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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당신은 창을 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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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꿔야 하오.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거요?”

굳이 완역본을 읽지 않았더라도 지구 어딘가에 ‘라만차’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쯤은 안다. ‘라만차’는 스페인의 도시며 ‘돈키호테’의 대활약이 펼쳐지는 장소라 알고 있다면. 그의 말 이름이 ‘로시란테’고 당나귀를 타고 함께 다니는 인물은 ‘산초 판사’, 그가 사모하는 여인이 ‘둘시네아’ 라는것 쯤은 꿰고 있을 터. 서양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문학작품이라는 수식어도 있을 정도니 ‘돈키호테’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스페인 중부 고원지대 ‘라만차’는 아랍어로 ‘물이 없다’, ‘건조한 땅’이라는 뜻이다. 풀과 나무가 없는 황량한 고원이 펼쳐지며, 군데군데 전투하기 좋은(?) 풍차가 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누군가 비슷한 시도를 한다면 가능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고 경이로운 수준이다. 유머, 해학, 풍자, 혼돈, 비평, 문학 등등 온갖 부류의 장르가 섞여 어지럽게 돌아간다. 굳이 비유하자면 분류되지 않은 온갖 종류의 빨래가 한데 섞여 돌아가는 통돌이 세탁기처럼.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고, 이성과 광기가 섞여 있으며 무엇이 난지, 꿈인지 상상인지 과거인지 현재인지 의식의 흐름이 복잡하게 얽힌다. 급기야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지 나비가 내 꿈을 꾸는지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억’ 소리가 난다. 온통 비틀어 놓아 무엇이 진짜인지도 모르겠다. 문학작품 ‘돈키호테’의 액자식 구성을 영화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일까. 빼곡한 액자소설의 파편들이 큰 줄기를 이어가는 연출은 놀라움 그 자체다. 스크린에 등장한 ‘돈 키호테’의 실사는 감동을 줄 만큼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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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돈키호테’의 모험만큼이나 사연이 길다. 1989년부터 구상된 영화였으나 제작비와 스태프들의 건강문제, 각종 송사에 휘말리며 여러 차례 곡절을 겪었다. 2000년에 제작된 첫 버전은 홍수로 촬영장이 망가졌고, 하필 촬영장이 나토 공군기지 근처라 제트기 소음으로 촬영이 무산되기도 했다. 잘 나가는 CF 감독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토비’는 애초 ‘돈키호테에 대한 영화를 찍으려 여러번 시도하나 실패한 감독’으로 설정됐다. 근 30년 가까이 영화를 붙들고 기어이 완성한 감독의 ‘광기’도 ‘돈키호테’와 닮았다. 세상에는 열정만으로 안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미치지 않고서는 세상에 도전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창을 대신 들고 스스로 ‘돈 키호테’가 되어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 ‘토비’.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 감독이 영화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면, 과연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환경 좋은 스튜디오에서 CG로 떡칠하자는 제안을 무시하고, 광고를 따오기 위해 스폰서에게 온갖 아양을 떠는. 그것을 조롱하고 환멸을 느끼며 황량한 벌판으로 사라지는 감독을 보면 현실의 ‘돈키호테’ 모습이 보인다.

‘돈키호테’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여기 그 용맹성이 극단에 치닫던 강력한 시골 양반이 누워 있노라. 죽음도 그의 삶을 죽임으로써 승리하지 못한 듯 보이도다. 온 세상 사람들을 얕보았던 그는 온 세상의 허수아비이며 무서운 도깨비였다. 좋은 기회를 맞았던 그의 운명의 평판,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미치지 않고서는, 제정신이면 이런 작품이 나왔을 리 없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홍수에 창을 들고 돌진하는 감독의 패기는 오롯이 ‘돈키호테’와 닮았다.

예술은 스코어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신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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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 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
감독:테리 길리엄
출연:아담 드라이버, 조나단 프라이스, 스텔란 스카스가드, 올가 쿠릴렌코, 조아나 리베이로
시간:133분
등급:12세 이상 관람가
개봉:2019년 5월23일

현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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