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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남경찰청장 “‘5·18 진압거부’ 故 이준규 서장 징계 부당, 법원에 의견 제출” 공식 확인
최관호 전남지방경찰청장
최관호 전남지방경찰청장ⓒ전남지방경찰청 제공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을 앞두고, 민중의소리는 5.18 당시 “지난 과오를 반복할 수 없다”며 신군부의 강제진압 명령을 거부했다가, 쫓겨나고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은 경찰관들에 대한 연속 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기사는 ‘5.18 또 다른 역사’ 기획의 마지막 편입니다.

1) 전두환 신군부는 왜 이준규 서장을 죽였나
2) 故 이준규 서장의 유족 인터뷰
3) ‘5.18 민주경찰’이 지워진 경찰의 지난 30여년 역사
4) 최관호 전남경찰청장 인터뷰

전남지방경찰청(이하, 전남경찰청)이 故 안병하 치안감과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명예회복을 위한 진상조사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부당하게 징계를 받은 경찰관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관호 전남경찰청장은 16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제진압 명령을 거부했다가 징계를 받은 경찰관들에 대해 “부당함을 밝히고 유공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전남경찰청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제진압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강제사직, 파면, 고문을 당한 故 안병하 치안감(당시, 전남도경국장)과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에 대해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2017년 전남경찰청은 TF팀을 꾸려 5개월 동안 故 안병하 국장을 중심으로 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어 지난해 5월 경찰청장의 지시로 전남경찰청은 다시 5.18 관련 전담TF를 구성해 부당하고 억울한 징계를 받은 경찰관에 대한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1월 초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에 대한 형벌과 징계는 부당하다’는 조사 결과를 도출했다. 최 청장은 “이 내용을 법원에 전남경찰청 공식의견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이유로 징계·계고·전환배치를 받은 60여명의 경찰관과 사실상 강제퇴직을 당한 123명의 경찰관의 명예회복은 요원한 상태다.

이에 최 청장은 관련 경찰관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진상조사를 계속해서 이어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최 청장은 “법적 절차를 통한 실질적 구제는 현행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 개정 후 가능한 사항”이라며 “먼저 징계 경찰관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며, 향후 법 개정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최관호 전남지방경찰청장
최관호 전남지방경찰청장ⓒ전남지방경찰청 제공

“故 안병하 치안감, 경찰의 미래”
“국민 기본권 수호하겠다는 공직관 확고해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방침대로 경찰도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눴다면 어떻게 됐을까? 6.25 전쟁 이후, 최대의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을 게 분명하다.

더 큰 비극을 막은 저항의 중심에는 故 안병하 치안감이 있었고, 그와 뜻을 같이한 당시 전남경찰 지휘부가 있었다. 또 광주 외 유일하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목포에서 진압을 거부해 수많은 시민을 살린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있었다. 이들은 이날의 명령 거부를 이유로 신군부에 의해 대규모 문책과 징계, 강제사직, 파면, 고문, 그리고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이들의 사연은 금기처럼 다뤄졌고, 노무현 정부가 돼서야 잠시 수면위로 떠오르는 듯했다. 그런데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이들의 사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10년의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 도합 30년의 침묵 속에서 이들은 잊혀 갔다.

그러는 사이, 경찰은 권력의 도구로 추락했다. 경찰은 몽둥이와 방패를 든 백골단을 설립해 저항하는 노동자·학생·시민을 무차별적으로 폭행 진압했다. 백골단이 사라진 뒤에도, 시위진압에 대한 경찰의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으며, 이는 2016년 촛불항쟁 이전까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열사와 희생자가 생겨났다. 故 박종철 열사와 용산참사 희생자, 故 백남기 농민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경찰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강제진압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던 전남경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 청장은 “현장의 긴급성·복잡성 등으로 완벽한 업무수행에 한계가 있다고 하겠으나, 그럼에도 국민의 인권 수호라는 헌법적 가치는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며 “(故 안병하 치안감 등 당시 전남경찰이) 실제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시민의 생명을 지켜냈던 것을, 경찰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민주·인권 경찰의 표상으로 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의 인권을 지키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소임을 다한 선배 경찰관의 숭고한 정신을 발굴하는 것은 조직의 방향성을 확고히 하고, 경찰관에 대한 미래지향적 지표로 삼게 하고자 함”이라고 설명했다.

