본래 약정CR 취지다.

그러나 하청사가 사업을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으로 인하율을 높게 책정해 ‘단가 후려치기’로 표현되는 국내 약정CR은 성격이 다르다. 현대차 1차 하청사 세원에 차제 부품을 납품했던 엠케이정공의 주민국 대표는 “하청사가 공정 효율화 등을 통해 원가를 낮추면 원청사가 이를 반영해 단가를 낮춘다”며 “반면, 인건비나 원재료비 상승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도 지난해 10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불공정 하도급 거래 개혁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토요타 경쟁력 핵심 중 하나인 JIT와 CR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외형은 유사할 수 있으나 전속거래 때문에 효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약정CR을 통한 단가 후려치기는 불법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현행 하도급법에 따르면 합의에 의한 약정 납품단가 인하도 정당한 이유 없이 일정한 비율로 단가를 내리면 위법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정위는 약정CR의 위법성을 판단할 때 동일 산업 내 평균을 기준으로 활용하는데, 현대차뿐 아니라 다른 완성차업체도 약정CR을 적용하고 있어 제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약정CR을 통한 하청사 쥐어짜기는 원청사의 철저한 원가관리 하에 이뤄진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한 현대차 2차 하청사 태광공업의 손정우 전 대표는 2009년부터 매년 임직원 급여내역·순이익·고용형태·기본급·연장·특근·기타수당 등 정보를 원청사인 서연이화에 제출했다고 증언했다. 서연이화가 하청사 원가정보를 바탕으로 태광공업에 지급하는 단가를 한계수준으로 맞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어려운 현실을 2·3차 업체에 전가하고 기본적으로 단가가 자동적으로 매년 내려가도록 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김근식 서연이화 대표이사는 원가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또한 원재료 값은 그대로인데 단가를 낮춰서야 되겠느냐는 질의에 대해서는 “1차사인 저희들도 같이 하고 2차사도 같이 하고 있다”며 자신도 현대차에게 당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해명을 내놨다.

고 의원은 “모든 부담이 2·3차 하청사에게 내려가고 있다는 현실이 우리 자동차산업 생태계의 문제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산업에서 횡횡하는 납품단가 관리 행태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지적됐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서치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행위가 가능한 건 대기업 본사가 하청사 원가구조를 파악해 노무비와 적정이윤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라며 “대기업 본사는 현장 실사까지도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2차 하청사 납품단가 적정성까지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속거래에서의 약정CR을 통한 원가경쟁력 확보 전략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한국무역보험공사 보고서에 실린 인터뷰에서 “부품사 경쟁력 저하의 근본원인은 완성차 업계의 과도한 원가절감 위주 사업전략”이라며 “완성차 기업들이 강력한 수직계열화를 통해 전체 공급망의 원가를 과도하게 통제했고, 부품사 공급선도 배타적으로 관리해 사실상 부품기업들의 매출처 다변화가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정 완성차 기업에 대한 높은 종속성과 낮은 수익성 하에서 연구개발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여력이 충분치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의 국무조정실,공정거래위,국가보훈처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의 국무조정실,공정거래위,국가보훈처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양지웅 기자

현대차가 자랑하는 JIS, 실상은 비용 부담 떠넘기기

직서열 방식(JIS, Just In Sequence)은 현대차 생산방식을 규정하는 개념이다. JIS는 부품이 필요할 때마다 하청사로부터 즉시 조달받는 형태이다. 현대차 공장에서 차제 조립이 시작되면 해당 차량의 차종·무게·제동력·사양 등 정보가 1차 하청사에 자동 전달된다. 1차 하청사는 현대차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조립 순서와 상세 스펙에 맞춰 부품을 공급한다.

생산정보는 현대차그룹과 1차 하청사 간 연계된 부품조달 시스템 Vaatz(Value advance automotive trade zone)를 통해 전달된다. 1차 하청사는 당일치를 포함한 2일분의 생산정보로 구성된 일간계획을 전달받는다. 일간계획에는 약 2시간 단위의 세부사양 생산계획이 담긴다.

현대차는 JIS 최대 장점이 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소개한다. 현대모비스는 사보를 통해 “생산 정보를 완성차 라인과 공유하고 생산 공정에 맞는 서열 정보로 부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제품을 별도로 보관할 필요가 없다”며 “재고 부담과 재고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현대차는 재고부품을 1~2일치만 보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금속노조가 200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 평균 부품 재고일 수는 1.65일이다.

JIS는 재고와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어 효과적이지만, 쌓아둔 재고가 충분치 않을 경우 하나의 부품만 제때 공급되지 않아도 모든 생산라인이 멈춘다는 단점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JIS에서 나타날 수 있는 라인중단 위험성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현대모비스는 “JIS 방식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은 있다”며 “생산 공정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둘 중 한쪽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양쪽 다 라인을 멈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차가 JIS를 통해 털어낸 재고관리 부담은 비계열 하청사 몫으로 돌아간다. 현대차는 적기에 투입돼야 할 부품이 공급되지 않으면 하청사에게 분당 45만~1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물린다. 24시간이 늦으면 6억 4800만~1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전속거래로 묶여있는 하청사는 분당 100만원 배상 조건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다.

