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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故 이준규 목포서장 사위 윤성식 교수 “경찰,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각”
5.18 당시 계엄군 명령 거부하고 시민안전 지킨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사위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5.18 당시 계엄군 명령 거부하고 시민안전 지킨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사위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김철수 기자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을 앞두고, 민중의소리는 5.18 당시 “지난 과오를 반복할 수 없다”며 신군부의 강제진압 명령을 거부했다가, 쫓겨나고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은 경찰관들에 대한 연속 보도를 준비했습니다.

1) 전두환 신군부는 왜 이준규 서장을 죽였나
2) 故 이준규 서장의 유족 인터뷰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식구들은 여전히 많이 힘들어합니다. 이게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이거든요.”

지난달 26일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사위 윤성식(66)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언론에 소개도 잘 안 됐을 뿐 더러, 故 이준규 서장의 명예회복에 관한 유족의 활동도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서장의 유족들은 그만큼 아픔을 오랫동안 가슴에 묻고 살았다.

올해 초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강제진압 명령을 거부했다가 강제사직 당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숨진 故 안병하 국장의 사연을 취재하던 중, 안 국장의 아들 안호재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침 안호재 씨는 지난해 이 서장 유족들과 연락이 닿은 상태였다. 덕분에 안 씨의 소개로 윤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故 이준규 서장의 시계는 39년 전 1980년 5월에 멈춰 있었다.

전두환 신군부로부터 5.18 민주화운동 당시 목포에서 벌어진 목포민중항쟁을 강제진압하지 않았다며 직무유기 혐의로 파면당한 이준규 서장은, 그해 6월경 가족들과 함께 있는 집에 들이닥친 신원미상의 남성들에게 끌려가 3개월간 고문을 당했다. 그해 8월에 열린 재판에서 혐의가 인정됐고, 이후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 5년을 채 살지 못하고 숨졌다.

이렇게 진실이 가려진 환경 속에서 경찰조직은 故 이준규 서장을 ‘경찰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존재’로 치부했다고 한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시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 서장의 사연은 그렇게 40년 가까이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그만큼 가족들의 슬픔도 컸다.

이는 故 이준규 서장의 사위인 윤성식 교수가 인터뷰에 나선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저는 한발 물러나 있는 입장이니, 아무래도 제가 인터뷰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결혼하기 전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전의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장인어른의 명예회복을 위한 재판을 제가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정보를 파악하게 됐다”며 본인이 인터뷰에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현직에 있었을 때 자료사진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현직에 있었을 때 자료사진ⓒ유족 제공

“매우 강직했던 분”

윤 교수에 따르면, 가족들은 故 이준규 서장을 “매우 강직했던 아버지”로 기억했다. 이는 동료 경찰관들의 진술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지난해 故 이준규 서장에 대한 ‘형벌과 징계에 대한 법적 검토’를 위해 진상조사를 펼쳤던 전남지방경찰청 ‘5.18 민주화운동 관련 전남경찰 역할 진실규명 TF’(이하, TF팀) 관계자는 이달 7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故 이준규 서장은 원칙주의자였던 것 같다. 출장 보고가 올라온 것 등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며 동료 경찰관들의 진술을 전했다.

또 TF팀 관계자는 이 서장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했을 당시 군·경 합동 대책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TF팀 관계자는 “그 험악한 시절, 그는 목포에 주둔 중인 93연대에 가서도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자기 할 말만 하고 나왔다 한다”며, 당시 대책 회의에 함께 배석했던 경찰 정보관의 진술내용을 전했다.

강직한 성품의 그는 뻔히 유혈사태로 번질 거라 예상되는 신군부의 강제진압 명령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며 군부대를 박차고 나왔던 것 아닐까. 어쩌면 이런 그의 성품이 목포 시민들을 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전에 억울함을 토로하셨다”

생전에 故 이준규 서장은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5.18 당시 이 서장이 조치한 일은 철저히 시민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도 목포에선 광주와 같은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군부는 그를 파면·고문했다. 당시 목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만큼이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민중항쟁이 발생한 곳이기에, 그만큼 그의 조치와 결단은 중요했다.

TF팀 조사에 따르면, 당시 이준규 서장은 경찰서 구내방송을 통해 경찰관들에게 절대 시민들과 대치하거나 시민을 향해 발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또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총기에서 노리쇠 등을 분리해 인근 섬인 안좌도와 고하도 등지로 소산시켰다. 이후에도 재야인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유혈사태를 막을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만약 신군부의 명령대로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알리려 목포로 건너온 시민군과 대치하거나, 그 참상을 듣고 목포역 광장으로 모여든 수만 명의 시민을 강제진압하려고 했다면, 목포에서도 유혈사태가 발생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유혈사태가 발생했다면, 이를 명분 삼아 계엄군이 투입됐을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신군부는 황당하게도 그를 ‘외곽저지선 보호 및 자위권 행사 소홀 등 혐의’로 구속·파면시킨다.

