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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써니킴과 송영주 여성 음악사를 쓰다
써니 킴, 송영주 ‘Tribute’
써니 킴, 송영주 ‘Tribute’ⓒ유니버설 뮤직

리듬이 느려지면 마음은 침잠한다. 리듬이 빨라지면 마음은 들뜬다. 오래 전부터 그러했고, 앞으로도 똑같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번번이 마음은 음악을 따라간다. 마음이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싶지만, 마음이 이렇게 쉬운 것이어서 다행일지 모르겠다. 마음이 그와 같으니 마음 앞에서 음악은 무력하지 않을 수 있다. 최소한 귀 기울여 듣는 동안만큼은 음악은 마음을 뜻대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송영주와 써니킴의 듀엣 음반 ‘Tribute’를 듣는 첫 번째 방법은 음악을 따라 흘러가는 일이다. 이미 다른 이들이 발표했던 수록곡의 원곡이 누구의 곡인지, 노랫말은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어떤 맥락에서 발표한 곡인지는 잠시 접어두자. 써니 킴의 노래와 송영주의 피아노 연주가 만드는 리듬과 멜로디, 보컬의 톤과 호흡, 피아노의 터치가 빚는 울림과 앙상블에만 귀 기울이자. 아는 이들은 다 알다시피 지금 한국 재즈의 최선두에 선 뮤지션 두 사람이 손잡고 만든 음반이다. 여러 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발표한 음반 대부분 호평 받은 정점의 두 뮤지션은 목소리와 피아노만으로 음반을 채운다. 써니 킴은 노래하고 송영주는 연주한다. 아니, 써니 킴은 목소리를 연주하고 송영주는 피아노를 노래한다.

한국 재즈의 최선두에 선 송영주와 써니킴의 듀엣 음반

첫 곡 ‘York Avenue’에서 송영주의 피아노가 천천히 연주하고 숨을 고를 때, 그리고 써니 킴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천천히 밀려오듯 퍼질 때, 그러다 써니 킴의 목소리가 스캣으로 자유롭게 펼쳐지고, 송영주의 건반이 소리의 뒤와 사이를 따르며 채울 때 음악은 고즈넉하고 여유롭다. 보컬의 부드러운 질감과 피아노의 투명한 울림이 만나고 엇갈리며 서로를 배려해 음악을 듣는 이들은 편안해진다. 써니 킴의 보컬은 깊고 따스하며, 송영주의 피아노 연주는 다정하고 소박하다. 특별히 힘을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아름다움은 두 뮤지션의 이름이 왜 빛나는지 말해준다.

써니 킴이 소리를 높이면 송영주 역시 소리를 높이거나 낮추면서 곡의 드라마를 발전시킨다. 때로는 써니 킴이 앞서고 때로는 송영주가 앞선다. 서로가 서로의 반주가 되고, 즉흥연주의 배경이 된다. 조응하고 엇갈림으로써 재즈다운 자유로움으로 음악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솜씨는 매끄럽다. 계속 고즈넉하지만은 않지만 일상을 침범하거나 범람하지 않을 듯한 농도로 이어지는 음악은 재즈의 초기 빼어났던 보컬리스트들과 피아노 연주자들의 협연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재즈의 고전적인 매력을 환기시킨다.

원곡을 똑같이 재현하지 않고 써니 킴의 스캣으로 재창조할 때 더욱 매력적으로 들리는 노래들은 음반의 제목처럼 제대로 된 헌정을 완성한다. 헌정은 찬사를 퍼붓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헌정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함으로써 제대로 존중하는 일이고, 그 핵심을 충분히 재현하는 일이며, 자신의 재해석을 더하는 일이다. 그 때 헌정은 온전히 헌정답다.

