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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가 버스 사태의 주범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전국 버스노조가 파업을 철회함으로써 고비를 넘기자 예의 그 ‘혈세’ 운운 프레임이 또 등장했다.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포문을 연 기사 제목들은 이렇다.

버스파업 몰리자 두 손 든 정부…시민 주머니 털어 땜질 _ 매일경제
혈세로 버스기사 임금 보전…택시·트럭 등에 나쁜 선례 남겨 _ 한국경제
주 52시간 발 버스대란…후유증 더 키울 혈세 투입 안 된다 _ 문화일보

이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 2004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밀어붙인 서울시 버스 개편 때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이명박 전 시장은 취임 2주년에 기어코 버스 체계를 개편하겠다며 충분한 준비도 없이 준공영제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지금 혈세 낭비라며 유난히 게거품을 무는 한국경제신문, 당시는 어떤 입장을 보였더라?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당시 기사 하나를 소개하자면 2005년 이 신문의 기사 제목은 ‘서울 시내버스 최고 2배 빨라졌다-대중교통 체계 개편 이후’였다.

이명박 전 시장의 버스 준공영제는 취지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준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업적을 위해 취임 2주년에 맞춰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이 문제의 요지였다. 당시 시스템 통합을 담당했던 LG CNS에서조차 “테스트를 위해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묵살하고 일정을 밀어붙였다.

시민들에게 충분한 홍보도 하지 않아 대혼란이 벌어졌다. 당시 새로 도입된 버스는 빨강(R), 파랑(B), 초록(G), 노랑(Y) 등 네 종류였는데 시민들은 이들의 약자인 GRYB를 빗대 “지랄염병”이라고 불렀다. 이는 홍보 없이 정책을 밀어붙인 이명박 식 독단적 행정이 불러일으킨 참사였다.

그러면 묻지 않을 수 없다. 2004년, 차기 보수의 유력 대권 주자 이명박을 물고 빨던 보수 언론들은 그 때 왜 준공영제에 반대하지 않았나? 언론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이명박이 하면 시내버스가 최고 2배 빨라진 기적이고, 현 정부가 하면 혈세 낭비인가? 혈세라도 제대로 내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좀 덜 웃길 텐데,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때 보니 보수언론들은 탈세에 도가 튼 조직이었다.

그들이 주 52시간제를 겨냥한 이유

보수 언론이 유난히 이번 버스 사태에 게거품을 무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그들은 이 파업의 출발이 주 52시간 근무제로 촉발됐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의 시각에 주 52시간제는 단지 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그토록 보호하고자 하는 재벌 기득권의 이해가 걸려있는 문제다.

그런데 마침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대부분 버스 사업자들이 버스 기사들에게 주 5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없게 됐다. 버스 운행을 지금처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버스 기사를 고용해야 한다(연말까지 약 1만 5000명). 인건비 부담을 누가 지느냐의 문제가 이번 파업의 도화선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감안해도 보수언론의 지금 반응은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그들의 태도에 비하면 발악 수준에 가깝다. 사실 이들은 혈세 투입에 별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재벌이고, 이들이 흔들고자 하는 것은 주 52시간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리분별을 제대로 해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때 국민 안전은 반드시 공공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동의했다. 지난 대선 때 모든 후보(홍준표 포함)가 “국민 안전만큼은 최우선으로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대형 참사의 잔상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그렇지 정작 집계를 내보면 대형 참사보다 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 사람의 생애 동안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0.0019%밖에 안 되지만(번개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 도로 교통사고 사망자는 매년 전체 사망자의 1.8%나 된다.

일례로 2001년 9.11 테러 때 두려움에 빠진 미국 국민들이 비행기 대신 자동차를 이동수단으로 선택했지만 당시 미국의 도로 교통사고 사망 확률은 비행기 사고의 그것보다 수백 배나 높았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5200명이었는데 이 역시 항공 사고 사망자의 370배였다.

그렇다면 버스 교통사고는 얼마나 잦을까?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사업용 버스 1만대 당 사고 건수는 874.4건이었다. 무려 11대 중 1대가 교통사고를 낸 셈이다. 버스 교통사고 사망자는 1만대 당 19.9명이었는데 전체 사업용 차량 평균인 5.6명에 비해 3.5배나 높았다.

주 52시간제는 범인이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이게 단순히 버스 운전기사들이 폭력적이어서, 혹은 그들의 운전 실력이 미숙해서 생긴 현상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의 버스 기사들은 대소변과 졸음, 굶주림을 참아가며 하루 최장 18시간의 살벌한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수도권 광역버스
수도권 광역버스ⓒ제공 : 뉴시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의 저자이자 전주에서 5년 째 시내버스를 운전한 노동자 허혁 씨는 그들의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기사들은 새벽 대여섯 시부터 운전석에 앉아 내리 달린다. 저녁이 되면 감각도 둔해지고 온 몸이 결리는 느낌을 수시로 받는다. 식사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배차 시간을 감안해 요령껏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버스는 민중들의 보편적 이동권을 보장할 유력한 교통수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감각이 둔해지고, 온 몸이 결린 채, 굶주림과 졸음에 허덕이는 노동자가 운전하는 버스가 안전한가? 아니면 정부의 지원 아래 하루 8시간 정상적으로 운전하고, 충분히 휴식한 노동자가 모는 버스가 안전한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2017년 버스 교통사고 사망자는 1만대 당 19.9명으로 전체 사업용 차량 평균보다 3.5배나 높았다.

버스 기사들의 주 52시간 노동은 절대 이번 사건의 범인이 아니다. 민중들이야 버스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건 말건, 주 52시간제에 흠집을 내 재벌에 아첨하고 싶은 자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범인일 뿐이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그 자들은 비싼 자동차 타고 다니느라 시내버스 탈 일이 절대 없는 인간들이다.

허혁 씨는 호소한다. “하루 18시간 운행은 기사들에 대한 사회적 학대이며 봉건제적 사회 야만이다”라고 말이다. 우리는 사회적 학대를 당하는 봉건제 시스템의 노동자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노동자들이 운전하는 버스를 탈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일에 사용되는 혈세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국민들의 안전과 편안한 이동권 보장, 혈세는 그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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