현대차가 재고량을 1.65일치만 보유해도 공장 생산라인이 멈추지 않는 건, 분당 100만원 배상금이라는 살얼음판 위에서 하청사가 매일 부품을 공급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정재욱 구매본부장은 국정감사에서 “변경된 생산계획 때문에 결품이 될 경우에는 클레임 청구를 하지 않는다”며 “협력업체 귀책 클레임도 100% 부과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공포는 아래로 전가된다. 2차 하청사는 Vaatz 접근권한이 없고, 1차 하청사에게 매일 발주를 받아 납품한다. 현대차에서 시작된 적기납품 압박이 1차 하청사를 거쳐 2차 하청사로 내려온다. 1차 하청사도 재고량을 최소 수준으로 축소하고 결품에 대한 배상금을 적용한다. 결국 2차 하청사는 제품불량과 기계고장에 대비해 1주일~1달치 재고를 떠 앉게 된다. 현대차가 최소화했다고 자랑하는 창고비 등 재고관리 비용은 사라진 게 아니라 전가된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JIS 생산방식 설계자인 현대차는 위험성을 알고 있다. 위험부담을 책임져야 한다”며 “납품지연에 대비해 안전장치는 구축하지 않고 무조건 하청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너지는 부품산업…매출·영업이익 줄고 빚은 늘고

온갖 갑질에 시달리는 부품사 경영실적은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삼정KPMG는 지난해 한국표준산업분류 상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에 해당하는 1277개 업체 재무제표를 분석해 ‘재무비율로 본 자동차산업’을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자동차 부품 매출합계는 72조 6937억원으로 2013년에 비해 4.6% 하락했다. 매출처 별로 보면, 국내 OEM 납품이 2013년 50조 7352억원에서 2017년 47조 2985억원으로 6.7% 떨어졌다. 수출은 소폭 감소하고 A/S는 소폭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2017년에는 전년대비 23.9% 급감했다. 또한 영업이익률은 2013년 3.91%에서 2017년 2.49%로 줄곧 하향선을 그렸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넘어, 단기지급 능력이 악화되는 모습도 보인다. 2013년 유동비율은 109.44%였으나 2017년 91.74%로 100% 미만으로 떨어졌다.

매출채권회전율과 매입채무회전율도 감소하고 있어, 외상·어음의 매입·지급 기간이 길어지는 등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친 자금 경색을 시사하고 있다.

부품사 경영악화를 보여주는 통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IBK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매출액 1000억원 미만 부품사 중 영업이익 적자 비중은 2016년 기준 20.5%이다.

경영이 악화되는 가운데 갚아야 할 빚은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 산업별 대출금(예금취급기관)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및 트레일러 산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 4분기 기준 32조 3516억원이다. 2013년 25조 5000억원 대비 26.9% 증가했다.

금감원이 매년 발표하는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보면 신용공여액 500억원 미만 중소기업 중 C·D등급을 받아 구조조정 대상이 된 자동차 부품사는 2016년 5곳에서 2017년 16곳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13곳이 부실징후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자동차 부품사 영업이익률과 영업이익증가율 추이.
자동차 부품사 영업이익률과 영업이익증가율 추이.ⓒ삼정KPMG

“갑을 문화 청산 안하면 한국 산업 위험해”

자동차산업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전기차 시대가 다가오면서, 전속거래와 JIT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갑질이 한국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위험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전기동력 자율주행자동차산업의 현황 및 전망’에서 “자동차산업은 혁신주도의 구조개편이 가속화되면서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 퇴조와 정보통신기술 기업의 시장진입으로 경쟁 환경이 급변할 전망”이라며 “국내 자동차산업의 현재와 같은 수요독점 및 수직통합적 구조는 중장기적으로 부품 생산기반을 약화시켜 경제성장 기여도를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연구원은 대기업 주도의 ‘갑을 문화’가 혁신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갑을 문화를 청산하지 않으면 국내 자동차산업뿐 아니라 연관 산업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전망”이라며 “자동차산업은 아래로부터의 위기, 즉 2·3차 하청사 경영성과가 악화돼 공급망 전체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기업은 글로벌 소싱을 통해 위기를 단기적으로 회피할 수 있지만, 국내 공급기반 약화는 산업 전체의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부품사는 시장을 잃고 퇴출될 위험에 처했다. 엔진과 동력전달장치, 내연기관용 전기장치는 전기차에서 아예 사라지거나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통계청 2016년 전국사업체조사를 바탕으로 일본자동차부품공업협회의 부품 감소 비중을 적용하면, 엔진부품 1920곳, 동력전달 516곳, 기존 전장품 450곳 등 국내 자동차부품사의 28%인 2886곳 시장을 잃게 된다. 전기차 관련 부품 등으로의 제품 확대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연구개발집약도는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부품사 대응 여력도 미미한 상황이다. IBK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자동차부품산업 연구개발집약도는 0.98%로 국내 산업 평균 3.16%를 크게 밑돈다. 한계수준의 납품단가를 받아 온 부품사가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자동차산업 호황기에는 단가가 낮아도 박리다매로 어느 정도 수익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에, 전속거래 관계에서 안정적인 납품처를 확보한 상황에 안주한 측면도 있다.