계엄군의 논리대로라면, 이 혐의가 적용되어야 할 대상은 계엄군이었다. 21일 광주 시민군이 넘어오는 길목을 터준 건 93연대 계엄군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서장은 93연대 계엄군에 광주 시민군이 진입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계엄군은 이상하게도 목포진입을 허용했다. 광주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모든 길목은 차단하면서도 목포로 가는 국도만은 열어뒀던 것이다.

2017년도 전남지방경찰청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수집 및 활동조사 TF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신군부에 의해 징계를 받은 전남경찰청 지휘부 중 파면을 당한 이는 이준규 서장뿐이다.
2017년도 전남지방경찰청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수집 및 활동조사 TF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신군부에 의해 징계를 받은 전남경찰청 지휘부 중 파면을 당한 이는 이준규 서장뿐이다.ⓒ전남지방경찰청 TF 보고서 갈무리

신군부가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을 죽인 이유

광주를 원천봉쇄 했던 신군부는 왜 목포로 가는 길목을 열어뒀던 걸까. 또 왜 신군부는 유독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에게 가혹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 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전에 장인어른은 표창을 받아야 할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군부에 의해 직위해제 되고, 파면을 당했습니다. 장인어른은 당시 전남경찰의 총 책임자였던 故 안병하 국장보다도 더 미움을 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게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일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언론은 이 문제를 관심 있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신군부의 강제진압 명령을 거부했던 전남경찰 지휘부 중 파면을 당한 경찰은 이준규 서장 한 명이다. 나머지 70명가량의 경찰은 의원면직, 감봉, 견책, 계고, 전환배치 등의 징계를 받았다. 전남경찰 총 책임자였던 故 안병하 국장도 직위해제를 당하고 사직을 종용받았지 파면을 당한 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윤 교수는 “핵심은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을 흔히 목포라고 한다. 당시 목포와 광주를 비롯한 전남 도민들의 김대중에 대한 지지율은 하늘을 찔렀다. 유신헌법 제정에 따라 ‘체육관 선거’가 이루어지기 직전의 대통령 선거만 봐도, 전남지역 중 가장 많은 인구가 많았던 목포·광주의 김대중 득표율은 70%에 육박했다. 또 김대중은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였다.

그런데 신군부는 광주에 계엄군을 투입하기에 앞서 김대중을 학생·노조 시위의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한다. 이는 사실상 전남을 자극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특히 21일 목포는 광주 시민군이 넘어와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전하면서 더욱 크게 궐기했고, “살인마 전두환은 물러가라”와 “김대중을 석방하라”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목포에서의 집회는 광주가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진압된 27일까지도 계속됐다. 투쟁을 이끌던 목포 시민민주투쟁위원회가 집회를 종료한 뒤에도, 학생들이 끝까지 남아 있다가 어떤 이유에선지 해산되면서 항쟁의 막이 내렸다.

“‘계엄군이 끝까지 잔류했던 시위대를 진압하려 출동했었는데, 아무도 없어서 작전이 무산됐다. 그래서 그 책임을 이준규 서장에게 전가했다’는 계엄군 관계자의 진술도 있습니다. 김대중의 내란죄가 성립되려면, 김대중의 고향이고 정치적 기반인 목포에서도 난리가 나야 했던 거죠. 그런데 목포에선 광주처럼 사태가 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군부가 화가 난 것 아닐까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그해 신군부는 수많은 재야인사들을 구속·고문하고 거짓 진술을 받아낸 뒤, 이를 근거로 김대중을 “광주에서의 폭력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며 내란혐의로 기소했다. 그리고 그해 8월 유신헌법에 의거해 장충체육관에서 간접선거 방식으로 단독 출마한 전두환이 대통령이 됐다. 이듬해 김대중에겐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순조롭길 바라지만, 안 될 수도 있다”

유족은 지난해 6월경 故 이준규 서장의 무죄를 구하는 특별재심을 신청했다. 재판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진행 중이며, 3차 의견서까지 접수된 상태다.

윤 교수는 “이게 끝나면, 파면 취소 소송도 해야 하고, 할 게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파면 취소나 순직 등이 순조롭게 되길 바라지만,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에게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인데도, 이 세상이 안 되는 게 너무도 많지 않나?”라고 물었다.

5.18 당시 계엄군 명령 거부하고 시민안전 지킨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사위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5.18 당시 계엄군 명령 거부하고 시민안전 지킨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사위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김철수 기자

“경찰,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각을 갖게 됐다”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혹시 경찰조직에 바라는 게 있나’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흔히 경찰의 임무라고 하면, 시민의 생명과 신체 그리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에서 전남경찰 지휘부는 그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강경 진압 안 한 일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했습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겁니다.”

그는 이같이 지적하며 “지금 경찰은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각을 갖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민갑룡 경찰청장에 대한 지지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민 청장 체제의 경찰은 아주 다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다음 경찰청장이 누가 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다음 청장도 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편, 윤성식 교수는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 일리노이 대학교를 거쳐, 버클리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감사원장 후보로 올랐으나 당시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2004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돼 자치경찰제 도입 등을 주도했다. 현재 검찰의 발전과 개혁을 위한 검찰미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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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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