최 청장은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 재발’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헌법적 가치인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겠다는 공직관이 확고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그럼에도, 현실적·제도적 한계로 경찰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이 최소화되도록 경찰의 노력과 더불어 제도적 완비가 함께 이루어질 때, 민주·인권의 헌법적 가치는 성숙한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강제사직, 고문을 당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작고한 고 안병하 치안감을 추모하는 공원이 지난 17일 전남지방경찰청 앞에 조성됐다. 이날 행사에는 최관호 전남지방경찰청장과 고 안병하 치안감의 아들 안호재 씨,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유족 등이 참석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강제사직, 고문을 당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작고한 고 안병하 치안감을 추모하는 공원이 지난 17일 전남지방경찰청 앞에 조성됐다. 이날 행사에는 최관호 전남지방경찰청장과 고 안병하 치안감의 아들 안호재 씨,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유족 등이 참석했다.ⓒ전남지방경찰청 제공

故 이준규 서장 보고서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

인터뷰에서 최 청장은 올해 1월에 전남경찰청에서 작성한 故 이준규 서장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민중의소리는 지난 13일 자 기사 ‘5.18 전두환 신군부는 왜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을 죽였나’를 통해 “해당 보고서가 올해 1월 작성됐으며, 신군부가 故 이준규 서장에게 가한 형벌과 징계가 부당했음을 도출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공개할 수 없다’는 전남경찰청 방침으로, 보고서를 본 유족과 보고서 작성자, 조사에 참여한 경찰관들을 두루 인터뷰하여 내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최 청장은 “자료 확보를 위해 당시 경찰관, 군 관계자, 일반 시민들의 진술을 청취할 때, 이들은 진술이 외부로 공개되지 않기를 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경찰관 징계 기록, 여러 명의 외부관계자 인적사항 등 세부적인 개인정보가 다수 수록돼 있어, 비공개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해당 보고서는 현재 법원과 경찰청에 한정하여 배포된 상태며, 현재까지 외부 공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 청장은 “현재로선 인터뷰나 서면을 통해, 보고서 내용 관련 답변을 드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문재인 정부 들어 경찰 총수가 된 민갑룡 경찰청장은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근대 경찰의 정신을 경찰의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7월 31일 제30대 전남경찰 총수가 된 최관호 전남지방경찰청장 또한 취임사를 통해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이라며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경찰 정신을 구현해 달라”고 강조했다.

경찰청·전남청 관계자들에 따르면, 65년생 민갑룡 경찰청장과 66년생 최관호 전남청장 두 사람은 경찰조직 내에서 ‘기획통’으로 불린다. 또 두 사람은 경찰청에서 함께 기획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경찰청·전남청 관계자들은 두 사람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경찰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경찰교육원 안병하홀에 전시된 자료들.
경찰교육원 안병하홀에 전시된 자료들.ⓒ경찰교육원 관계자 제공

1980년 5월, 눈앞에서 가족과 이웃이 계엄군의 총검에 의해 사살당하는 것을 본 광주시민들은 분개했습니다. 21일 오후 1시 금남로에 울린 수많은 총성은,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시민들을 재물로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바치는 칼춤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광주시민들은 무력한 피해자가 되는 걸 거부하고 항쟁을 택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저항권을 행사했습니다. 이는 부당한 신군부에 맞서 싸운 일종의 ‘적극적 저항’이었습니다.

계엄군은 전남경찰관들에게도 총을 들라고 명령했습니다. 가족, 이웃, 친구인 광주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전남경찰은 끝내 이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경찰도 경찰관이기 전에 광주시민들의 이웃이자 친구이며 가족이었던 거죠. 경찰이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서 저항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이 또한 경찰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저항’이었습니다.

이들의 저항은 매우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저항권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권력의 행사에 실력행사를 통해 저항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로 명시하고 있는 권리입니다. 이들이 정당했음은 1996년 진행된 재판에서도 확인됐습니다. 전두환·노태우의 반란죄, 내란죄, 수뢰죄 등의 혐의가 인정됐습니다. (1심 전두환 사형·노태우 22년 6개월, 2심 전두환 무기징역·노태우 징역 17년, 1997년 김영삼 특별사면으로 둘 다 석방)

2019년 5월 18일, 오늘은 광주시민들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한 39주년 되는 날입니다. 광주에서의 경찰은 경찰관이기 전에 ‘제복을 입은 시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역할을 다하려다가 피해를 본 ‘5.18 민주경찰’들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지속적인 경찰개혁으로 경찰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다시 회복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며, 이번 기획취재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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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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