표준계약서 의무화·단체행동권 보장 등 대안 제시

자동차산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부품사 경쟁력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거래조건 개선이 부품사 경쟁력 제고의 선결조건이며, 거래투명성을 높이고 부품사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안으로 표준계약서 의무화가 제시된다. 이상호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은 2011년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발표한 논문에서 권고사항인 표준계약서 사용을 50억원 이상 거래 또는 300인 이상 기업 경우 의무화하자고 제안했다.

표준계약서 의무화 제안은 7년이 흘러 다시 제기됐다. 하부영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은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근로기준법에서 노동자 근로계약서를 서면으로 작성토록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준계약서 작성을 권장에서 강제로 개정해 원청사 갑질을 막아야 한다”며 “공정거래법을 편법으로 회피하는 약정 CR은 무효로 하고 불법으로 처벌조항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청사 단체행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 위원장은 “재벌 대기업이나 1차 하청사 갑질 횡포에 맞서 사회적 약자인 2·3차 하청사 파업권을 보장하는 강력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소극적인 대항권(단체교섭권)으로는 현재의 부당한 약정CR과 비용전가 행위를 멈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공정거래법 19조는 공동행위를 통해 거래대금을 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공정위 인가를 받으면 공동행위를 허용한다.

공정위가 보다 적극적으로 원청사를 감독해야 한다는 지직도 제기된다. 산업연구원은 2017년 공정위에게 발주를 받아 작성한 ‘전속거래 현황 및 제도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하도급법 18조 ‘부당한 경영간섭의 금지’와 관련한 심사를 강화할 것으로 제안했다. 연구원은 “국내 하청사 혁신역량 부족과 원청대기업 간 규모의 격차 확대 원인은 원청대기업이 하청사 연구개발 투자와 설비투자를 직간접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하청사 공급선 다변화에 대한 원청대기업의 통제도 경영간섭이며 하청사 매출 증대를 제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에 하도급법 위반을 신고해도 원청사 제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2014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대전·대구·광주·부산·서울의 공정위 사무소와 기업거래정책국에 접수된 신고건수는 7298건으로, 이 중 경고 이상 제재 건수는 547건, 고발은 20건에 불과했다. 비율로 환산하면 경고 이상은 7.49%, 고발은 0.27%에 불과하다.

서치원 변호사는 공정위 신고에 따른 제재가 어려운 이유로 신고업체와 피신고업체 간 법률 대응 능력을 꼽았다. 그는 “신고업체 대다수는 법률 전문가 조력을 받지 못하다가 위기 상황에 닥친 뒤에야 뒤늦게 공정위 신고에 이른다”며 “반면 피신고업체는 사내변호사 또는 법무팀을 통해 하도급법 위반 신고를 대비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피신고업체 계약 담당자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처음부터 낮은 단가의 계약을 체결하되 외형상 상호 합의 하에 체결한 계약 형식을 갖춘다”며 정부 차원에서 부품사를 위한 법률 지원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갑질 기업 면죄부 주는 동반성장프로그램 폐지해야”

공정위가 운영하는 동반성장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1년부터 시행된 해당 제도는 동반성장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동반성장지수에 따라 기업을 5등급으로 나누고 최우수 또는 우수 등급을 받으면 직권조사를 1~2년 면제해준다.

지난해 발표된 ‘2017년도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 현대차와 기아차는 최우수, 현대모비스는 우수 등급을 받았다.

이상협 공정거래회복국민운동본부 사무처장은 “약정CR이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정도로 현대차 하도급 횡포가 심하다는 게 일반적 인식인데도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며 “면제제도가 갑질에 대한 보호막으로 작용하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현대차의 보여주기식 상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 서정헌 상생협력부장은 “다수 대기업이 정작 중요한 거래관계는 그대로 방치한 채 돈만 얼마씩 내놓으면서 홍보효과를 누리는 보여주기식 상생을 취한다”며 “아직도 전속거래에서 발생하는 갑질 문화를 버리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대차도 500억원 상생기금 내놨다”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초 500억원 규모 상생협력기금으로 2·3차 하청사 지원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1000억원 규모 상생펀드를 조성해 저리 대출 지원 사업을 폈다. 단가 후려치기와 비용전가 등 근본문제인 갑질은 개선하지 않은 채, 생색내듯 상생 노력을 내세우는 꼴이다.

서 부장은 “실질적인 인식 변화가 미미하다”며 “중소기업이 제값을 받아 노동자 임금을 올리고 연구개발에 투자해 경제가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단가 후려치기로 단기간 가격 경쟁력으로 이익을 볼 순 있겠지만, 품질 경쟁력이 떨어져 결국 경영악화를 겪는다는 걸 모른다”고 강조했다.

양산차 제조공정.
양산차 제조공정.ⓒ현대자동차그룹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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