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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까지 허용할까? ‘주수 논쟁’ 그만…“임신중지 처벌 아닌 보장해야”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인공임신중절 이른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자 기뻐하고 있다.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인공임신중절 이른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자 기뻐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현행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 향후 법 개정을 앞두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이른바 허용 주 수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주 수 논쟁은 기본적으로 임신 중지를 처벌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라며 “처벌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안전한 임신 중지를 최대한 보장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3일 한국젠더법학회 주체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한국 사회의 과제’ 긴급좌담회가 열렸다.

헌재 결정, 임신 중지 여전히 처벌 대상으로 봐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낙태죄 관련 헌재 결정에 대해 “임신한 여성과 태아를 대립적 존재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존재로 봤다”라는 점에 높이 평가했지만, “여전히 임신 중지에 대한 처벌 필요성을 전제하는 한계를 갖는다”라고 말했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위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있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위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있다.ⓒ김철수 기자

태아의 생명권 침해를 중심으로 한 처벌 쟁점에서 헌재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헌법불합치 의견에서 재판관들은 태아가 독자적인 생존능력을 갖추기 전인 임신 22주 내외까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순위헌 의견은 태아가 생명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임신 초기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완전하게 보장돼야 한다고 봤다.

제이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장은 현행법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법적 공백을 우려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헌재 판단에 대해 “어떤 여성도 처벌법이 무효가 됐다고 해서 안 해도 되는 임신 중지를 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임신 중지에 대한 처벌을 기본값으로 둔 채 허용조건을 넓히는 방안은 조건 밖의 임신 중지를 막지도 못하고, 여성의 기본권을 박탈하며 그의 삶을 의료적·법적 사각지대로 내몰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처벌법 존치는 결국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국가 통제권의 유지”라고 말했다.

허용 주 수 논란? 임신 중지 ‘막아야 할 일’로 보기 때문

처벌 중심적 관점이 전제된 헌재의 결정으로 인해 법 개정 논의 방향이 여성의 낙태죄 처벌을 면책하기 위한 특정한 사유나 기간을 설정하거나, 상담 의무 및 숙려기간을 어떻게 둘 것인가에 한정됐다는 지적이 잇달아 제기됐다.

임신 중지 허용 주 수, 사회경제적 사유, 숙려기간 의무제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것에 대해 제이 팀장은 “애초에 임신 중지를 막아야 할 일로 상정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인공임신중절 이른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자 기뻐하고 있다.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인공임신중절 이른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자 기뻐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그러면서 “국가는 안전한 임신 중지를 최대한 보장하고, 고위험 임신 중지 및 비계획 임신 자체를 줄이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며 “피임·임신·임시중지·출산·양육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을 국가가 어떻게 지지할 것인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진행된 보건사회연구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 중지 경험 여성 중 95.3%가 12주 이내에 중절 수술을 받았다”라며 “이는 주 수를 제한할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주 수 제한의 필요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임신 후기에 임신을 중지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을 유지해 실질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4~5%에 해당하는 여성들의 삶의 맥락을 살펴 국가가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임신 중지 관련 정책의 기본 원칙은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여성의 건강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2019.04.11.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2019.04.11.ⓒ뉴시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신 중지는 의료서비스 중 하나로 접근해야 한다”라며 “낙태한 여성과 시술자에 대한 형사 책임을 부과하는 처벌 규정은 의료서비스 접근에 대한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어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임신 중지는 의료서비스이기 때문에 호주·벨기에 등 새롭게 입법 추진하는 국가들은 보건법 또는 의료법 체계 내에서 임신 중지 관련 특별법 규정을 마련하는 등 방식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장 부연구위원은 설명했다.

임신 중지는 의료서비스 중 하나
임신 중지 허용 기한 법적 설정 우려돼

임신중지 허용 기한을 법적으로 설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장 부연구위원은 “태아의 생존능력을 추정하는 기간, 임신 중지가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기간을 법적으로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선 신중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의학적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으나. 엄격한 제한을 두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태아의 성장을 고려한 임신 중기 내지 후기의 기준은 사례별로 의료인의 판단 영역으로 둘 필요가 있다”라며 “법률상 기간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임신 후기 낙태의 경우 의료인 또는 위원회가 개별사례를 판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임신 중지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장 부연구위원은 “헌재 결정에 따르면 임신으로 인한 출산과 양육은 여성의 삶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성이 결정 주체가 돼야 한다”라며 “다만 여성이 이러한 결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 및 정보 제공이 가능한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임신 중기 이상일 때 의료인의 판단을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이때 의료인의 판단은 여성의 판단을 존중하되, 여성의 건강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함께 상의하고 의논하는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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