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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39주년’...가해자 변명과 시선을 담다, 연극 ‘낯선 사람’
연극 ‘낯선 사람’
연극 ‘낯선 사람’ⓒ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최윤정

세계의 역사적 사건 속엔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한국 역사를 관통한 굵직한 사건을 바라봐도 마찬가지다. 권력과 돈, 혹은 전쟁 때문에 피해자를 학살한 가해자들이 존재한다. 특히 올해는 광주항쟁 39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가해자와 가담자 처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18 광주항쟁 기념일에 맞춰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임형진 연출가는 연극 ‘낯선 사람’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지난해 7월에도 ‘낯선 사람’이 상연됐는데 그때와 달리 이번 ‘낯선 사람’은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지난해 무대가 가해자 속의 피해자, 피해자 속의 가해자를 교차시켜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낯설음과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면 이번 작품은 가해자 시선을 밀도 높게 담는다. 수많은 중국인을 학살한 울리히의 시선에서 광주에 간 적도 없고 발포 명령도 없었다는 가해자들의 변명이 느껴진다.

물론 작품에선 광주 항쟁에 대한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군대와 총칼을 앞세워 광주에 상처를 낸 가해자의 말투가 슬쩍 스칠 뿐이다. 하지만 연극 ‘낯선 사람’은 가해자가 분명히 존재하는 광주 항쟁을 관통하고 있으며, 이 세상 모든 가해자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지난해 7월 무대와 달리 이번 ‘낯선 사람’이 주는 공포는 가해자의 변명이 그럴듯한 ‘개연성’을 입고 인간다운 ‘연민’에 호소하며 관객을 홀리게 만드는 점에 있었다. 울리히가 명백한 살인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을 전제한 뒤 무대를 바라봄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변명을 흡수해 버릴 뻔하게 되는 매우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연극은 불쾌한 경험 후 관객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는다. 가해자는 가해자일 뿐이다. 그는 변명을 늘어놓는 살인자일 뿐이다.

가해자를 표현하려고 하면 가해자를 표현하기 어렵다. 사람을 표현하려고 해야 가해자가 느껴진다. 울리히가 그랬다. 가해자 시선의 다양한 결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선에 눌러앉을지, 아니면 불쾌함을 느끼고 빠져나올지, 관객의 느낌과 판단에 달려 있다.

특히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다. 한윤춘 배우는 젊은 울리히와 노년의 울리히를 정신없이 오가며 오직 연기의 힘으로만 가해자 울리히의 연대기를 그려냈다. 울리히의 학살에서 살아난 천샤오보 역할을 맡은 문경희 배우는 짧은 출연 분량이었지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두 번째로 바넷사-린을 연기한 오다애 배우의 한층 깊어진 연기를 만날 수 있으며 여기에 영화와 공연 부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김대흥이 함께 호흡을 맞췄다.

작품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배우의 노래, 피아노 연주의 등·퇴장으로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하거나 극에 대한 과도한 몰입을 막아주고 있다. 무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리한 구조물로서 역할 하며 여기에 미학적인 분위기까지 더했다. 이러한 장치적인 부분은 지난해 7월경 무대와 비슷했다.

연극 ‘낯선 사람’은 아르투어 슈니츨러 작가의 미완성 소설 ‘의화단운동(Boxeraufstand)’을 모티브로 했다. 공연은 5월 19일까지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에서 볼 수 있다.

연극 ‘낯선 사람’
연극 ‘낯선 사람’ⓒ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최윤정
연극 ‘낯선 사람’
연극 ‘낯선 사람’ⓒ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최윤정
연극 ‘낯선 사람’
연극 ‘낯선 사람’ⓒ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최윤정

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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