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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레드카펫 깔고 장외집회하는 자유한국당의 속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1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당동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대구·경북지역 규탄대회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로 걸어오고 있다. 2019.05.1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1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당동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대구·경북지역 규탄대회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로 걸어오고 있다. 2019.05.11ⓒ뉴시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0일부터 주말마다 장외집회에 나서고 있다. 4월 20일, 27일, 5월 4일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지난 11일엔 대구 도심 두류공원 인근에서 집회를 했다. 자유한국당 측은 매번 집회 때마다 2~3만명에 달하는 당원 및 지지자들이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17일에도 대전에서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자유한국당은 갑자기 왜 국회 밖으로 나와 집회를 할까? 이들에게 장외집회는 익숙한 일이 아니다. 2017년 9월과 10월 김장겸 MBC사장 체포영장 발부,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 선임 등에 반발하며 국회 밖으로 뛰어 나갔지만 두 번 다 일주일도 못 되어서 조용히 복귀한 바 있다.

이들이 최근 집회에서 보여주는 행태를 통해 의도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매번 집회 때마다 대중가요가 흘러나오고, 높은 무대가 선다. 2차 집회 때부터는 레드카펫이 깔린 T자형 무대가 세워졌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돌출 무대를 오가며 연설을 하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소속 의원들도 무대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박수를 받고, 중간 중간 멈춰서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축제 행사를 방불케 한다.

참석자들은 50~70대 남녀들이 주류인데, 이들은 붉은 점퍼를 입거나 붉은 아이템을 착용해 자신이 자유한국당 당원임을 표출했다. 또 손에 '문재인 STOP 국민 심판', '친문 독재 결사 항전', '독재타도 헌법수호' 등이 쓰인 종이 피켓을 들거나, 자신이 속한 당협과 당협위원장 이름이 쓰여진 피켓을 들었다. 그외에 태극기, 성조기 등을 들고 흔들기도 했다. 서울 집회에서는 3~4개 차로를 점거하고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문재인 정권 규탄 3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문재인 정권 규탄 3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뉴시스

집회에서 나오는 주장들은 대동소이하다. 문재인 정부가 좌파 독재를 하며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북과 대화하려는 태도는 물론 탈원전 정책,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임시정부수립일 기념 등을 싸잡아 비판한다. 여야4당이 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상정한 것은 선거법을 고쳐 '좌파 국회'를 만들고 '공수처'를 통해 자유한국당을 탄압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늙고 병들었는데 감옥에 계속 가둬둔다고도 비난한다.

결론도 항상 같다.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내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나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집회에서 대구를 "자유한국당의 베이스캠프"라 부르며, "지난번(총선)엔 아쉽게도 대구경북에서도 약간 이상한 표가 있었다. 내년엔 대구경북서 압승시켜달라. 그것만이 답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이쯤 보면 자유한국당이 집회를 하러 나오는 이유가 감이 잡힌다. 당세를 결집하고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매주 수만명씩 지역별로 당원들을 동원하면 당조직이 정비될 수 밖에 없다. 국회 내에서 의정활동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기 어려우니 거리로 나와 국민 눈앞에서 인원수로 파워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미리 선거운동을 하고, 멀게는 2022년 대선의 자유한국당 후보 중 하나인 황교안 대표를 국민들에게 선보일 셈속으로 보인다.

물론 자유한국당도 집회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누구나에겐 집회 시위의 자유가 있다. 이들이 집권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노동자 농민 시민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억압했을지언정, 한국 사회는 자유한국당에게도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너그러이 생각해 야당이니까 장외에 나와 정부에 대한 비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문재인 정권 규탄 3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문재인 정권 규탄 3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민중의소리

문제는 이들이 연간 1억 5천만원에 육박하는 세비를 받으면서 의정활동을 하지 않고 장외 집회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주말까지 국회를 공전시키고 장외집회를 이어간다면, 약 한 달 간 일을 안 하고 선거운동을 한 셈이다. 세비 받으면서 미리 선거운동을 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제1야당이 손을 놓으면서 국회가 멈춰 산적한 민생법안들이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들이 일을 안 하는 것은 물론, 남들까지 일을 못하게 하는 물귀신 작전이다.

이쯤해서 최근 도심에서 열린 집회들을 생각해 봤다. 주로 돈 없고 빽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해결 안 되는 문제들을 들고 목소리를 내러 나온다.

불법 촬영의 공포와 불법촬영물의 피해에 떨던 여성들이 서울 4호선 혜화역 인근에 마스크를 쓰고 모여서 집회를 했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처참하게 숨진 후, 동년배 청년들과 노동자들이 더이상 일터에서 죽지 않게 해달라며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다. 1386회째 이어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도 마찬가지다. 이제 21명 남은 피해자 할머님들과 학생들, 시민들이 모여 꿈쩍않는 일본 정부에 진심어린 사죄와 배상을 촉구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도권 정치와 기존 제도를 통해 충분히 대표되지 못하고 있기에 거리로 나온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라서 시간을 내고 주머니를 털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통 사람들이 매우 많이 광장에 모여 큰 목소리를 냈을 때에야 세상은 아주 느리게 조금씩 바뀐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1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당동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대구·경북지역 규탄대회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로 걸어오고 있다. 2019.05.11.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1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당동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대구·경북지역 규탄대회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로 걸어오고 있다. 2019.05.11.ⓒ사진 = 뉴시스

반면 자유한국당은 어떤가. 의석수만 114석이다. 국회 모든 상임위원회에 의원들이 있다. 정당 지지율이 34%(리얼미터 5월 2주차 정례여론조사)에 육박한다. 하려고만 하면 여당을 붙들고 어떤 법이든 논의한 후 통과시킬 수 있다. 예결산 심의를 통해 정부 예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본인들의 말대로 민생이 걱정된다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막아야겠다면 국회 문밖이 아니라 국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런데도 광장에 나와서 목소리를 높이며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행진을 하는데 시간을 쓰고 있다. 과연 이 상태를 국민들이 동감할 수 있을까? 자유한국당에 호감이 있는 보수적인 시민이라도 장외투쟁으로 인한 국회 공전이 계속되면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나 원내대표와 황 대표는 2005년 노무현 정권 당시 53일간 이어진 한나라당의 사학법 반대 장외투쟁을 떠올리며 거리를 누비고 있는 것 같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여당의 발목을 잡고 겨울 거리를 누비며 야권의 리더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났다. 같은 결과가 나오리란 법도 없거니와, 해당 전술을 쓴 사람의 말로도 그리 좋지는 못했다. 이 점을 고려할 필요는 없을까?

물론 자유한국당이 장외 집회를 계속했을 때 얻을 분명한 성과가 딱 하나 있어보인다. 대한애국당 및 태극기부대 극우세력과의 공통점, 동류의식이 높아질 것이다. 자유한국당 서울 집회에서는 그간 태극기 집회에서 보이던 각종 단체들의 깃발 상당수가 보였다. 황 대표가 극우세력과의 보수통합을 고려하고 있다면 적절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합리적 보수를 기대하고 있는 국민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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