써니 킴
써니 킴ⓒ써니 킴

여성 뮤지션 스스로 평등을 실현하려는 소중한 노력

더더군다나 이 음반의 헌정은 기존의 헌정과 의미가 다르다. 두 여성 뮤지션이 여성 뮤지션에게 띄우는 헌정이기 때문이다. 이 음반의 수록곡은 “모든 곡이 여성 작곡가 또는 작사가가 만든 곡”이다. 그 중에는 써니 킴과 송영주 자신도 있다. 앤 러렐(Ann Ronell), 조니 미첼(Joni Mitchell), 노마 윈스턴(Noma Winston), 페기 리(Peggy Lee)를 비롯한 여성 재즈 뮤지션들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재즈계에서 여성 뮤지션의 수가 늘고,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인지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한국대중음악상의 역대 수상 결과만 봐도 안다. 하지만 오래도록 소수자의 정체성을 강요당했던 한국의 여성 재즈 뮤지션이 자신의 젠더를 음악에 담은 사례는 드물었다. 써니 킴과 송영주의 이번 시도가 최근의 페미니즘 이슈와 무관할 리 없다. 한국 사회에서도 여성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존재였고,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해야 했다. 지금도 구색 맞추기 정도로만 여성에게 조명을 비춰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분명 재즈계에서도 3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여성 보컬리스트, 연주자, 창작자, 기획자들이 재즈의 역사를 함께 썼고, 지금도 쓴다. 음악이 좋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왜 젠더를 따지냐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그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는 비주류, 소수자의 지위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 항상 자신이 기준이 되고, 기본값이었던 남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대화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모든 권력이 남성에게 있는 상황에서는 남성을 특별하게 배려하거나 기릴 필요가 없다.

송영주
송영주ⓒ송영주

그러므로 써니 킴과 송영주의 이번 음반은 오래도록 기울어진 운동장, 기울어진 역사 서술을 직시하고, 여성 뮤지션 스스로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존중함으로써 평등을 실현하려는 소중한 노력이라고 해야 한다. 여성의 상대성과 특수성을 외면하지 않고, 더 이상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진 보편성 속에 여성 뮤지션의 이름을 지워버리지 않으려는 자존과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이렇게 의미 있는 작업을 내놓았으리라. 자신들이 여성 뮤지션이며, 자신 앞에 수많은 여성 뮤지션이 있었음을 밝히는 일, 그들이 자신의 음악에 스며있고, 자신을 이끌어 왔음을 고백하는 일은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이다. 여성이 여성으로 연대하는 일이며, 여성뮤지션의 차이와 공통점을 찾고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이다. 그들의 삶과 음악을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보고 다시 쓰고 다시 들어야 한다고 요청하는 일이다. 연약함과 아름다움이라는 프레임만으로가 아니라 음악의 주체이며, 삶의 주인공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여성 뮤지션의 삶과 음악을 다시 인식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를 써니 킴과 송영주는 음악으로 대신한다. 조니 미첼이 불렀던 ‘A Case of You’를 다시 부르며 “난 두 발로 서 있을거야”라고 다시 노래할 때, 세 명의 여성 뮤지션은 꿋꿋함과 당당함으로 손을 잡는다. 송영주가 쓴 곡 ‘Walk Alone But Not Alone’은 혼자 걸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혼자는 아니라는 존중과 응원과 다짐처럼 느껴진다. 써니 킴이 노랫말을 쓴 ‘Scar’에서 “너는 모든 길을 만들지/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기도 하지”라고 말할 때도 똑같이 힘이 실린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여성 재즈 뮤지션들의 더 많은 호명과 자기 발언이 이어질 필요가 있다. 음악으로 기록하고 고백하고 외치면서 연주하고 노래할 때 음악도 세상과 발을 맞춘다. 그래야 음악의 역사도 평등하게 다시 쓰여질 것이고, 예전과 다른 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밀도가 높은 음반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다소 밀도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음반의 매력과 의미가 묽어지지는 않는다. 이미 나왔어야 했을,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옹골찬 음반.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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