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만민보]“월경의 수고로움을 감내한 여성에게”...엄마의 ‘완경’을 축하하는 이유
없음

45세에서 55세. 여성이 평균적으로 갱년기를 겪는 나이. 짧게 스쳐 가는 사람도 있고, 10년을 내내 겪는 사람도 있다.

예은 씨의 엄마는 3번 넘게 하혈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대학생이었던 어느 날, 시험 준비로 무척이나 정신이 없던 때 예은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엄마가 입원했다는 연락이었다. 너무 놀라 학교를 마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하혈로 입원한 엄마는 열흘을 병상에 있었다.

엄마는 병원에 있었고, 가족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바빴다. 시험이니 뭐니 챙겨야 할 게 많았던 대학생 예은 씨도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서 엄마 곁에 있어 줄 수 없었다. 당시 엄마는 열흘을 입원했는데 예은 씨는 딱 하루, 엄마를 간호했다. 열흘 동안 입원한 엄마를 찾아 하룻밤만 곁에 있어 주었다.

완경박스 구성품(팥 찜질팩) 자료사진
완경박스 구성품(팥 찜질팩) 자료사진ⓒ달고리 제공

열흘 뒤 퇴원한 엄마는 괜찮아 보였다. 가족들의 일상도 변함없이 똑같았다. 이제 와 털어놓는 말이지만 “참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예은 씨는 고백했다.

개인적인 계기로 예은 씨가 여성의 월경과 완경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짧았던 엄마의 갱년기가 지나간 후였다. 엄마가 많이 아팠을 때에는 갱년기도, 완경도 잘 몰랐다. 완경이 뭔지, 완경까지의 과정 동안 여성이 겪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큰지 뒤늦게야 알게 됐다.

하루는 예은 씨가 갱년기를 지낸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 엄마는 어땠어?” 엄마는 “괜찮았다”고 답했다. 또 물었다. “정말 괜찮았던 거 맞아?” 엄마는 또 “괜찮았다”고 답했다. 그 뒤로 몇 차례 같은 질문을 했다. 괜찮다는 말은 진심이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차례 캐물으니 엄마는 솔직한 마음을 꺼내어 이야기했다. 괜찮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족들이 “엄마는 괜찮을 거야”, “엄마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넘겼던 그때, 엄마는 홀로 아파하고 있었다.

“예은아 내가 입원한 동안 실은 잠을 하루도 편하게 잔 날이 없었어. 근데 딱 하루, 편하게 잔 날이 있었는데 네가 내 옆에 누워서 같이 잔 그날. 그 하루는 편하게 잔 것 같아.”

엄마의 말은 예은 씨에게 큰 충격이었다. 병원에서 진료도 받고 약도 먹어서 잘 해결된 줄 알았던 엄마의 상태는 사실 괜찮지 않았다.

예은 씨는 “엄마의 몸이 좀 나아졌을 뿐이지, 엄마의 감정은 하나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늦었지만, 내가 엄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엄마를 위한 선물을 찾아봤다”고 말했다.

‘기억 엽서’
‘기억 엽서’ⓒ달고리 제공

‘폐경’이 아닌 ‘완경’, 원숙한 여성으로서 엄마의 인생 2막을 축하하기 위해

15일, 경기도 시흥시 경기청년협업마을에서 스타트업 ‘달고리’ 대표 권예은(28) 씨를 만났다. 예은 씨는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완경박스를 판매하고 있다.

예은 씨는 완경(完經)의 의미에 대해 “월경이 완성됐다는 의미로 폐경(閉經)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순화시킨 단어이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끝난 게 아니라 원숙한 여성으로서 삶이 시작됨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월경이 없어진다’는 부정적 어감의 폐경은 단어 자체만으로 우울감을 띤다. 미숙한 청소년기의 초경은 ‘초경 파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축하받고 격려받는 일이었다. ‘진짜 어른이 됐다’는 의미도 녹아있었다.

예은 씨는 생각했다. “월경의 시작처럼, 월경의 완성도 축하받을 수 없을까?” 그래서 ‘완경’을 알리자고 다짐했다. 인생의 원숙기에 도달한 것, 더 높은 곳에서 인생의 2막을 시작하게 된 것은 마땅히 축하하고 응원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완경박스 제작을 생각하게 된 건 늦게나마 엄마의 ‘완경’을 위한 선물을 찾아보자고 나섰던 때였다. 예은 씨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게 건강기능 식품이다. 갱년기 여성에게 특화된 제품, 중장년층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식품이 주로 완경 여성을 위해 판매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신체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간호가 된 상태에서 이런 기능 식품을 사는 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치유해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적합한 선물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 결심했다. 그렇게 생각한 게 ‘완경박스’이다”라고 밝혔다.

예은 씨가 제작한 완경박스에는 ‘여성의 완경을 축하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완경을 기념하는 뱃지, 팥 찜질팩, 스카프, 소책자, 족욕제, 꽃향기 방향제, 설명서, 엽서 등을 넣었다. 하나하나 모두 의미가 깊다.

완경박스
완경박스ⓒ달고리 제공

손을 맞잡고 있는 모양의 상자를 열면 마음을 전하는 문구가 가득하다.

위로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외로움, 끝나지 않은 끝, 무기력, 무관심을요.
감사하고 싶습니다. 이제껏 월경의 수고로움을 감내한 당신에게요.
응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당신의 하루하루를요.

소책자에는 심한 감정 기복을 겪고 있을 갱년기 여성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메시지를 담았다. 완경박스를 전하는 이가 받는 이에게 하고픈 말을 남길 수 있는 편지지도 숨겨놓았다. 소책자의 가장 마지막 장에는 이미 완경을 마친 여성이 완경박스를 선물 받는 여성에게 보내는 응원 문구가 기록돼 있다.

처음 갱년기가 시작됐을 때 애증을 느꼈습니다. 월경을 할 때는 그렇게나 귀찮고 번거롭더니, 막상 끝이 나니 수많은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죠. 이제는 희미해진, 불안했던 초경의 기억이 지금과 같았을까요? 훗날 지금의 완경을 돌이켜보았을 때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했노라고, 내 월경을 멋지게 완성시켰다고 말하겠습니다. 나부터 나를 응원합니다. 바로 당신처럼요.

설명서의 글자 크기도 받는 이를 고려했다. 갱년기 여성이 안구건조증에 특히 취약한 만큼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팥 찜질팩을 제작했다. 방향제는 완경박스 안에서 향기를 머금고 있다가 박스 주변에서부터 향기가 맴돌게 하는 역할을 한다.

선물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도 신경을 기울였다. 예은 씨는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는 말이 있듯,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자녀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웃어 보였다. ‘마음을 선물하는 당신을 위한 설명서’가 완경박스 안에 함께 들어있는 이유다.

예은 씨는 완경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마라톤 풀코스는 42.195km다. 여성의 완경이행기는 평균 45세에 시작된다. 1년을 1km로 가정했을 때, 마라톤 완주보다 더 긴 장정을 해낸 이들이 ‘완경 여성’이다.”

‘달고리’ 대표 권예은 씨
‘달고리’ 대표 권예은 씨ⓒ달고리 제공

“단어 갖고 장난치냐”...‘완경’에 반감 갖는 사회에서 더 완벽한 ‘완경박스’를 만들기

주식회사를 설립해 정식 창업한 것은 지난해 5월, 그 전에 상품으로서 첫 완경박스를 완성하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지난 2017년 경기청년협업마을에서 진행한 창업경진대회 SSM(Super Social-venture Make)에 참여해 1등의 성과를 거둔 것을 기점으로 당시 받은 씨드머니를 통해 아이템 구체화에 돌입했다.

예은 씨는 당시 완경 여성을 위한 제품으로 박스를 채우는 과정에 몰두했다. 깊은 고민에 빠졌던 시간들이었다. 그는 “어머니들을 많이 만나러 다녔다. ‘갱년기 때 가장 갖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지’, ‘어떤 응원을 받고 싶은지’ 직접 여쭤보고 박람회에 가서 설문 조사도 했다. 아무리 익숙한 상품이라 해도 완경과 스토리가 있어야 했고, 제 나름의 기준을 잡다 보니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 같다”고 떠올렸다.

박스를 구성하고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하기 전, 2017년에 처음 크라우드펀딩을 했다. 1차 때는 목표금액(200만 원)의 376%(752만 원)를, 2차 때는 1537%(3073만 원)를 달성했다. 많은 이들이 ‘완경박스’를 좋아해 주었다. 예은 씨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은 씨가 스타트업 대표가 된 지 이제 딱 1년이 됐다. 차근차근 성장 과정을 밟고 있는 ‘달고리’는 지난해 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예은 씨는 지난 몇 달간 공들여 완경박스를 리뉴얼했다. “이전에는 차 종류의 구성품이 많았는데, 차가 몸에는 좋을지 몰라도 ‘먹고 나면 사라져버린다’, ‘잊혀지기 쉽다’ 등 소모품에 대한 피드백이 있었다. 차처럼 똑같이 마음을 위로해주지만, 좀 더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없을까 고민했다.”

리뉴얼하면서 3개월간 제품 판매를 아예 중단했다고 한다. 예은 씨는 “수입이 없는 걸 감수하며 더 깊게 상품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완경박스’는 한층 더 성장했다. 이전보다 더 따뜻해졌고 섬세해졌다. 사회적기업과 협업도 진행했고, 갱년기를 겪은 여성에게 일부 제품의 제작도 의뢰했다.

완경박스 구매 대상으로 고객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완두콩(완경, 두 번째 인생 시작, 콩그레츄레이션) 파티를 진행했다. 완경박스를 구매한 고객과 선물 받은 고객을 초대해 완경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파티룸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고, 그림을 그리는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했다. 갱년기 여성, 완경 여성에 대해 서로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속 깊은 이야기가 오갔고, 서로는 눈물과 웃음을 주고받았다. 첫 번째 완두콩 파티는 대성공이었다.

‘달고리’ 대표 권예은 씨
‘달고리’ 대표 권예은 씨ⓒ달고리 제공

‘완경’이라는 단어의 변화뿐만 아니라 문화의 변화도 필요했다. 대부분의 여성이 엄마라는 역할을 짊어졌을 때 완경을 겪는다. 매일을 한 가정의 엄마로 지내고 있을 때, 완경도 ‘엄마니까 잘 이겨내겠지’라는 생각으로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린다.

예은 씨는 “갱년기를 제2의 사춘기라고 말하는데, 그만큼 정신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기이다.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에게 관심을 덜 받는 시기가 되곤 했다”며 “완경을 통해 갱년기의 여성은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인생의 전환점을 축하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예은 씨의 ‘완경’ 프로젝트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단어 갖고 장난치냐”는 비난도 잦았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젊은 여성이 어떻게 갱년기를 이해할 수 있겠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스타트업 관련 경진대회에서 상품을 설명할 때 “저는 남자라 잘 모르겠다”며 운을 떼는 심사위원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예은 씨는 “모두 뛰어넘고, 이겨내야 할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완경박스 상품은 주로 온라인에서 판매하지만 오프라인 팝업스토어에서도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예은 씨는 다양한 플랫폼을 찾아 완경과 완경박스를 알리고 있다. 예은 씨는 오프라인 스토어에서 종종 청소년인 남성 고객들이 찾아와 완경에 대해 궁금해하고, 완경박스를 구매해가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끝으로 예은 씨는 “완경박스에서 강조하는 단어가 위로·감사·응원이다. 완경은 축하할 일, 응원받을 일이라는 문화가 대중성을 갖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 과정에서 저는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를 주는 상품을 제작하고, 기쁨을 나누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도희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